꼬레

꿈, 자우림 y 시조로 인생이 바뀐 해맑은 젊은 군인의 미소

부에노(조운엽) 2013. 2. 20. 19:00

 

 

 

 

현역 군인이 신춘문예 당선

 

 

1966년 겨울 당시 스물한 살이었던 소설가 최인호 씨는 연병장에서 신병훈련을 받다가 일간지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 소식을 들었다.

당시 그는 모든 신문의 신춘문예에 투고하고, 수상 소감까지 써놨을 정도로 당선을 확신했었다.

지난해 겨울 군부대 행정반에서 혹한기 훈련 준비를 하고 있던 스물한 살 김재길 일병은 2013년 일간지 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 소식을 듣고 한참을 침묵하다 겨우 이렇게 말했다.

"장난 전화 아니죠?"

올해 시조 부문에 뽑힌 김 씨는 작년 2월 입대, 강원도 화천의 육군 7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조교로 복무 중이다.

현역 군인이 신춘문예에 당선하는 경우는 앞서 최인호가 겨우 꼽힐 정도로 드문 일이다.

"당선 통지 전화를 끊고 내무반 가서 엉엉 울었어요. 동기들이 안아주는데 눈물이 왈칵 치솟더라고요. 시조 쓴단 말을 아무에게도 안 했거든요. '그거 해서 뭐하니, 군대나 가라.'고 했던 부모님께도 자랑할 수 있게 됐고요. 힘들었던 지난 기억이 떠오르면서 살면서 처음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렸어요."

경남 통영에서 나고 자란 김 씨는 2010년 경남대 국문과에 입학, 정일근 교수가 원장인 '경남대 청년작가아카데미'에 들어갔다.

정 교수는 그가 쓴 시를 읽고, 시가 아닌 시조를 쓰라고 권했다.

"처음엔 무슨 말인가 싶었어요. 교과서에서만 보던 시조를 나보고 쓰라니…. 시는 형식이라도 자유롭죠, 시조는 3장6구 45자 안팎으로 틀이 정해져 있고, 종장의 첫 구 3음절을 무조건 지켜야 해요."

기왕 들어선 문학의 길, 한번 해보자 마음먹고 동기 중 유일하게 시조 쓰기에 돌입했다.

그에게 정 교수는 '사부'이자 '시부'였다.

날마다 혼나고, 어쩌다 칭찬을 들었다.

압축된 시어를 찾기 위해 역대 시조시인들 작품을 찾아 읽었다.

2년쯤 되자 미학적 완성도와 호흡의 안정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틀이 꽉 짜여 있는데도 소리 내 읽으면 시어가 노래하듯 술술 퍼졌다.

50여편의 시조를 썼고, 입대 후 10편을 추려 '혹시나' 하며 신춘문예에 도전했다.

 

 

 

 


김 씨의 이번 당선작은 '극야의 새벽'이다.

"…빙하가 두꺼워지다 찬 생살이 터질 때

제 눈알 갉아먹으며 벌레가 눈을 뜬다…."

깊은 우울을 떨치고 희망찬 오늘을 맞겠다는 포부를 담은 연시조다.

작품을 심사한 정수자 시조시인은 '헌걸찬 상상력, 역동적인 비유와 이미지, 패기와 가능성'을 높이 샀다.

 

"처음 사귄 여자 친구에게 갑자기 그만 만나자는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쓴 거에요. 헤어지자는 이유를 몰랐기 때문에 '왜?'라는 물음과 갖가지 추측과 엄청난 분노가 일었어요. 제 짧은 인생을 통틀어 가장 많이 울면서 쓴 시조이기도 하고요. 원래는 비극적으로 끝났는데 1년 넘게 쉰 번 정도 고쳐 쓰면서 점점 밝아졌어요. 옛분들 말씀처럼 시간이 약이었어요. 작품으로 상처를 치유했다고 할까요."

이제 갓 등단한 젊은 시조시인의 꿈은 "일반 시와 작품성·대중성을 당당히 경쟁하는 시조를 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시조를 고지식한 어른이 쓴 어렵고 지루한 시라고 생각해요. 전혀 아니에요. 편안하게 읽고 즐길 수 있는 시조가 엄청 많아요. 시조에 얽힌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개혁가가 되어서 '우리 시조가 이렇게 재밌었어? 김재길 시인 대단하네!'란 말을 꼭 듣고 싶어요."

어쩐지 이번 신춘문예 시상식에서 용기백배한 젊은 군인들의 박수와 함성 소리를 원없이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꿈, 자우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