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선원의 항해일지

드라이 독에서 화장을 고치고

부에노(조운엽) 2020. 12. 31. 06:35

 

 

피아니스트의 전설

드라이 독에서 화장을 고치고

음악 : 피아니스트의 전설 Playing love https://www.youtube.com/watch?v=DvldPQvgnkw

Piano man, Billy Joel https://www.youtube.com/watch?v=TopdlAgjdA4

해피 라틴호는 고베에서 철광석을 다 풀어주고 지바로 향했다.

5년마다 있는 정기검사를 받기 위해 지바에 있는 미쓰이 드라이 독으로 간다.

송수신기와 안테나 점검을 신청했다.

짬 나는 대로 사주부 인벤토리를 정리했다.

재고목록은 매년 연말에 본사에 보내왔던 거라 전임자가 해놓은 것에 받은 거 더하고 쓴 것 뺀 재고만 보고하면 된다.

정기검사인만큼 드라이 독에 배를 올려 바닥에 붙은 따개비와 해초 등을 제트 와싱이라고 하는 고압의 물로 쏴 깨끗이 청소하고 페인트를 칠하여 화장을 고친다.

그리고 항해, 기관과 통신장비의 전반적인 수리와 검사를 한다.

보통 일주일 넘게 걸린다.

이 정기검사에 합격해야 출항할 수 있고 다른 나라 항구에도 입항할 수 있다.

미쓰이는 에도 시대 거상인 미쓰이 다카토시부터 시작됐다.

그는 교토에 포목점을 열고 오로지 현금으로만 거래하는 대신 다른 상점보다 싸게 팔았다.

또, 비가 오면 손님에게 회사 이름이 써진 우산을 빌려주는 등 현대식 마케팅으로 컸다.

일제강점기에 미쓰이물산은 부산 범일동에 조선방직을 열었고, 지금도 조방 앞이라고 불린다.

미쓰비시, 스미토모와 함께 일본의 최대 기업 중 하나인 미쓰이 그룹은 금융, 해운, 조선뿐만 아니라 일본 주가 총액 1위인 토요타와 도시바, 후지필름 등을 거느리고 있다.

미쓰이 기선은 오사카 상선(OSK)과 합병하여 '미쓰이 OSK 라인'이 되어 미쓰비시 계열의 NYK Lines와 쌍벽을 이루는 해운회사로 컸다.

Mitsui O.S.K. Lines, 약칭 MOL은 LNG선, 탱커, 컨테이너, 자동차 운반선과 벌크 캐리어 등 200여 척의 선단을 이루고 있다.

미쓰이 컨테이너에는 악어 로고가 붙어있다.

최근 MOL의 와카시오호가 모리셔스 부근에 좌초되어 기름 유출로 생난리를 치고 FM의 전형인 일본 해기사가 개망신을 당했다.

독에 배를 올리면 잠깐 지바에 사시는 막내 이모님을 뵈러 갈 생각이다.

이모는 E 여대를 나와 KBS에서 근무하던 비교 불가 미인에 수줍음이 많던 분이었다.

김포공항에 NHK 특파원을 마중 나갔다가 첫눈에 반한 이모부의 열렬한 구애에 결혼하여 신문에까지 났었다고 한다.

제목이 'KBS 최고 미인, NHK 특파원에게 빼앗기다.'였다나.

이모부가 NHK 한국 지부장할 때 한남동 집에 초대받아 가기도 하고 큰 이모 집 모임에 갔을 때 종종 뵈었다.

딸이 둘 있는데 큰딸 미야꼬는 어렸을 때 기가 막히게 예뻤다.

둘째 외사촌 동생 미도리는 음악을 잘했는지 줄리아드 음대를 나와 일본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약했단다.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미도리 고토와는 또래의 동명이인이다.

이모는 일본 살면서 NHK 한국어 방송 아나운서도 하고 젊었을 때는 한복 입고 각종 표지 모델로 나왔다.

둘째 이모는 S 여대를 나와 간간이 정부나 시의 홍보책자에 고궁, 박물관 사진 같은데 모델로 나오곤 했다.

젊었을 때 영어를 잘해 미국계 회사에 다니다가 결국 지금 미국에 산다.

외삼촌 가족도 미국에 사니 어머니 빼고 외가와 글쓴이는 역마살이 단단히 든 핏줄인 모양이다.

나인틴 헌드레드는 갓난아기 때 유럽과 뉴욕을 오가는 호화여객선 버지니아 호에 이민자가 레몬 상자 안에 놓고 가 석탄실에서 일하는 화부가 주워서 자식같이 키웠다.

아이를 발견했던 해가 1900년이라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1900은 그 흑인 화부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자라다가 6살이 되던 해에 아저씨가 사고로 죽게 된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그는 배가 항구에 도착하면 사라졌다.

뭍으로 떠난 줄 알았는데 항해하면 어디선가 다시 나타났다.

어렸을 때부터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알던 그는 피아노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져 대서양을 오가는 배 안에서 연주를 하며 살았다.

한 번 들은 곡은 그대로 연주할 수 있었고, 두 명이 합주하는 곡도 혼자서 칠 수 있었다.

특히, 관객들 표정을 보고 마음을 읽으며 즉흥 연주 하는 것도 선수였다고 한다.

그가 27살 되던 해, 버지니아호에 트럼펫 연주자로 온 맥스를 만나게 된다.

친하게 된 둘은 1900의 현란한 피아노 솜씨와 맥스의 트럼펫과 함께 승객들에게 신나고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준다.

그러던 어느 날, 뉴올리언스의 유명한 재즈 음악가 모튼이 1900의 연주 실력을 소문으로 듣고 버지니아호에 찾아왔다.

모여든 관객들 앞에서 1900은 캐럴을 친다든지, 모튼의 재즈 연주에 감명을 받아 눈물을 흘리며 그의 곡을 똑같이 따라치는 등 대결에는 관심이 없었다.

화가 난 모튼이 모욕적인 말과 함께 엄청 어려운 곡으로 도발했다.

이에 1900은 신들린 사람처럼 빠른 손놀림으로 피아노를 쳐 관객들의 넋을 나가게 했다.

그의 연주로 뜨겁게 달궈진 피아노 현에 담뱃불을 붙여 둥그런 조명 아래 얼어붙은 모튼의 입에 물려준다.

1900은 더 유명해졌고, 세상에서 볼 수 없기에 전설이 되어간다.

음반 회사에서 그의 연주를 녹음하기 위해 찾아왔다.

녹음하는데 창밖에 보이는 한 여인을 보는 순간 반하게 된다.

그는 아름답고 서정적인 곡을 그 자리에서 만든다.

이야기의 시작이 된 출처 불명의 아름다운 음악이 담긴 깨진 레코드의 곡이 바로 그것이다.

이날 녹음된 음반이 세상에 나오면 자신을 알릴 기회였지만, 그는 좋아하는 여인 단 한 사람에게만 자신이 만든 곡을 주고 싶었다.

그 여인이 배에서 내리는 날, 그는 자신이 만든 곡을 녹음한 음반을 건네주려 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아 그냥 떠나보낸다.

그는 그 여인을 못 잊고 뭍으로 상륙할 준비를 했다.

갓난아기 때부터 평생을 배 위에서 지냈으며, 단 한 번도 땅을 밟아 본 적이 없는 나인틴 헌드레드.

그러나 첫눈에 반한 그녀를 찾기 위해 내리려고 시도를 했으나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결국 부두를 밟지 못했다.

얼마 후 친구 맥스는 계약이 끝나 1900과 이별하고 배를 떠난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수송선과 병원선 역을 한 버지니아호는 낡을 대로 낡아서 먼 앞바다에서 침몰시킬 예정이었다.

이때 친구 맥스는 1900을 찾아온다.

맥스는 배에서 나가자고 설득하지만, 그는 자신이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이유를 이야기한다.

"피아노를 봐. 건반은 흰 것과 검은 게 있지. 어느 피아노나 건반은 88개야. 그건 무섭지가 않아. 무서운 건 세상이야. 막 배에서 내리려고 했을 때 수만 개의 건반이 환영처럼 보였어. 너무 많아서 절대로 그걸 연주할 자신이 없어."

자신의 세계는 버지니아호뿐이라는 것을 아는 1900은 배를 떠날 수 없는 운명을 알고 있었다.

결국 그는 혼자 남았고 맥스는 울면서 떠난다.

나인틴 헌드레드는 버지니아호가 가라앉을 때 함께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끝없는 수평선처럼, 쉬지 않고 치는 파도처럼 바다의 피아니스트는 전설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우리 가슴에 영원히 남겨졌다.

마도로스의 마음은 늘 떠나는 항구에 남아있고 또 새로운 항구에 대한 갈증을 항상 느낀다.

아무리 배가 좋고 편해도 배와 함께 바다에서 운명을 같이한다는 것은 이 좋은 세상에서 전혀 상상할 수가 없다.

이탈리아 영화 'The legend of pianist'는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Novecento'라는 단편 독백소설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