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rates of the Caribbean
해적선
음악 :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OST, He’s a pirate https://www.youtube.com/watch?v=dW3_gzvh5vI
사람이 배를 만들어 물건을 실어나른 이래로 해적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해적은 남의 배에 제멋대로 올라와 돈과 화물을 빼앗고 사람을 다치게 하는 강도를 말한다.
산에는 흉악한 산적, 말 타고 다니는 도둑놈은 마적, 바다에는 난폭한 해적이 있었다.
해적이 언제부터 나타난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기록에 남은 가장 오래된 해적은 고대 이집트 나일강 하구에서 세금 받는 관리가 탄 배를 습격한 도둑이라고 한다.
문명이 시작된 이래 해상 무역이 국가 간 경제활동의 주요 수단이 되면서 해적들은 골칫거리가 되었다.
세계 무역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17세기부터는 도적 중에서도 가장 악명이 높은 집단이 되었다.
또한 해적들이 정부의 관직을 받기도 했다.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엘리자베스 1세로부터 대영제국의 해군 참모총장 같은 관직을 받았다.
바르바리 해적으로 유명한 하이르 앗 딘은 지중해를 다 장악하는 전과를 올려 해적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오스만의 해군 총사령관에까지 올랐다.
지금도 터키 해군의 아버지로서 떠받들고 있다고 한다.
참나, 의적도 아닌 날강도놈을 영웅으로 모신다니...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진짜 해적들은 법도 신의도 모르는 불한당이다.
그들은 반지를 빼앗기 위해 남의 손을 자를 수 있고, 강간과 약탈을 밥 먹듯이 하며, 불쌍한 뱃사람들을 산채로 바다로 내던지는 흉포한 자들이다.
주요 문명이 발달한 지중해에서는 일찍부터 해적들이 나타났다.
그리스는 온통 섬이어서 해적이 숨어있기 쉬웠고 문명이 발달했던 지역답게 상선들이 많이 지나다녀 먹잇감이 많았다.
나라마다 해적을 잡으려고 애썼지만, 해적들이 하도 많아서 큰 성과는 없었다고 한다.
로마 시대에도 해적이 많았다.
이들은 노예와 훔친 화물을 로마인들에게 되팔기도 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젊었을 때 해적에게 포로로 잡혔다고 한다.
카이사르는 해적에게 잡혀 자신에게 은 20달란트의 몸값을 매기자 내가 그것밖에 안 되냐며 스스로 몸값을 50달란트로 올렸다고 한다.
포로로 잡혀 있는 동안 언젠가 네놈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농담처럼 웃으면서 말했다.
50달란트짜리 거물이라 잡혀있는 동안 귀빈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겨우 몸값을 마련해 풀려난 후, 카이사르는 군대를 모아 해적 소굴에 쳐들어가 정말 다 죽였다.
로마 시대 당시 해적의 약탈품은 사람, 포도주, 올리브유, 곡물 등이었다.
로마가 노예 경제로 굴러갔기에 게나 고동이나 붙잡아 와서 노예로 파는 짓에 맛들였다.
서로마 제국이 망한 후, 5세기경에는 색슨족 해적이, 8세기에는 바이킹 해적이 유럽을 누비고 다녔다.
이들의 배는 바닥이 평평해서 강을 거슬러 올라가 내륙까지 노략질했다.
바이킹이 노린 표적은 주로 수도원이었지만 해변 마을도 죄다 약탈당했다.
바이킹이 유럽을 털고 다닌 시절, 바르바리 해적들은 지중해를 휘젓고 다녔다.
11세기에 시작된 십자군 전쟁 때 유럽의 무역선들을 공격해 몽땅 털고 선원을 노예로 팔았다.
노예로 팔린 기독교도들을 신부들이 찾아가 몸값을 주고 사 오는 경우도 많았다.
아메리카 발견과 스페인의 아즈텍, 잉카 정복 이후 해적들은 각종 귀금속을 싣고 본토로 가는 스페인 선박을 노렸다.
이에 스페인은 백여 척에 이르는 대규모 선단에 포를 장착하고 대서양을 건넜다.
프랑스 해적도 설쳤는데 특히 영국의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스페인 배를 습격해서 재미를 많이 봤다.
그 뒤에는 엘리자베스 1세의 묵인이 있었다고 한다.
드레이크는 보물선만 턴 것이 아니라 신대륙의 스페인 식민지들도 직접 쳐들어가기도 했다.
이는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을 침공하는 한 요인이 되었다.
해적의 황금기는 캐리비안의 해적으로 유명한 17세기 무렵이다.
해적은 배 위에서는 어떠한 국가나 귀족에게서도 자유롭고, 위험한 항해와 전투를 벌이며 보물선을 털어 인생 역전을 하는 로망이 있었다.
물론 아메리카 대륙과의 무역으로 돈을 벌려는 사람들에겐 해적들에게 습격당해서 목숨을 잃고 화물을 빼앗기는 개 같은 경우라 해적들은 잡히는 대로 교수형에 처했다.
그러나 각 제국 국가가 식민지 관련 문제로 해적 토벌에까지 큰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신대륙의 먹잇감들이 줄어들자 해적들은 인도양으로 움직였다.
인도의 보물선단과 동인도 회사의 상선들을 공격했는데, 마다가스카르는 해적들의 소굴로 유명했다.
이 시기 마다가스카르는 식민지가 아니었고, 수에즈 운하가 없던 당시 유럽인의 인도항로와 홍해로 가는 이슬람교도의 순례 항로를 덮치는 요충지였다.
그러나 이렇게 공기업 비슷한 동인도 회사를 공격하고 인도 무역까지 위태하게 만들자 영국은 국가적으로 해적 소탕에 나서게 되었다.
남중국해의 해적들은 많게는 천여 척에 이르는 정크선단으로 해적함대를 이끌었는데, 당시 상하이, 홍콩 등을 드나들던 영국을 비롯한 유럽 상선들을 습격하였다.
그 때문에 19세기 내내 영국은 이들에 대한 소탕 작전을 계속했다.
비행기가 나오고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도 해적은 있다.
해상 운송이 비행기보다 엄청나게 싸게 먹히기에 해상 수송은 아직도 절대적이다.
항공도 하이재킹이라는 해적질 같은 게 있지만, 공항과 기내의 보안도 삼엄하기에 대부분 단발성에 그친다.
해적의 화력과 기동성도 기술 발전에 따라 고속 보트에 최신 무기로 무장하고 기습공격으로 해적질을 한다.
현대의 상선들은 무장이 없다시피 하기에 대형 상선이라도 쉽게 털 수 있어 여전히 해적들이 해볼 만한 도박이다.
특히 해적들이 있는 줄 알면서도 지나가야만 하는 아라비아해나 말라카해협등은 지금도 해적들이 들끓고 있다.
21세기 들어 해적질로 가장 악명 높은 곳은 소말리아이다.
소말리아가 사실상 무정부 상태라서 해적들이 잡혀도 자기 나라에서 처벌할 데가 없다.
굶주린 사람이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심정으로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해적질에 합류한다.
상선들도 무장한 보안요원을 싣고 간다든지 하였으나 비무장 상선들이 대부분이다.
궁여지책으로 물대포 등의 방어 장치를 배에 만들기도 하지만, 해적들 총질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결국 해적들의 위협이 점점 커지면서 열 받은 각국이 해군을 끌고 토벌 작전을 벌이고 있다.
글쓴이와 전에 같이 유조선을 탔던 한 캡틴도 소말리아 해적에 잡혀 일 년 가까이 개고생하다가 몸값을 주고 겨우 풀려났다.
그 트라우마 때문인지 지금은 배를 타지 않고 은둔하고 있는 모양이다.
말라카해협과 남중국해 일대는 지금도 해적 소굴이다.
하와이 등 태평양의 유명 관광지에서는 폴리네시아계의 태평양 해적도 꾸준히 활동한다.
미 해군이나 해안경비대가 가까이 있어 경비 사각지대에 있는 관광객의 요트를 털거나 아예 배까지 빼앗아 튄다.
동아시아에는 왜구와 신라구도 있었다.
신라의 장보고는 해적들을 토벌하고 동북아 일대의 교역권을 장악하여 강력한 해상 세력가로 컸었다.
신라구는 후삼국 시대의 혼란기를 틈타 한반도에서 기승을 부린 해적들로, 일본의 기록에 규슈와 쓰시마 섬 등을 약탈하였다고 한다.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까지는 왜구들이 한반도의 해안가를 상습적으로 약탈했다.
해적들은 위험하고 거친 생활을 했지만 의외로 민주적인 모습도 보였다.
한번 선장이 되었다고 영원한 선장이 되는 건 아니고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힘으로 유지하든지 존경을 받아야 선장을 해먹을 수 있었다.
선원들에게 인심을 잃으면 투표로 새 선장을 뽑았다고 한다.
항로 결정도 투표로 했으며, 누구나 투표권과 식량, 술을 똑같이 나눴다.
카리브해의 해적은 탈출한 노예도 받아들여 동등한 선원으로 대접해 줬다고 한다.
여성 동무는 배에 태우지 않았다.
간혹 남장 여자 해적은 있었다.
17~ 18세기의 해적들은 그 당시 기준으로 어마어마한 복지와 보상을 받았다고 한다.
전투 중 죽거나 다치는 경우 보상해주는 세세한 법도 있었단다.
그렇게 다친 선원은 은퇴하든지 자기가 원하면 얼마든지 해적선에 머물며 동등한 배당금을 받았다.
이렇게 혁신적인 규율이 있었던 이유는 그 당시 뱃사람들이 겪었던 열악한 대우 때문이다.
해군이나 국가 인정 해적선에서 싸우다가 죽거나 다칠 경우 아무런 보상도 못 받고 버려졌으며 그렇게 길거리에서 구걸하다 죽어가는 동료들을 너무나 많이 봐왔다.
거기다 한번 해적으로 알려지면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할 운명까지 더해져 결국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게 되어 해적의 규율이 자생적으로 생기게 된 것이다.
문학 작가들이 해적을 모험가나 악당으로 출연 시켜 스티븐슨의 보물섬과 제임스 매슈 베리의 피터 팬에 등장하는 후크 선장 등이 나왔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또한 많은 이들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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