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탁구 국가대표로 메달을 여러 개 땄던 인생 악바리과 현정화 선수
작은 공 하나가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꾸다니
지바 조선소에서 지도거사 님과 상륙 나갔다가 혼자 들어오는데 휴게소에서 허름한 인민복 같은 옷을 입은 선원들이 탁구를 하고 있었다.
딱 보니 중국 선원 같았다.
아마 일본 앞바다에서 사고 나서 긴급 수리하러 들어왔다는 오성홍기가 펄럭이는 중국 배 선원인 모양이다.
중국 배는 웬만하면 인건비 싼 자기 나라에서 다 처리하려고 하지 물가 비싼 다른 나라에서 수리하는 것은 피한다.
중국 선원은 돈이 별로 없어 밖에 잘 나가지도 않는 것 같다.
그러니 그냥 수리조선소 안의 시설에서 시간을 보내는 모양이다.
같은 선원으로서 짠해 보여 웃으며 인사를 했다.
"니하오."
같이 '니하오~' 하더니 이어 나오는 쏼라쏼라...
알아들을 수 없으니 영어로 말하자 '진뿌동'이라고 어깨를 으쓱한다.
나도 씩 웃으며 'Korean seaman'이라고 말하고 계속 탁구 하시라고 손짓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
그 친구들과 한 게임 하고도 싶었지만 그들이 즐거운 시간을 갖는데, 우리 배에는 탁구대가 있어 상대만 있으면 아무 때고 칠 수 있으니 참았다.
중국인들은 탁구 라켓을 셰이크핸드로 많이 치는 모양이다.
나는 펜 홀더만 칠 줄 아는데 학생 때 한 탁구 했었다.
그런데 중학교 1년 후배가 코치에게 정식으로 석 달 배우더니 동네 탁구로는 어림없었다.
그래서 배우길 잘 배워야 한다는 말이 그때나 지금이나 입에 붙어 다닌다.
"아~ 동네 주방장만 이삼십 년 하면 뭐 하냐 말이지, 맛있게 잘하는 선수한테 제대로 배우면 째비가 안 된다고..."
TV에서 국제 탁구 경기를 보면 국적이나 유니폼은 유럽이나 미주 선수인데 모습은 동양인이 많이 보인다.
그런 선수는 대부분 중국계이다.
중국에는 탁구 등록 선수만 오천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할매, 할배 그리고 갓난아기까지 모두 합친 인구가 다 탁구선수라는 말이다.
중국에서 국가대표가 된다는 것은 글쓴이가 이 나이에 이등병으로 군대 다시 가서 별 따는 것보다 더 힘들 것이다.
아예 꿈도 꾸지 말아야지.
그러니 실력 있는 중국 선수들이 다른 나라로 가 귀화하여 어렵지 않게 그 나라 국가대표가 될 수 있을 테다.
중국인들의 탁구 사랑은 대단하다.
장개석의 국민당에 쫓겨 다니던 대장정 시절 열악한 노천 병영에서 모택동과 홍군 병사들이 밥 먹고 식탁에서 탁구로 시름을 달랬다고 한다.
대장정 이후 대약진운동 실패와 기근으로 수천만 명이 굶어 죽었다.
그때 중국 선수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자 일약 영웅이 되면서 탁구는 춥고 배고픈 중국 인민들에게 큰 희망이 되었다.
중국 공산당 정부는 천안문 광장에서 축하 퍼레이드를 하는 등 야단법석을 떨었다.
우리나라가 IMF로 힘들 때 박찬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승승장구하고 박세리 선수가 LPGA에서 계속 우승해 국민에게 희망을 주던 것보다 더 의미가 컸다고 보면 된다.
그즈음 영국 EPL에서 날렸던 박지성 선수까지 모두 바가지 박 씨네...
1971년 나고야에서 세계 탁구선수권대회가 열렸다.
한 미국 선수가 연습하다가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를 놓쳤다.
그걸 보고 메달리스트 출신 중국팀 부단장이 자기들 탄 차에 타라 해서 숙소에 데려다주었다.
동서 냉전이 살벌한 시대에 적성국가의 버스를 같이 탄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때였다.
우리나라 같으면 바로 잡아다 안기부 조사가 들어갈 것이다.
나중에 기자들이 그 미국 선수와 인터뷰 끝에 중국에 가고 싶냐고 물으니 'Of course, I wanna go.'라고 대답했단다.
이를 보고 받은 중국 고위 간부들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병상에 누워 약에 취해있던 마오 주석이 미국 선수단을 초청하라고 지시했다.
미국 선수단은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북경에 입국해서 국빈 대접을 받았다.
핑퐁 외교의 역사가 시작한 것이다.
주은래 총리와 키신저 국무장관의 물밑 접촉이 계속되고 이듬해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다.
그 후 등소평이 미국에 오면서 미중 국교가 정상화되고 중국 공산당이 국제무대에 나타나게 되었다.
미국과 중국은 한국전쟁 때 직접 싸웠다.
그런 양국에 새로운 적 소련이 생겼다.
동서냉전의 상대는 미국과 소련이다.
한때는 사회주의 맹방이었던 중국과 소련은 흐루쇼프가 스탈린 격하 운동을 벌리면서 모택동의 개인숭배를 은근히 까 사이가 벌어졌다.
중국은 소련의 수정주의를 맹비난했다.
그러다가 국경에서 무력충돌까지 두어 번 일어났다.
이제 중국의 적은 소련이 된 것이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도 대만을 제치고 중공을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부르며 거대한 중국 시장에 물건을 팔아 선거인단의 표를 얻으려고 알랑방귀를 뀌었다.
할 수만 있으면 거대한 소련과 중국 두 나라를 적으로 삼을 필요는 없는 거 아닌가.
이렇게 작은 탁구공이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다.
우리나라도 탁구로 남북이 하나 되어 같이 훈련하고 단일팀으로 세계대회에 나간 적이 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1991년 지바에서 열린 세계 탁구 선수권 결승전의 감격을 이야기한다.
글쓴이는 그 대회가 열린 것도 모르고 그즈음 지도거사와 다찌노미와 가라오케에서 오사케 마시며 농담 따먹기하고 마도로스의 상륙을 즐기고 있었다.
현정화, 이분희 선수 등이 출전한 남북단일팀이 세계 최강 중국과 네 시간 가까이 시합을 벌여 3대2로 이기고 금메달을 땄다.
영화로도 나왔다.
현정화 선수는 이전 88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나중에 국민 스타가 된 김연아 선수만큼이나 당대에 인기가 많아 화장품 모델도 했다.
현정화는 16년 동안 선수 생활을 하다가 은퇴한 후 지도자가 되어 선수들 고충을 잘 아니까 배려를 많이 했다고 한다.
다만 경기를 쉽게 포기하는 건 절대 용서하지 않았다.
그녀는 '탁구가 네 인생인데, 그렇게 쉽게 포기해? 하지 마!'라고 야무지게 야단쳤단다.
누군가는 중국탁구를 ‘위위구조’라는 고사성어에 비유한다.
상대의 약한 곳에 계속 공을 넣어 수비에 급급해 겨우 넘어오는 공을 강하게 때리는 중국 탁구의 특성을 말하는 것이다.
중국이란 나라가 강한 이유가 인구도 많지만, 바로 이 '위위구조'가 몸에 밴 민족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은퇴 선원의 항해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콜럼버스보다 앞서 대항해를 한 정화 (0) | 2021.02.06 |
---|---|
차이나타운과 화교 (0) | 2021.02.06 |
보물섬과 보물선 (0) | 2021.02.02 |
세계 역사를 바꾼 노래와 노예선 (0) | 2021.01.31 |
해적선 (0) | 2021.0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