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딜리아니를 아시나요?
내 머리 속에 박힌 모딜리아니의 작품 이미지
어렸을 때 만화 그리기를 좋아해서 친구들을 모아놓고 그림을 그리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 미술 시간에 동판화를 배우면서 모델은 각자 아무거나 좋아하는 것으로 하라고 해서 모딜리아니의 길쭉하게 그린 여인을 소재로 했던 적이 있다.
한참 만들고 있는데 미술 선생님이 다가와서 모델이 누구냐고 물으셨다.
빨개진 얼굴로 더듬거리면서 모딜리아니 작품에 고모 이미지를 넣고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까까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그 작가를 어떻게 알았냐며 칭찬을 해주셨다.
당근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지.
그 선생님은 똑똑한 여자들이 다니던 대학을 갓 졸업한 요즘 효리 같이 섹시한 분위기의 멋진 선생님이셨다나.
미술을 물론 예술에 문외한으로, 먹고사니즘에 충실히 살아왔던 내 돌머리에 모딜리아니는 유일하게 좋아하는 화가로 자리잡고 있다.
그에 관한 글을 우연히 접하고 간단히 정리해본다.
모딜리아니의 사랑
세계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화가 중에 한평생 가난하게 살다가 죽은 이의 수는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화가 모딜리아니만큼 가난했던 화가가 또 있을까. 그런 모딜리아니를 너무나 사랑하여 화가가 죽은 바로 다음날, 아기를 가진 몸으로 6층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아내 잔 에뷔테른. 두 사람의 사랑은 가난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름다웠으나 모딜리아니의 불꽃같은 예술 혼은 너무 빨리 타올라 35세를 일기로 마감되었다.
지방 소도시에서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난 모딜리아니는 어릴 때 늑막염과 티푸스를 앓아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포기하고 그림을 그리며 성장기를 보냈다. 이탈리아의 큰 도시 피렌체와 베네치아에서 그림공부를 한 뒤 미술의 도시 파리로 간 때가 스물한 살 때. 청운의 꿈을 안고 온 파리에서 그는 많은 그림을 그렸다. 모델료를 안 줘도 되는 뒷골목의 여인들과 하녀들이 가난한 화가의 모델 노릇을 해주었지만 그의 그림을 인정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잘 팔리지도 않았다.
실의에 빠진 모딜리아니는 그만 술독에 빠졌다. 보살펴 주는 가족도 없던 터라 그의 건강은 가난과 과로, 술로 나날이 나빠졌다. 살롱 전에 몇 번 출품하다 어느 화상(畵商)의 도움으로 서른두 살 때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었는데 쇼윈도우에 내건 두 점의 누드화를 본 그 구역 경찰관이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당장 철거하라는 명령을 했고, 그것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개인전이었다. 화가가 자신의 생애에 단 한번도 제대로 전시회를 못 가졌으니 이보다 더 불행한 일이 있으랴.
바로 그 무렵 모딜리아니는 잔 에뷔테른이라는 처녀를 만났다. 잔은 미술학원에서 그림 공부를 하던 상류층의 아리따운 처녀였다. 학원 수강생들은 공부가 끝나면 찻집에 몰려가서 수다를 떨었는데, 잔은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를 미소 띤 채 듣기만 할 정도로 숫기가 없었다. 모딜리아니는 찻집에서 몇 번 만난 역시 그림을 그린던 친구의 여동생을 보고 사랑에 빠져버린다. 아름다운 금발에 귀여운 이마, 이마를 덮은 짧고 풍성한 머리카락을 보고서 모딜리아니는 잔에게 '야자 열매' 라는 애칭을 붙여 주었다.
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둘은 결혼을 하고, 딸을 낳았다. 그림을 그린 이는 모딜리아니였지만,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한 이는 잔이었다. 잔의 헌신적인 사랑에 힘입어 모딜리아니의 그림은 한폭 한폭 생기를 더해 갔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이 이들의 사랑을 질투했을까? 모딜리아니가 결핵에 걸린 것이다. 당시 의학으로는 폐결핵은 거의 불치병이었다. 절망한 화가는 술을 찾고…. 아내 잔은 때로 빵을 사기 위해 새벽길을 달리고, 술병을 들고 밤길을 달렸다. 술과 그림밖에 모르는 남편을 위하여….
공기 좋은 지중해 연안으로 이사를 가지만 화가의 건강은 나날이 악화됐다. 잔이 친정에서 돈을 빌려오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피를 토하면서 그린 그림은 그들의 생계에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고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파리로 되돌아온 모딜리아니는 가까운 사람들의 초상화를 열심히 그렸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서 그림을 그리는 남편을 잔은 숨죽여 울며 지켜볼 뿐이었다. 파리로 돌아온 바로 다음 해, 모딜리아니는 결핵성 뇌막염으로 자선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탈리아!… 사랑하는 이탈리아여!” 이 말을 남기고서. 만삭의 잔은 남편의 시신에 오랜동안 입맞춤을 한다.
다음날 아침, 잔은 부모님이 계시는 아파트로 가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삽시간에 거리에 울려 퍼지는 비명과 아우성. 왜 그녀는 출산을 기다리지 않고 목숨을 거두었을까. 잔의 자살을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탓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의 허무함을 잔은 한순간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죽음으로써 완성한 사랑. 하루라도 빨리, 너무도 사랑했던 남편 곁으로 훨훨 날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벨 라 세즈의 묘지에 같이 묻혀 있는 두 사람의 사랑을 저승사자인들 방해할 수 있으랴?
글 이승하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