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고 만나자는 어느 여인의 이메일 y House of the rising sun, Animals
나 정도 되는 여자가 나올 줄 아셨나요?
사랑한다고 만나자는 어느 여인의 이메일
"당신을 사랑합니다. 오늘 오후 5시에 남영동 야생마 카페로 나와주시겠어요? 제 이름은 굳이 밝히지 않겠습니다만, 젊고 예쁜 편입니다. 저 정도면 님께 부족함이 없을 거로 생각합니다."
이메일을 다 읽은 짱짱이 님은 코웃음을 쳤다.
'나를 사랑한다고? 이런 메일을 받으면 당장 달려갈 줄 알고?'
그러나 오랜 결혼생활 동안 이런 러브레터를 받아본 적이 없는 그는 조금은 우쭐해지고 또 흥분되기도 했다.
점심을 먹으면서 아내를 슬쩍 쳐다보며 혼자 생각했다.
'젊고 예쁜 편이라고? 하긴 나도 솔직히 그리 못나거나 팍 늙진 않았지...'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느냐는 아내의 말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얼버무리고 수저를 놓고 오 층 옥탑방으로 올라갔다.
컴퓨터를 켜고 이리저리 들여다봐도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조금 있다가 갑자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구석에 있는 쌍팔년도에 장만했던 비닐 옷장을 열어 옷들을 살펴봤다.
'나한테 부족함이 없을 거라고? 그럼 난 뭘 입고 나갈까?'
한참 뒤 짱짱이 님은 결국 스포티한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아내가 멋지게 차려입고 어딜 가냐고 묻자, 운동도 할 겸 바람 좀 쐬고 온다고 둘러댔다.
야생마 카페로 가는 짱짱이 님의 가슴은 더욱 뛰었다.
'어쩌면 일생에 한 번밖에 없는 기회일지도 몰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사랑이 뭔지도 모를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그동안 한 번도 한눈판 적이 없는데...'
짱짱이 님은 가슴 벅차오르는 흥분을 눌러 앉히며 야생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신나는 음악이 마치 짱짱이 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듯했다.
안을 둘러보다가 구석에 앉아 있는 사람과 눈이 딱 마주쳤다.
그런데 남자였다.
안경을 치켜세워 자세히 보니 푼수 부에노였다.
'아니, 저 자식이 재수 없게 여긴 웬일로...'
서로 모르는 척할 수 없는 사이라 자리로 가서 인사를 나누었다.
'이 녀석 있는 데서 모르는 여자를 만날 순 없잖아. 어떡하지...'
푼수도 별로 달가워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때 문이 열리며 멋진 실루엣의 여자가 들어오는 것 같더니 도로 나가버렸다.
'가버렸어... 우~, 저 푼수 자식 때문이야. 나를 만나러 왔다가 다른 남자랑 있는 걸 보고 나가버린 모양이야. 저 나쁜 자식을 어떡해~.'
부에노는 부에노 대로 인상이 붉으락푸르락하면서 짱짱이 님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것 같았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약속 시간에서 한 시간도 넘게 지나갔다.
말없이 힐끔힐끔 째려보며 앉아 있던 두 사람은 시계를 쳐다보고는 같이 일어났다.
그래도 연장자라고 짱짱이 님이 부에노에게 집에 가서 술이나 한잔 하고 가라고 마음에 없는 말을 했다.
그냥 갈 줄 알고 빈말로 했는데 염치도 없이 실실 따라온다.
'어휴, 저 푼수! 눈치코치도 없이 저래서 어떻게 외국 생활한다니...'
툴툴대며 두 양반이 집에 들어서자 아내 지심행 님이 반갑게 맞이하면서 눈치를 살폈다.
술상을 봐달라며 식탁에 앉은 두 사람이 화난 것처럼 말없이 앉아있자 지심행 님이 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
"오늘 아침에 여자한테 이메일 받았지요?"
짱짱이 님은 깜짝 놀라며 지심행 님을 쳐다봤다.
"그거 제가 보낸 거예요. 호호호~."
얼굴이 주홍단같이 빨개진 짱짱이 님은 '장난이 심하군' 하면서 고개 숙인 남자가 되었다.
그러자 지심행 님이 한술 더 뜨며 말했다.
"그럼 어떡해요. 당신이 하고많은날 옥탑방에서 나오시질 않아서 일 년 만에 청소 한번 하려니 방법이 없었다고요. 당신 심심치 않게 하려고 부에노 아자씨한테도 똑같이 메일을 보냈거든요. 부에노도 야생마 카페에 갔지요?"
부에노는 썩소를 지으며 이내 짱짱이 형님을 노려보던 눈길을 거두었다.
안톤 체홉의 '어느 여인의 편지'를 각색
영감님들 꿈 깨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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