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라이스를 만들던 영국인 스님
외국인 스님
카레라이스를 만들던 영국인 스님
십여 년 전 실크로드를 따라 여행한 적이 있다.
칠개월째 되던 어느 날, 예루살렘의 한 허름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덜컥 병이 났다.
늘 부실하게 먹어 누적된 영양부족 때문인지 이유 없이 시름시름 아팠다.
숙소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배낭족들이 묵고 있었는데, 나는 침대에 죽은듯이 누워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숙소 안에 카레 냄새가 진동했다.
냄새에 이끌려 기다시피 주방으로 가봤더니 머리를 박박 깎은 서양 젊은이가 열댓 명도 더 먹을 수 있는 분량의 카레와 밥을 하고 있었다.
잠시 뒤 사람들이 둘러앉아 카레라이스를 먹기 시작했다.
머뭇거리는 나에게도 그 서양 젊은이가 웃으면서 같이 먹기를 권했다.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었더니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다 먹고 난 뒤 돈을 내려고 했더니 젊은이가 손을 내저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돈을 받지 않았다.
카레라이스 파티는 그 다음 날도 계속 되었다.
그가 왜 그렇게 저녁마다 카레라이스를 만드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나는 그 카레라이스 덕분에 이틀만에 원기를 되찿았다.
그날 아침, 가뿐한 마음으로 예루살렘 성벽을 둘러보다가 나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카레를 끓이던 그 청년이 성벽 아래서 가부좌를 틀고 좌선하고 있었던 것이다.
관광객들이 부산하게 걸어다니는 그 거리 한 구석에 앉아 그는 조용히 눈을 감고 이 혼란스런 세상에서 멀리 물러나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나는 길 한쪽에 서서 숨을 죽인 채 하염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앞에 놓여진 찌그러진 깡통 안에 동전 몇 잎이 뒹굴고 있었다.
그는 그 돈으로 매일 같이 카레를 끓였던 것이다.
그날 저녁 나는 그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영국 출신으로 태국에서 삼 년 동안 승려 생활을 했고, 지금은 홀로 세상을 떠돌고 있는 중이라 했다.
"왜 그렇게 카레를 만들어요?"
"그 돈은 원래 내 것이 아니니 다 나눠야지요."
그의 말대로 그는 매일 저녁 카레를 끓였고, 며칠 뒤 이집트로 떠날 때 숙소에서 일하던 가난한 팔레스타인 노인에게 가진 돈을 다 털어주고 갔다.
그가 갖고 가는 것은 이집트로 가는 버스표 한 장 뿐이었다.
남과 나눈다는 것이 말은 쉬워도 행동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세월이 갈 수록 내가 본 유적들의 찬란함은 잊혀졌지만, 빈손으로 길을 떠났던 그의 텅 빈 뒷모습은 더욱 선명해짐을 느낀다.
아, 그는 지금도 어디에선가 카레를 만들고 있을까?
글 이지상 님
이스라엘 국민 가수 Chava Alberst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