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이야기

일사 후퇴와 군화 ^(^

부에노(조운엽) 2009. 9. 10. 14:27

 

 

고단한 피난길의 한 소녀

 

 

 

소금 없이 뭘 먹을 수 있겄대?

 

 

"짱 오빠, 발도 아프고, 배 고파!"

"그래, 샤로니 공주야. 어디 발 좀 보자꾸나."

다 떨어진 집신 안에 헤진 버선을 신고 있는 샤로니 온냐 발목을 보니 땟국물이 시커멓게 묻어있고 퉁퉁 부어있다.

"흐미야, 우리 공주님 발이 정말 퉁퉁 부었네. 소금이라도 있어서 한 웅큼 먹으면 좀 나을 텐데, 풀죽에 넣을 소금도 없으니... 어이, 부에노 영감아. 저기 으슥한 곳에 가서 풀죽이라도 끓여 먹고 가세."

"넵, 짱 형님. 저도 춥고 배고파 죽겠다요."

 

 

 

조국을 위해 싸우다 전사한 어느 군인의 흔적 

 

 

해방을 맞아 짱짱이 성님 일행은 만주 개장시를 때려치고 뭐 해묵을 것 없나 하고 조국에 돌아왔는데 얼마 후 전쟁이 또 일어나 김성주 군대를 피해 남조선으로 피난 가는중이었다. 

엄동설한 일 월에 뭔 풀이 있겠는가?

짱짱이 님이 불을 피우는 동안 부에노는 소나무 껍딱을 벗겨와 보릿겨 한 줌 넣고 풀죽을 끓이고 있었다.

아니 소나무 껍딱 죽이라고 해야 정확할까?

그런데 쌓인 눈 속에 찢어진 미군 군화 한 짝이 삐죽 나와있는 것이 보였다.

얼른 줏어다가 눈에 대충 씻어 풀죽에 넣었다.

소 껍딱 죽이 된 것이다.

 

"어여 먹세!"

짱짱이 성님이 일행에게 권한다.

추워서 불 앞에 눈 감고 오돌오돌 떨고 있던 샤로니 온냐 눈이 갑자기 샤방방 광채를 발한다.

매가 먹이를 낚아채듯 입맛을 다시며 찌그러진 군용 반합 앞의 가장 먹기 좋은 자리로 쏜살같이 다가왔다. 

한 조신하기로 만주와 장춘에 소문이 자자했던 샤로니 온냐도 며칠 굶다시피 하니 조신이고 나발이고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나 보다.

 

허겁지겁 입 안에 넣기 바쁘던 샤로니 온냐가 한 마디했다.

"오모나! 부에노 동상~, 넘넘 맛있다. 가끔 고랑내 비슷한 게 나긴 하는데 짭쪼롬하니 간도 맞고 직이는 걸."

부에노도 허겁지겁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먹다가 한마디했다.

"소 껍딱 죽이니 맛이 좋지, 샤로니 온냐!" 

 

게눈 감추듯 군화 삶은 죽을 다 비우고 곰방대에 담배가루 조금과 소나무 이파리 말린 것을 넣고 입에 문다. 

"햐~, 댐배 맛 직이고! 식후 3초 이내 불연초면 자살한다는 인간도 있는디... ㅎ"

짱 형님이 중얼거리자 샤로니 온냐가 물었다. 

"짱 옵하! 그 인간이 뉘기셔용?"

"아, 한 인간 있다네. 들개 잡으러 가서도 개들 도망가라고 댐배 무는 배불뚜기 영감 말이시."

부에노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댐배 연기를 내품으며 한마디했다.

"아띠, 듣는 영감 기분 나쁘게스리 자꾸 머라 해쌌노."

 

 

 

피난길의 할아버지와 손자

 

 

또 며칠을 걸었는지 모리겠다.

독립투사 권오옥 님이 살고 계시는 따뜻한 남쪽나라에 가면 따님 칼라파테 님이 린다 비스따에는 못 재워주시더라도 눈바람 피할 수 있는 헛간이라도 비워주시겠지...

칼라 님이 이 난리 판에 아사도는 못 구워주시더라도 보릿겨 듬뿍 들어간 풀죽이라도 끓여주시겠지... 

셋이는 꿈도 야무지게 꾸어가면서 무거운 다리를 한 발자국씩 옮기고 있었다.

 

 

 

칼라파테 아버님이신 애국지사 권오옥 님이 자연으로 돌아가시고 계시다.

 

 

"앗~ 모두 엎드렷!"

"쾅~ 콰광!!!"

"음머~~~"

 

짱짱이 댓빵의 엎드리라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천지를 뒤흔드는 폭탄 터지는 굉음 소리가 들렸다.

아~ 근디 뭔 소 우는 소리야?

 

주위가 잠잠해지자 댓빵과 부 영감이 잽싸게 소리난 곳으로 뛰어갔다.

어디선가 날아온 폭탄에 소가 완전 분해된 것 같다.

근처 소나무 가지에 소 살점 한 덩어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얼른 떼어서 샤로니 온냐가 기둘리는 곳으로 돌아갔다.

 

"와우, 왕건이 하나 건졌당. 이거라도 구어먹자."

셋이는 또 으슥한 곳에서 불을 피워 방금 죽은 소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또 샤방방 눈이 빛나고 입이 헤 벌어지는 우리의 샤로니 온냐.

 

 

 

부에노스아이레스 번개 모임 때 보통 님과 미미 누나 부부가 준비한 아사도와 초리소

 

 

"짱 옵하~ 싱거워서 도저히 못 먹겠어. 차라리 며칠 전에 먹던 소껍딱 풀죽이 더 맛나. 이건 넘어올 거 같아." 

소금 안 친 아사도를 꾸역꾸역 입에 넣던 샤로니 온냐가 비명소리같이 말했다.

부에노가 대답했다. 

"온냐, 그치? 그 군화가 더 맛있었지?"

 

갑자기 샤로니 온냐 눈이 왕방울만 해지더니 '우웩웩~' 하며 아까운 아사도가 다시 빛을 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