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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국가 부도의 교훈 3편

부에노(조운엽) 2009. 12. 11. 06:18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데모대

 

 

중산층 몰락 사태


이토록 이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남미의 왕따 역할을 자청하고 다른 남미 국가들과 자신들을 차별화한다.

이런 억지를 부리고 살자니 마음이 편할 리 없고, 그러다보니 마음 골병든 사람도 늘어나 환자당 정신과 의사 숫자가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다.

이런 멘탈리티는 자신과 국가를 분리시키는 현상으로 나타나 위급한 일이 있으면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기곤 한다.

이번 사태에도 이미 초장에 외국으로 빠져나간 돈이 막대하고 최근에는 하루에 7억 달러씩 인출했다니 '헤매는 대통령' 데 라 루아와 '새파란 눈의 몬스터' 카발로 경제장관이 어찌 예금동결조치를 내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부유층이 빼돌려 해외에서 잠자고 있는 달러가 아르헨티나 외채액수와 맞먹는다는 것은 이미 비밀이 아닙니다. 내로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미국, 우루과이, 스위스에 계좌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서민들이 열 받지 않을 수 있겠어요.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사는 극빈자가 500만 명이 넘는데…."


경제학자 로페스의 계속되는 말이다.


라틴아메리카는 원주민 인디오문화와 스페인 포르투갈문화, 미국문화와 유럽문화의 얼개가 복잡하게 얽힌 잡종문화의 배경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

이 문화적인 공통점 외에 또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빈부의 격차다.

라틴아메리카의 5억 인구 중 거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9,000만 명이 극빈층이다.

극빈층이란 4인 기준 월 생활비 200달러 미만으로 1인당 하루 1달러 정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한다.

계란 한 줄에 2달러, 고기 1kg에 7달러, 칫솔 한 개에도 5달러이니 이들이 집단 영양실조상태에 빠져있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는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 가장 건강하고 두터운 중산층을 자랑해왔다.

그러나 4년간 지속된 경제 불황은 엄청난 힘으로 이 중산층을 파괴했다.

매일 8,060명이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눈사태에 비길 수 있는 중산층 몰락 사태인 것이다.

시내 중심의 버스터미널 레띠로역 바로 뒤에는 '비쟈 31'이라는 이름을 가진 빈민촌이 있다.

화려하고 우아한 시내를 배경으로 포장도 안된 질퍽거리는 좁은 미로를 끼고 판자촌이 다닥다닥 늘어서 있다.

 

 

 

그냥 구걸하는 것보다는 훨 낫지...

 


요즘 이곳 입구에 플래카드가 깃발처럼 휘날리고 있다.

"Bienvenidos, la clase media!!!!"

중산층 입주를 크게 환영한다는 말이다.

요즘 거리에는 아이를 안고 구걸하는 엄마, 신호등에 걸린 사이 차를 닦으려고 걸레를 들고 뛰는 아이들, 네거리에서 방망이와 공을 돌리며 잠깐 쇼를 보여주고 동전이라도 받으려는 청년들의 숫자가 엄청 늘었다.

밤이면 세계에서 가장 넓은 길, 누에베 데 훌리오의 중앙분리대 녹지지역이나 부에노스의 브로드웨이 코리엔테스 거리 극장들 앞에는 잠자리를 찾는 노숙자들로 붐빈다.

이들의 대부분이 한때는 이 사회를 떠받치고 있었던 중산층 출신이다.

이들 사이에 신종 인기 직업은 말 한 마리 사서 쓰레기 수집하는 마부가 되는 것이라 한다.


"이것 역시 하루살이 인생이기는 하지요. 종이 1kg 팔면 4센트(50원)정도 받아요. 열심히 하면 하루 한 끼는 굶지 않고 먹을 수 있어요. 그리고 아이들 데리고 말채찍 휘두르며 드라이브도 할 수 있어서 신나지요."


스스로 행운아라는 한달 차 마부 훌리오의 말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그는 은행원이었다.

 

 

 

남미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재활용품을 수거해 가는 마차



이제 춤 출 기력도 없어


"차는 벌써 반 년 전에 팔았고 집도 변두리 촌으로 옮겼어요. 의료보험회사 이사였던 남편은 배달사원으로 전락해 세차장에서 아르바이트까지 하는데도 오늘은 슈퍼마켓 갈 돈까지 떨어졌어요. 춤 추어도 돈 던져주는 모자 속은 비어 있을 때가 많아요. 이제는 춤 출 기력도 없어요."


번화가에서 탱고를 추는 거리의 댄서 니나는 울먹였다.

행운의 여신이 찾아오지 않는 한 니나의 가족도 곧 이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라 보까 거리의 땅고 댄서

 


알폰신으로부터 6개월까지 덤으로 받아 1989년에서 1999년까지 10년 넘게 아르헨티나를 통치한 메넴 대통령은 앞으로 역사가들의 도마에 가장 많이 오르게 될 것이다.

시리아 이민의 후예인 그는 임기 초 5,000%가 넘는 인플레를 잡아 국내외의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인플레 잡기의 공신인 달러와 페소를 1:1로 묶은 고정환율제는 불과 4년도 안되어 그 약발이 떨어지고 오히려 나라 경제를 갉아먹는 흉악범이 된다.

한동안 이들은 세계 일등국의 화페인 그린백과 같은 가치를 갖는 화폐를 사용한다는 사실에 어깨가 으쓱해 지냈다.

그러나 그건 바로 뱁새가 황새 따라가기였고 장님 자기 닭 잡아먹기였다.

곧 이 제도가 무리라는 것을 안 환상의 콤비 메넴과 카발로 장관은 민영화라는 미명으로 국영기업체와 토지를 매각해서 그 틈을 메웠다.


"세상에 자국의 국적 비행기까지 팔아먹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거기에 은행, 철도, 전기, 수도, TV채널 그리고 석유채굴권까지 매각했어요. 가장 원통한 것은 세계에서 공해의 마지막 보루라는 남쪽 파타고니아의 상당부분을 팔아먹은 것이지요. 베네통 사장, 테드 터너 CNN 사장, 스필버그, 빌 게이츠 등 세계의 갑부 치고 그곳에 땅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지요. 더 기막힌 것은 판매대금 중 막대한 양의 돈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오리무중이라는 것입니다."


페로니즘의 신봉자인 메넴 대통령은 식을 줄 모르는 활력과 화려한 여성편력으로도 유명하다.

상황이 비관적일 때일수록 큰소리치며 낙관적인 견해를 쏟아내 국민들도 그 말에 주술이 걸려 잠시 현실을 잊을 정도였다.

그는 재임시절 화려한 전용기를 3대나 구입해서 땅고 1, 2, 3으로 명명하고, 화려한 이발소(머리는 그의 아킬레스 건) 설치하기, 관저에 성형외과의사를 상주시키고 수시로 성형수술 받기 등으로 끊임없이 깜짝쇼를 보여주었다.

 

(계속)

 

글 : 시인, 수필가, 주 아르헨티나 대사 부인 이강원 님

 

 

 

 

To tango tis Nefelis(네펠리스의 탱고), Haris Alexi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