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이야기

가을 전어와 양식장

부에노(조운엽) 2011. 1. 27. 22:30

 

 

 

 

가을 전어와 양식장

 

 

가을 전어 굽는 고소한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어가 맛있다고 소문났다.

회로 먹기도 하고 소금구이해서 머리와 함께 통째로 먹으면 술안주로도 기가 막힌 전어는 해수 온도가 내려가면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 보기가 힘들어진다.

 

우리의 미식가 짱짱이 님이 모처럼 뭐 한 건 할 거 없나 찾다가 대천에서 전어축제를 한다기에 지심행 님을 모시고 바닷가 횟집 한 귀퉁이를 차지했다.

모두 이 앞바다에서 잡은 자연산이라고 뻥을 치는데 암튼 갯내음과 함께 묵는 전어회가 입에서 살살 녹았다.

시원한 쐬주를 곁들여 회를 먹다가 구운 놈도 젓가락을 대 보고, 곁들여 나온 각종 해산물들에 정신이 팔려 지심행 님의 재미있고 맛깔나는 이야기도 건성으로 들으며 입만 오물대고 있다. 

 

 

횟집은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으로 북적댔는데 학교 동기인 주인이 마침 손이 좀 한가해졌는지 물 묻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짱짱이 님 자리로 와서 반색을 했다. 

'니하오! 짱 따거~.' 하며 인사를 닦고, 같이 소주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학교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다가 전어 이야기가 나왔다.

하긴 먼 남영동 옥탑방에서 모처럼 외출해서 대천까지 전어를 먹으러 왔는데 당연히 전어가 오늘의 주인공이지. 

 

 

올해는 자연산이 풍어라 전어 양식장이 다 망하게 생겼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예전에 샤로니 온냐와 손 잡고 63빌딩도 해묵은 짱짱이 님 눈이 갑자기 반짝했다.  

횟집 주인 이야기에 장단을 맞춰가면서 전어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를 캐물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한 때 취권 9단일 때는 43도짜리 북경 마오타이주 여러 병을 양동이에 붓어 폭탄주를 만들어 중화인민공화국 꾸냥들과 대접으로 퍼마시고도 끄떡없이 수출입 화물 수백 콘테이너를 한손에 주무르던 짱짱이 님 아니던가.  

 

 

사진 출처 : 야고보 님의 뻬루 뚬베스 양식장

 

맛있게 묵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횟집 친구가 이야기하던 근처 바닷가에 있는 전어 양식장을 찾아갔다.

양식장 주인을 만나보니 완전 사색이었다.

전어를 킬로 당 만 원 이상을 받아야 사료비, 인건비와 각종 경비 제하고 본전인데 바다에서 매일 전어가 엄청 잡히니 양식 전어는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다며 한숨을 푹 쉬고 오소리라도 잡으려는 듯 애꿎은 담배만 푹푹 펴댔다.

전어가 출하 시기가 지나서 많이 먹기만 하고 크지도 않아 하루 사료비만 사오백만 원이 든다나.

킬로 당 오천 원에라도 사 갈 사람 있으면 더 손해보지 않게 지금 당장이라도 팔겠다고 했다. 

 

짱짱이 님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콜!'했다.

순박해 보이는 양식장 주인은 큰 눈을 껌뻑이더니 담배꽁초를 발로 밟으며 손을 탁탁 털고 그러자고 했다.

짱짱이 님은 양식장 주인이 받을 금액을 지심행 님의 어음을 한 장 빌려 그 자리에서 써주었다. 

주인이 '웬 어음이냐'고 정색하고 묻자, '한 달짜리니 걱정하지 말라' 하고 양식장 전어를 인수했다.

그리곤 지심행 님을 일산까지 모셔다 드리고 남영동 옥탑방에 들러 필요한 것을 챙겨 양식장으로 다시 내려갔다. 

 

 

대천 항

 

며칠 동안 고기밥은 주지 않고 밥만 먹으면 양식장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몇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전어가 물 흐르는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먹이를 먹고, 밀물 때는 양식장 윗쪽의 수문이 열려 바닷물이 들어오고 썰물 때는 자동으로 윗문이 닫히고 양식장 아래쪽에 있는 배수문이 열려 모여있던 해수가 한꺼번에 빠지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안 짱짱이 님은 사료를 자기가 산 전어에게는 안 주고 썰물 때 바다로 몇 포대씩 흘려보냈다. 

그러면서 추석에 맞춰 전어 배를 두 척 빌리고 어부를 수배했다.

때가 때인지라 한국인 어부는 당연히 구하기 힘들었고, 명절에 하릴없이 쉬어야하는 외국인 근로자를 일당 거금 백 불에 섭외했다. 

 

추석날 이른 새벽, 썰물 끝날 때에 맞춰 양식장 배수구 흙벽을 포크레인으로 제껴버리고 남아 있는 사료를 모두 배수구에 쏟아붓으면서 키우던 전어를 다 풀어줬다.

그리곤 급히 배를 타고 앞바다로 나가 밀물을 기다렸다.

 

 

밀물이 거침없이 밀려들어올 때 바다를 보니 아니 이럴 수가...

사료를 먹으려고 밀려오는 자연산 전어와 떠내려오는 양식장 전어들로 인해 온 바다가 하얗게 변해 전어 배 두 척에서 그물로 잡은 것이 무려 백 톤이 넘었다.

양식장에서 풀어준 것이 약 40톤인데 며칠 동안 사료맛을 들인 대천 앞바다의 전어와 냄새를 맡은 연평도 전어들까지 모두 짱짱이 님 양식장 수문 근처로 몰린 것이다.

추석 명절이라 출어하는 배들이나 불법조업을 단속하는 사람도 없어, 모두 자연산으로 둔갑한 전어를 킬로 당 이만 원씩 빵빵하게 받았다.

잡어는 잡어대로 자연산 가격으로 실하게 받은 건 물론이고...

남의 어음으로 한 달짜리 2억을 끊어주고 일주일여 만에 현금을 20억 넘게 챙긴 것이다.

물론 지심행 님에게는 그때 전어 사준 것으로 입 싸악~ 닦았다.

역시 우리의 짱짱이 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