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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sionera (죄수), Pilar Montenegro y 분노를 잘 굴려야 멀쩡하게 살 수 있다

부에노(조운엽) 2016. 7. 10. 18:32

 

 

 

 

 

분노를 잘 굴려야 멀쩡하게 살 수 있다

 

 

우리는 '화'라는 감정을 부끄럽게 여기도록 교육받았다.

그러나 화를 꿀꺽 삼키면 소심한 왕처럼 휘둘리고, 물러난 왕처럼 무시당한다.

무엇보다 화병이 몸과 마음을 점령하게 된다.

내 몸과 마음을 위해 분노할 필요가 있다.

화를 냄으로써 우리는 서로를 고치고 발전시키고 살아남는다.

 

화의 사전적 의미는 '몹시 못마땅하거나 언짢아서 나는 성'이고, 분노는 '분개하여 몹시 성을 내는 것'이다.

비슷하게 이지만 감정의 깊이가 다르다.

심리학에서는 분노를 자신이 성취하고자 했던 목표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어떤 대상 혹은 장애물에 의해 좌절 상황을 경험하게 될 때, 그 대상에 대해 갖게 되는 공격적인 정서라고 정의한다.

 

지하철에서 누가 발을 밟으면 화가 나지만 그 감정이 '분노'까지는 아니다.

정치인이나 성범죄자들의 망언에 화가 났다고 하기엔 그 표현이 너무 약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화와 분노를 혼용한다.

왜냐하면 우리네 인생은 그 두 감정 사이를 오가는 다양한 사건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제갈공명의 63대 후손인 제갈재기(葛梓岐). 홍콩의 인기 모델

 


주유가 제갈공명의 재능을 알아채고 그를 죽이려 했던 적벽대전. 

제갈공명이 위기를 넘기고 형주를 점령하자, 주유는 37세에 숨을 거뒀다.

그의 병명은 '화병'.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것도 문제지만 화를 가슴속에 담아두면 정신과 육체가 피폐해진다.

또 에너지를 과도하게 써버린 탓에 삶의 의욕까지 잃게 된다.

신경정신과 병명 중 유일하게 한국에서 만든 것이 바로 '화병'이란다.

뒷목으로 뭔가가 치밀어 오르고, 불이 난 듯 가슴이 뜨겁고 답답한 증상은 오직 한국에만 있다고 한다.

화병은 차후 우울증을 동반하고 옆 사람에게 전이되기도 한다.

40대 이상 한국 여성에게 많이 생긴다는 통계 결과는 이들이 '네가 참고 살아.'란 말을 가장 많이 들은 세대이기 때문이다.

누가 들어도 '화'가 공감되는 상황에서 정작 지인들이 체념을 강요한 것이다.

화의 농도는 더욱 짙어지지만 참으라는 대로 참았고, 그러자 화가 삶 전체를 뒤덮어버렸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실시한 '행복과 스트레스에 대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국민 4명 중 1명은 일상생활에서 '분노'하게 되는 상황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나 반쯤은 혼자서 그 감정을 해소하고 있다.

해결을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니 한국 국민의 행복지수가 OECD 국가 중 최하위일 수밖에.

'화내면 지는 거다.', '참을 인자 세 번 새겨라.' 등은 한국 사람들이 어릴 적부터 듣는 말이다.

우리 사회는 '화'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화를 내지 말라고 사회 전체가 강요한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선비 문화, 여자는 귀머거리로 3년 벙어리로 3년 살아야한다는 출가외인 관습, 감정의 기복이 큰 것을 단점으로 여기는 직장 문화가 각자 한몫을 단단히 한다.

화를 삭이는 게 성공이나 정신과 육체에 이롭다고 주장하는 책들도 우리를 소심하게 만든다.

그래서 우린 화를 어떻게 내야 하는지 모른다.

화를 못 내고 삭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광기 어린 행동으로 드러내는 극단적인 상황을 오간다.

 

 

 

 


위의 경우처럼 극단적인 상황은 일단 제쳐두자.

일반적인 상황에서 분노의 감정은 낙관적인 태도를 취하게 해준다.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보복할 궁리에 불과할지 몰라도 분노를 통해 진솔해지고 당돌해지고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

또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식되는 정서 반응 중 '분노'가 가장 긍정적이다.

같은 상황에서 누군가는 공포를 느끼고 누군가는 분노를 느낀다.

그러나 공포와 화는 반응심리가 전혀 다르다.

동네 사람이 뒷산 호랑이에게 잡아 먹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는 공포를 느끼며 그 상황이 나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사실에 몸서리친다.

하지만 내 딸이 뒷산 호랑이한테 물려 죽었다면?

아마 당장 호랑이를 잡아 죽일 생각으로 길길이 날뛰며 사냥 계획을 짤 것이다.

이게 분노다.

분노는 행동하게 한다.

 

 

 


분노가 밖으로 표출되면 '묻지 마 살인이나 존속 살인' 등의 형태로 나타나고, 분노가 자신을 향하면 자살로 이어진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프란츠 파농은 '수평 폭력'이라는 말로 사람들의 잘못된 분노 표출에 대해 설명한다.

수평 폭력이란 분노의 근원을 향해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비슷하거나 자신보다 약한 사람, 자신이 모르는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현상이다.

부자만 골라 강도짓을 벌인 '대도'는 그래도 양반이다.

 

요즘은 취업이 안 되고 시험에 떨어진다고 대기업 사장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고생하는 처지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고시원에 불을 지르고, 명동 한복판에서 그냥 아무나 찌르고, 지하철에서 무차별 폭력을 저지른다.

물론 이 글을 읽는 우리들이 이런 사건의 주인공이 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장담할 순 없다.

닥치는 대로 행동했던 그들도 자기들이 그렇게 될 줄 몰랐을 것이다.

분노를 제대로 배출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는 출혈이 너무 심하다.

해가 갈수록 우발적인 살인이 급증하고 있다.

즉,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다!'는 순간적인 기분을 참지 못해 범죄가 일어난다.

게다가 이런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아주 평범하다.

'홧김에' 인생 망치는 억울한 경우가 생기는 거다.

분노를 잘 굴려야 멀쩡하게 살 수 있다.

 

 

 

 

 

 

 

 

Prisionera (죄수), Pilar Monteneg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