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우리가 모르는 역사 뒤 이야기 y 인연, 이선희
허성도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강연 녹취록 I
저는 나로 호 발사 실패 때 컴퓨터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모두 우리 나로 호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셨겠지만, 저도 엄청나게 컸습니다.
그런데 대략 6시쯤에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7시에 거의 그것이 확정되었습니다.
저는 성공을 너무너무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날 연구실을 나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그날 서운하고 속상했던 것은 나로 호의 실패에도 있었지만, 행여라도 나로 호를 만들었던 과학자, 기술자들이 실망하지 않았을까 그분들이 의기소침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더 가슴 아팠습니다.
그분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더 일할 수 있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어떻게 이것을 학생들에게 말해 주고 그분들에게 전해 줄까 하다가 얼마 전에 본 글이 기억났습니다.
1600년대에 프랑스에 라 포슈푸코라는 학자가 있었는데 그 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 그러나 큰 불은 바람이 불면 활활 타오른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우리의 우주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면, 또 우리 연구자, 과학자들의 의지가 강렬하다면, 나로호의 실패가 더 큰불이 되어서 그 바람이 더 큰불을 만나서 활활 타오르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그런데 이 나로 호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러한 것도 바로 우리의 역사와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실패가 사실은 너무도 당연하고, 우리가 러시아의 기술에 신세를 지는 것을 국민이 부끄럽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 주고 있습니다.
1957년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라는 인공위성을 발사했습니다.
그 충격은 대단했는데, 초등학교 학생인 저도 엄청나게 놀랐습니다.
미국도 깜짝 놀랐습니다.
미국이 바로 뱅가드 호를 발사했는데 지상 2m에서 폭발했습니다.
이것이 실패하고 미국이 본격적인 조사를 했습니다.
왜 소련은 성공하고 우리는 실패했는가, 그 연구 보고서의 맨 마지막 페이지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하려면, 중고등학교의 수학 교과과정을 바꿔야 한다.’
아마 연세 드신 분들은 다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곻나 것은 독일 과학자들의 힘이었습니다.
미국이 뱅가드 호는 실패하고 그다음에 머큐리, 제미니 그리고 여러분들이 다 아시는 아폴로 계획에 의해서 우주사업이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미국의 힘이 아니라 폰 브라운이라는 독일 미사일 기술자를 데려다가 개발한 것입니다.
중국은 어떠냐면, 여기 오신 분이 다 과학자들이니까 전학삼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실 텐데요, 전학삼은 상해 교통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 가서 캘리포니아에 공과대학에서 29살에 박사학위를 받고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교수를, 2차대전 때 미국 국방과학위원회의 미사일 팀장을, 그리고 독일의 미사일 기지 조사위원회 위원장을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핵심기술자입니다.
그런데 이 전학삼이라는 인물이 1950년에 미사일에 관한 기밀문서를 갖고 중국으로 가려다가 이민국에 적발되었습니다.
그래서 간첩혐의로 잡혔고, 그때 미국에서는 ‘미국에 귀화해라. 귀화하면 너는 여기서 마음껏 연구할 수 있다’라고 회유했고 전학삼은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중국에서는 모택동이 미국 정부에 전학삼을 보내라고 강력하게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미국이 그때 중국 정부가 구속한 미국인 스파이 혐의자와 일 대 일로 교환하자고 그랬어요.
그렇게 협상하면서 미국은 전학삼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우리는 너와 우리 요원을 교환하지만, 네가 미국에 귀화한다면 너는 여기 있을 수 있다’ 했어도 전학삼은 가겠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미국에서 전학삼에게 ‘너는 중국에 가더라도 책 한 권, 노트나 메모지 하나도 가져갈 수 없다, 맨몸으로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전학삼은 가겠다고 했습니다.
나이 마흔여섯 살에 중국에 가서 모택동을 만났습니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한 일화입니다.
모택동이 ‘우리도 인공위성을 쏘고 싶다, 할 수 있느냐?’ 그랬더니 전학삼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그것을 해낼 수 있다. 그런데 오 년은 기초과학만 가르칠 것이다. 그다음 오 년은 응용과학만 가르친다. 그리고 그다음 오 년은 실제 기계제작에 들어가면 십오 년 후에 발사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에게 그동안의 성과가 어떠하냐 등의 말을 절대 하지 마라. 그리고 인재들과 연구비만 다오. 그동안 나에게 어떠한 성과에 관한 질문도 하지 않는다면, 십오 년 후에는 발사할 수 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모택동이 그것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인재와 연구비를 대주고 십오 년 동안은 전학삼에게 아무것도 묻지 말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리고 이 사람 나이 61세, 1970년 4월에 중국이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중국 정부가 이 모든 발사제작의 책임자가 전학삼이라는 것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지금 중국의 우주과학이라는 것도 전부 전학삼에서 나왔는데 그것도 결국은 미국의 기술입니다.
미국은 독일의 기술이고 소련도 독일의 기술입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러시아의 기술을 배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선진국도 다 그랬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미국과 중국이 우주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중·고등학교의 수학 교과과정을 바꾸었는데 우리도 잘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것이 오늘 이야기할 주제입니다.
계속됩니다.
인연, 이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