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면
조선시대 1894년 달력
허성도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강연 녹취록 IV
다음에는 과학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한 것이 1543년입니다.
그런데 그의 주장에는 다 아시다시피 물리학적 증명이 없었습니다.
물리학적으로 지구가 돈다는 것의 증명은 1632년에 갈릴레오가 시도했습니다.
종교 법정이 그를 죽이려다 풀어주면서 갈릴레오의 책을 보면, 누구나 지동설을 믿을 수밖에 없으니까 책은 출판 금지했습니다.
그 책이 인류사에 나온 것은 그로부터 백 년 후입니다.
1767년에 인류사에 나왔습니다.
동양에서는 지구가 사각형으로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늘은 둥글고 지구는 사각형이다, 이를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실은 동양에서도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여러분들이 아시는 성리학자 주자입니다,
주희, 주자의 책을 보면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황진이의 애인, 고려 시대 학자 서화담의 책을 봐도 ‘지구는 둥글 것이다. 바닷가에 가서 바다를 봐라. 지구는 둥글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떠한 형식이든 증명한 것이 1400년대 이순지라는 세종시대의 학자입니다.
이순지는 지구는 둥글다고 선배 학자들에게 주장했습니다.
그는 ‘일식의 원리처럼 태양과 달 사이에 둥근 지구가 들어가고 그래서 지구의 그림자가 달에 생기는 것이 월식이다. 그러니까 지구는 둥글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선배 과학자들이 ‘그렇다면 우리가 일식의 날짜를 예측하듯이 월식도 네가 예측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순지는 어느 날 월식이 생길 것이라고 했고 그날 정확하게 월식이 생겼습니다.
이순지는 ‘교식추보법’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일식, 월식을 미리 계산해 내는 방법이라는 책입니다.
그 책은 지금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과학적인 업적을 쌓아가니까 세종이 과학 정책의 책임자로 임명했습니다.
그때 이순지의 나이 약관 29살이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임무가 조선의 실정에 맞는 달력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동지상사’라고 많이 들어보셨지요?
동짓달이 되면 바리바리 좋은 선물을 짊어지고 중국에 가서 황제를 뵙고 다음 해 달력을 얻어옵니다.
달력을 매년 중국에서 얻어오는 것은 자주 독립국이 못될뿐더러, 해와 달이 뜨는 시간이 달라 사리, 조금의 때가 정확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조선 땅에 맞는 달력이 필요했습니다.
수학자와 천문학자가 모두 모였습니다.
이순지가 달력을 만들어야 하는데 세종한테 그랬어요.
“못 만듭니다.”
“왜?”
“달력을 서운관(기상천문대)에서 만드는데 여기에 인재들이 오지 않습니다.”
“왜 안 오는가?”
‘여기는 진급이 느립니다.’라고 대답했어요.
오늘날 이사관쯤 되어 국립천문대에 발령받으면 물 먹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중앙 정부나 청와대 비서실 이런 데 가야 영전했다고 하지요.
옛날에도 비슷했어요.
그러니까 세종이 즉시 명령합니다.
“서운관의 진급 속도를 제일 빠르게 하라.”
“그래도 안 옵니다.”
“왜냐?”
“서운관은 봉록이 적습니다.”
‘봉록을 올려라.’라고 지시했어요.
“그래도 인재들이 안 옵니다.”
“왜 그런가?”
“서운관 관장이 너무 약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강한 사람을 보내주시옵소서. 왕의 측근을 보내주시옵소서.”
세종이 물었어요, ‘누구를 보내줄까?’.
누구를 보내달라고 한 줄 아십니까?
‘정인지를 보내주시옵소서.’라고 했어요.
정인지가 누구입니까?
당시 영의정이고 고려사를 썼으며 한글을 만든 세종의 측근 중의 측근입니다.
세종이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영의정 정인지를 서운관 관장으로 겸임 발령을 냈습니다.
그래서 1444년에 드디어 이 땅에 맞는 달력을 만들었습니다.
이순지는 당시 가장 정확한 달력이라고 알려진 아라비아의 회회력의 체제를 몽땅 분석했습니다.
일본학자가 쓴 세계천문학사에는 회회력을 과학적으로 가장 정교하게 분석한 책이 조선의 이순지가 쓴 ‘칠정산외편’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달력은 하루 일이십 분, 한 시간 틀려도 모릅니다.
한 일이백 년 가야 알 수 있습니다.
이 달력이 정확한지 아닌지를 어떻게 아느냐면, 이 달력으로 일식을 예측해서 정확히 맞아야 합니다.
이순지는 달력을 만들어 놓고 1447년, 세종 29년에 일식 날짜를 예측했는데 이게 정확하게 맞았습니다.
세종이 너무나 기뻐서 그 달력의 이름을 ‘칠정력’이라고 붙였습니다.
이것이 그 후에 이백여 년간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여러분 1400년대 당시에 자기 지역에 맞는 달력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고 일식을 예측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세 나라밖에 없었다고 과학사가들은 말합니다.
아라비아와 중국 그리고 조선입니다.
그런데 이순지가 이렇게 정교한 달력을 만들 때 달력을 만드는 핵심기술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지구가 태양을 도는 시간을 얼마나 정확하게 계산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칠정산외편’에 보면 이순지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365일 5시간 48분 45초라고 계산해 놓았습니다.
현대 물리학적인 계산은 365일 5시간 48분 46초입니다.
1초 차이가 나게 1400년대에 계산해냈습니다.
여러분, 대단하지 않습니까?
홍대용이라는 사람은 수학을 해서 ‘담헌서’라는 책을 썼습니다.
‘담헌서’는 한글로 번역되어 큰 도서관에는 다 있습니다.
이 ‘담헌서’ 가운데 제5권이 수학책입니다.
홍대용이 조선 시대에 발간한 수학책의 문제가 어떤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구체의 체적이 62,208척이다. 이 구체의 지름을 구하라.’
cos, sin, tan가 들어가야 할 문제들이 쫙 깔렸습니다.
조선 시대의 수학책인 ‘주해수용’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sinA를 한자로 正弦, cosA를 餘弦, tanA를 正切, cotA를 餘切, secA를 正割, cosecA를 如割, 1-cosA를 正矢, 1-sinA를 餘矢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것이 있으려면 삼각함수표가 있어야 하잖아요.
이 ‘주해수용’의 맨 뒤에 보면 삼각함수표가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제가 한 번 옮겨봤습니다.
예를 들면 正弦 25도 42분 51초의 값은 0.4338883739118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제가 이것을 왜 다 썼느냐 하면, 소수점 아래 열세 자리까지 있습니다.
이만하면, 조선 시대 수학책 엄청난 게 아닙니까?
여러분 김정호가 그린 대동여지도를 보면 요즘 지도와 상당히 비슷하지 않습니까?
옛날 조선 시대의 지도가 어떻게 현대 지도와 비슷했을까?
이유는 축척이 정확해서 그렇습니다.
대동여지도는 십 리 축척입니다.
십 리가 한 눈금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왜 정확하냐면 ‘기리고거’라고 하는 수레를 끌고 다녔습니다.
기리고거가 뭐냐 하면 바퀴 원둘레가 정확하게 17척이 되는 수레입니다.
17척이 대략 5m입니다.
이것이 100바퀴를 굴러가면, 그 위에 북이 ‘둥’ 하고 치게 되어 있어요.
북을 열 번 치면, 그 위에 종을 매달아 놓았는데 종을 ‘땡’ 하고 치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이것이 5km가 되면 종이 ‘땡’ 하고 칩니다.
김정호가 이것을 끌고 다니며 지도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세종이 대단한 왕입니다.
몸에 피부병이 많아서 온양온천에 자주 다녔어요.
그런데 온천에 다닐 때도 그냥 가지 않았습니다.
이 기리고거를 끌고 갔어요.
그래서 한양과 온양 간의 거리를 정확히 계산해 보자는 것이었어요.
이것을 근거로 지구의 지름, 지구의 둘레를 구했다는 얘기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 당시 원주를 파이로 나누면 지름이다 하는 것이 이미 보편화한 지식이었습니다.
그러면 우리 수학의 씨는 어디에 있었을까 하는 것인데요, 여러분 불국사 가보시면 건물 멋있잖아요.
석굴암도 잘 만들었잖아요.
불국사를 지으려면 건축학은 없어도 건축술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최소한 건축술이 있으려면 물리학은 없어도 물리술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물리술이 있으려면 수학은 없어도 산수는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이게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가졌던 의문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지었을까?
그런데 저는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 선생님을 너무 존경합니다.
여러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어디인 줄 아십니까?
에스파냐, 스페인에 있습니다.
1490년대에 국립대학이 세워졌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는 1600년대에 만든 대학입니다.
우리는 언제 국립대학이 세워졌느냐, ‘삼국사기’를 보면 682년, 신문왕 때 국학이라는 것을 만듭니다.
그것을 세워놓고 하나는 철학과를 만듭니다.
관리를 길러야 하니까 논어, 맹자를 가르쳐야지요.
그런데 학과가 또 하나 있습니다.
김부식 선생님은 어떻게 써놓았느냐 하면 ‘산학박사와 조교를 두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명산과입니다.
밝을 ‘明’ 자, 계산할 ‘算’ 자, 계산을 밝히는 과, 요새 말로 하면 수학과입니다.
‘15세에서 30세 사이의 청년 공무원 가운데 수학에 재능이 있는 관리를 뽑아서 9년 동안 수학 교육을 하였다.’라고 썼습니다.
여기를 졸업하게 되면 산관이 됩니다.
수학을 잘하면 우리나라는 공무원이 됐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서 찾아보십시오.
수학만 잘하면 공무원이 되는 나라가 있는가.
삼국시대부터 조선이 망할 때까지 산관은 계속 있었습니다.
이 산관이 수학의 발전에 엄청난 이바지를 하게 됩니다.
산관들은 무엇을 했느냐, 세금 매길 때, 성 쌓을 때, 농지 다시 개량할 때 전부 산관들이 가서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의 수학 상황을 알려면 ‘무슨 교과서로 공부했느냐?’가 중요하겠지요?
정말 제가 존경하는 김부식 선생님은 삼국사기에다가 그 당시 책 이름을 쫙 써놨어요.
삼개, 철경, 구장산술, 육장산술을 가르쳤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구장산술이라는 수학책이 유일합니다.
구장산술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중국에서 왔습니다.
최소한도 진나라 때 나왔을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나라 문왕이 썼다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좋은 책이면 다 주나라 문왕이 썼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제8장의 이름이 방정입니다.
방정이라는 말을 보고, 제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저는 사실은 중, 고등학생 때부터 방정식을 푸는데, 방정이라는 말이 무엇일까가 무척 궁금했습니다.
어떤 선생님도 그것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보니까 우리 선조들이 삼국시대에 이미 방정식을 공부했는데 후손인 우리는 외국 수학인 줄 알고 배우는 것입니다.
9장의 이름은 구고입니다.
갈고리 ‘勾’ 자, 허벅다리 ‘股’ 자입니다.
2차 방정식이 나오고 미지수는 다섯 개까지 나옵니다.
그러니까 5원 방정식이 나와 있습니다.
중국 학생들은 피타고라스의 정리라는 말을 모르고 구고정리라고 합니다.
자기네 선조들이 이미 구고정리라고 했으니까요.
여러분 이러한 삼각함수 문제가 여기에 24문제가 나옵니다.
24문제는 제가 고등학생 때 상당히 어렵게 풀었던 문제들이 여기에 그대로 나옵니다.
이런 것을 우리 선조가 이미 삼국 시대부터 교육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것들이 전부 서양 수학인 줄 알고 배우고 있습니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거 아닙니까?”
여기에는 밀률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비밀 할 때 ‘密’, 비율 할 때 ‘率’.
밀률의 값(π)은 3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고려 시대의 수학 교과서를 보면 밀률의 값은 3.14로 한다고 적혀있습니다.
아까 이순지의 칠정산외편, 달력을 계산해 낸 그 책에 보면 ‘밀률의 값은 3.14159로 한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우리 그거 다 삼국시대부터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우리는 오늘날 플러스, 마이너스, 방정식, 삼각함수 등을 외국 수학이라고 가르치고 있느냐는 겁니까?
저는 이런 소망을 강하게 갖고 있습니다.
우리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책에 플러스, 마이너스를 가르치는 장이 나오면 ‘우리 선조들은 적어도 682년 삼국시대에 플러스를 바를 ‘정(正)’이라 했고 마이너스를 부채, 부담하는 ‘부(負)’라고 불렀다. 그러나 편의상 正負라고 하는 한자 대신 세계수학의 공통부호인 +-를 써서 표기하자. 또 π를 가르치는 장이 나오면 682년 그 당시 우리 선조는 π를 밀률이라고 불렀다. 밀률은 영원히 비밀스러운 비율이라는 뜻이다. π를 컴퓨터로 계산해 보면 소수점 아래 1조 자리까지 계산해도 무한소수이다. 그러니까 무한소수라고 하는 영원히 비밀스러운 비율이라는 이 말은 정확하게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밀률이라는 한자 대신 π라고 하는 세계수학의 공통 부호를 써서 풀기로 하자.’ 하면 수학 시간에도 선조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없는 것을 갖고 ‘대한민국이 세계 제일이다.’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선조들이 그것을 배웠고, 명백하게 문건으로 남겨주었음에도 ‘서양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전부 정리되면 세계사에 한국의 역사가 많이 올라갈 겁니다.
이것은 우리가 잘났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 보다 인류의 역사인 세계사를 풍성하게 하는 세계사에 대한 기여입니다.
결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자료는 모두 한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선조들이 남겨준 책들이 ‘조선왕조실록’ 육천사백만 자짜리 한 권으로 치고, 이억오천만 자짜리 ‘승정원일기’도 한 권으로 칠 때, 선조들이 남겨준 것이 무려 삼십삼만 권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주위에 요즘 한문 전공하는 사람 보셨습니까?
정말 엔지니어가 중요하고, 나로 호가 올라가야 하고, 좋은 물건 만들어 수출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국학을 연구하려면 평생 한문만 공부하는 학자들이 필요합니다.
이들이 이러한 자료를 번역하면, 국사학자들은 국사를 제대로 연구할 것이고, 옷을 연구한 사람들은 한국 복제사를 연구할 것이고, 경제를 연구한 사람들은 한국 경제사를 연구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스템이 우리나라에는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문을 공부하면 딱 굶어 죽기 좋기에 아무도 한문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그러면 결국 우리의 역사 문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언젠가는 베이징대학으로 가고 도쿄대학으로 가는 더 비참한 상황이 될 겁니다.
어떤 사람이 한문을 해야 하냐면 공대 나온 사람이 한문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 물리학사, 건축학사가 나옵니다.
수학과 나온 사람이 한문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허벅다리, 갈고리를 딱 보니까 이거는 삼각함수구나.’ 이렇게 압니다.
밤낮 논어·맹자만 한 사람들이 한문을 해서는 ‘한국의 과학과 문명’이라는 책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사회에 나가셔서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면, 이 시대에도 우리나라는 평생 한문만 공부하는 학자를 양성할 필요가 있다. 그런 걸 공부하고 연구하는 소수의 인재를 정부와 학계에서는 최고 대우를 해주어 키워야 한다.’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이 마지막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 저는 어디서든 강연 요청이 들어오면 얼른 가서 이 이야기를 신나게 떠듭니다.
감사합니다.
인연, 이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