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이야기

동대문 시장통, 더불어 사는 세상 y 유리창엔 비, 고병희

부에노(조운엽) 2017. 4. 16. 06:11






동대문 시장통, 더불어 사는 세상



동대문 시장통...
북적대는 시장통에서 술에 취해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부르며 구걸하고 다니는 '자명종'이라는 한 아저씨가 있습니다.
이름도 나이도 고향도 알 수 없지만, 매일 매장에 나타나서 구걸하며 돈을 주면 좋은 말로 '감사합니다.' 하고, 돈을 주지 않으면, 온갖 욕설을 퍼붓고 갑니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나타난다고 해서 제가 장난삼아 붙여준 별명입니다.
돈을 꼬박꼬박 주는 이유는 욕이 무서워서도 돈이 많아서도 아닙니다.
돌아가신 우리 아빠 같은 연세에 끼니라도 곯지 마시라고 늘 그렇게 챙겨 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점심시간 편의점 앞에서 구걸한 돈으로 소주를 사서 병나발을 부는 모습을 보며 제가 잘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 후로 출근길에 토스트와 우유를 사서 어김없이 나타나는 자명종 아저씨께 드리면서 '아저씨! 돈이 없어서 그래요. 이거 드시고 다시 오시면 돈 벌어서 드릴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욕을 퍼붓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자명종 아저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가셨고...
다시 오실 줄 알았던 그 아저씨는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렸습니다.


장사하다 보면, 가끔 손님하고 다투는 날이 있습니다.
그날따라 손님이 너무 경우가 없어서 힘들었는데, 자명종 아저씨가 나타나서 그 진상 손님에게 온갖 욕설을 퍼붓는 겁니다.
저는 살면서 욕이 그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습니다.
진상 손님은 자기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노숙자와 다투려니 어이가 없었는지 그냥 가셨고 저는 아저씨에게 여쭤봤습니다.


"아저씨! 그러다 다치시면 어쩌려고 그래요?"
자명종 아저씨 말씀이...
"야, 이 꼬맹이 아가씨야! 너는 내가 술 처먹는 게 싫어서 머리 굴리면서 나는 싸가지 없는 놈에게 내 맘대로 욕도 못하냐?"


모를 줄 알았는데 아저씨는 알고 계셨습니다.
그 후 그 사건 소문을 들은 상가 사람들은 아저씨에게 작은 심부름을 시키고 심부름 값을 주기 시작했고, 아저씨에 진심이 통했는지 일이 늘어나면서 비록 손수레로 짐을 나르는 일을 하고 계시지만, 지금은 저희 상가에 든든한 일꾼이자 파수꾼이 되어 더불어 잘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자명종 아저씨!' 하면서 장난치다가도 일로 부르면, 몸이 하나라 바빠서 잘 못 오시는 고장 난 시계가 되셨습니다.

어쩌면 아저씨는 천 원짜리 값싼 동정보다 그렇게 누군가의 관심과 떳떳한 일거리가 필요했던 건 아니었을까요.
한때는 한 집안의 귀한 자식에, 가장으로 누군가의 남편에, 아버지로 꿈을 갖고 사시다가, 인생의 어려움에 부딪혀 지금 잠시 길을 잃고 헤매시지만, 언젠가 우뚝 일어나 다시 아저씨의 꿈을 이루시리라 믿습니다.



인터넷 베스트 사연에서




유리창엔 비, 고병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