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ㅊㅊ

부에노(조운엽) 2009. 4. 14. 08:33

 

 

 

증조 할머님 산소에 언제 마지막으로 왔을까?

 

 

출국 날자가 가까워져서 형을 만나러갔다.

이제 가면 다시 올 기약은 없다.

요즘 인터넷이 잘 되어 있어서 사실 밖에 있으나 국내에 있으나 체감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메신저로 만나면 비싼 전화요금 한 푼도 안 내고 국제전화를 얼굴까지 보면서 하는 세상이 왔으니...

 

조카 해련 씨와 사돈 아가씨 해영 씨도 집에서 가까운 전철역으로 마중 나왔다.

해영 씨는 대여섯 살 때 마지막으로 봤나?

이제 어엿한 숙녀로 커서 올해 대학 졸업반이다.

같이 저녁을 맛있게 먹고 형과 술 한 잔 더하려고 했는데 같이 갈데가 있단다. 

둘이 택시를 타고 망우리로 갔다.

 

아~ 증조 할머님 산소...

어렸을 때 차례 지내고 나서 어른들 손을 잡고 매년 올라오던 곳...

거기서 할머님은 증조할머님을 생각하시며 무덤 앞에서 몸부림을 치시며 통곡을 하셨다.

늘 말이 없으시고 엄하시던 할머님이 온몸으로 곡을 하셔서 어린 나이에 울먹이고 있었고 다른 어른들은 모두 숙연했었다...

그런데 작은 숙모님과 고모님들은 산소에 같이 간 기억이 없다.

아마 출가 외인 내지는 될 사람들이라서 그랬나...

요즘 같으면 핵가족 시대라 여자들도 산소에 오는 것 같던데...

그것도 다 추억이려니...

 

형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증조 할머님이 돌아가셨다니 내가 6살 때겠구나.

그때 4대가 같이 살면서 바글바글 대는 식구들과 증조 할머님이 안방에 누워계시던 기억은 선명하다.

아, 참! 증조 할아버님 기억이 없다.

형에게 물어보니...

6.25 때 못 내려오셨단다.

그렇게 해서 산소라곤 증조 할머님 밖에 없는 거였구나...

 

할아버님은 내가 군대 있을 때 실종되셨다.

부대에서 신문에 할아버님을 찾는다는 광고를 보고 휴가 때 할아버님을 찾으러 정능 계곡과 이산 저산을 헤매던 기억이 난다.

내 추측으로는 그때 소란했던 삼청 교육대와 관련되지 않았을까 생각든다.

그렇지 않고서야 술도 안 드시고 성실 자체이셨던 할아버님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