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에 왕실 빙자 절도 혐의로 무기징역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 처음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때가 1492년이었다.
이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그의 '항해일지(Diario)'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콜럼버스는 스페인 국왕의 이니셜이 새겨진 깃발을 들고 몇 명의 부하들과 함께 상륙한 뒤 그 땅이 스페인 국왕의 소유라고 선언하는 의식을 치렀다.
벌거벗은 채 사는 현지 주민이 모여들어 이 기이한 행동을 지켜봤지만, 물론 그들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곧 콜럼버스 일행은 모여든 사람에게 붉은 모자, 구슬 같은 물건을 주었고, 처음 보는 물건에 감탄한 주민이 답례로 앵무새와 실타래 등을 주었다.
이런 식으로 그들과 접촉하고 난 후 콜럼버스는 그날 일지에 이런 글을 적었다. "자신들이 들은 것을 아주 빨리 되뇌어 말하는 것을 보니 그들은 똑똑한 하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아무런 종교가 없는 것으로 봐서 훌륭한 기독교도가 되리라고 믿는다. 내가 다시 떠날 무렵에 그들 중 여섯 명을 잡아서 국왕 전하께 데리고 가서 말하는 법을 가르치고자 한다."
콜럼버스의 생각대로라면 현지 주민의 언어는 언어도 아니고, 기독교가 아닌 종교는 종교도 아니다.
그들을 지배하고 노예로 삼으면 될 것이며, 우선 그중 몇 명을 짐승 잡아가듯 맘대로 잡아다가 통역 겸 앞잡이로 키우면 좋을 것이다.
이것이 유럽인들의 태도였다.
실제로 이후 일어난 일들은 '인디언'이라고 잘못 명명한 이 사람들에 대한 착취와 노예화, 학살이었다.
소위 지리상의 발견이나 식민지 개발의 실상은 이런 것이었다.
그동안 콜럼버스를 영웅으로 기리던 미국 학교에서도 점차 실상을 숨김없이 가르치고 있다.
최근 신문지상에 보도된 바로는, 펜실베이니아 주의 한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이 콜럼버스를 피고로 해서 모의재판을 열었는데, 그 결과는 '스페인 왕실을 빙자하여 절도한 혐의'로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고 한다.
일부 국가에서 '콜럼버스의 날'을 '원주민의 날' 혹은 '마지막 자유의 날'로 바꾸어 기념하는 것도 이런 흐름과 통하는 일이다.
Por amarte asi(그렇게 당신을 사랑하기에), Christian Cas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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