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선원의 항해일지

세계 최대 자동차 수출항과 유보트

부에노(조운엽) 2019. 11. 28. 12:18




브레머하펜의 자동차 전용 부두 

 

 

브레머하펜과 유보트

 

 

배경 음악 :  Je t'aime mon amour(독일 가수가 부른 프랑스 노래, 사랑해 내 사랑), Claudia Jung & Richard Clayderman

https://www.youtube.com/watch?v=LXsY7VBdBtE

 

 

“안개가 더럽게 많이 꼈네. 앞이 하나도 안 보이잖아.”

북해의 매섭고 차가운 칼바람과 함께 엘베강에는 짙은 안개로 한 치 앞이 안 보였다.

캡틴이 혀를 차면서 3항사에게 올 스탠바이를 지시했다.

“올 스탠바이, 써!”

3항사의 절도 있는 복창 소리와 함께 ‘올 스탠바이, 올 스테이션!’이 선내 스피커에 울려 퍼진다.

이어 잿빛 수염을 멋지게 기른 도선사가 배에 올라오고 선수와 선미 그리고 선교에서 출항하기 위해 부두에 묶인 굵은 밧줄을 끌어 올리려고 분주히 움직이는 항해사와 갑판부 직원들의 마이크와 워키토키 소리가 부두를 뒤흔들었다.

캡틴이 마이크로 항해사들에게 ‘안개 때문에 앞이 안 보이니 모두 안전에 유의하시오.’라고 지시하는 한국말이 스피커에서 쩌렁쩌렁 울렸다.

그리고 본선을 부두에서 떼어내려고 터그보트 두 척이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며 ‘HAPPY LATIN’ 호를 강 한가운데로 예인하였다.

뱃고동 소리가 사방에서 울리면서 무중항해임을 실감 나게 해준다.

바로 앞도 잘 안 보이는 시계 제로.

이럴 때는 레이더를 주시하며 주위의 배나 구조물과 충돌하지 않게 온 신경을 집중하며 항해해야 한다.

함부르크에서 자동차를 무사히 선적하였고 나머지는 자동차 운반선이 한꺼번에 15척이 접안할 수 있는 세계 최대의 자동차 수출 항구 중 하나인 브레머하펜에서 싣는다.

거기까지 100해리가 좀 넘으니 열 시간 이상 연안을 항해해야 한다.

 

엘베강을 빠져나와 도선사가 교대하고 북해로 접어들어 항해하는데 선박 무선 전화인 VHF 채널 16번에서 본선을 호출하는 소리가 들렸다.

“모로 베슬 (MOTOR VESSEL) 해피 라틴, 해피 라틴! 디스 이즈 함부르크 레이디오 컨트롤. 두 유 리드 미, 오버? (‘해피 라틴’ 호, 여기는 함부르크 무선국. 들립니까?)”

이어 캡틴의 짤막한 응답이 들렸다.

“히얼 이즈 (HERE IS) 모로 베슬 해피 라틴 스피킹. 라우드 앤 클리어, 오버. (여기는 ‘해피 라틴’ 호입니다. 감도 좋아요.)”

“디스 이즈 함부르크 레이디오 컨트롤. 원 콜 퍼 유. 체인지 채널 투엔티 에잇, 오버. (전화가 왔어요. 채널 28번으로 나오세요.)”

“로저. 체인지 채널 투어니 에잇, 오버.”

캡틴이 응답하고 VHF 채널을 바꾸자 함부르크 VHF 무선국에서 본선 확인을 하고 ‘고우 어헤드(말하시오.)’ 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한국 아가씨 목소리가 들렸다.

 

“안 선장님, 안녕하세요? 저 나미예요. 새벽에 인사도 못 드리고 그냥 가서 미안해요. 잠깐 통화할 수 있을까요?”

남희 전화였다.

갑작스러운 전화에 통신실에서 당황한 채 VHF 전화기의 송수화기를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응답했다.

“어~, 나미야.”

“응, 나야. 얼른 이야기할게. 나 영국으로 발령 났어. 그래서 일단 휴가를 받았는데 한국에 안 들어가고 유럽 여행하다가 런던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하려고 해.”

“뭐?, 그래, 잘 됐네. 너하고 싶었잖아. 그런데 한국에 들렀다 가지 그러니?”

남희가 잠시 뜸을 들이는 사이 VHF에서 ‘치~’ 하는 잡음 소리가 들렸다.

“엄마랑 통화했는데 왔다 갔다 경비 쓰고 다니느니 그냥 유럽 여기저기 구경하는 게 더 나을 거 같아서.”

“그래...”

연안이라 모두 긴장해서 항해하는데 개인 전화를 하고 있으니 나는 안절부절 말을 잘못하고 눈치 빠른 남희도 말을 서둘러 했다.

“자기, 호텔에서 스타우트 마시다가 앉은 자리에서 잠들었을 때 내가 얼마나 뽀뽀 많이 했는지 알아?”

“응? 아니. 나 잠들면 누가 업어 가도 몰라. 난 통잠 자잖아.”

“그래, 너 자는 게 디게 귀엽더라. 뭔 꿈 꾸는지 아기처럼 웃으면서 자던데? 호호호.”

“응~?”

VHF를 듣고 있을 다른 선원들 때문에 우물쭈물하자 남희가 서둘러 작별 인사를 남겼다.

“어디 있든 잘 지내. 사랑해, 자기야!”

그랬구나, 남희가 다시 오지 않을 그 소중한 시간에 조는 나를 부뚜막에 올라가게 만든 거네... 

 

그녀를 알고부터 그녀의 이미지는 거의 변함이 없었던 것 같다.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곁눈질하지 않으며 당차게 자기 삶을 살면서, 변화해야 할 때는 단호하게 주변을 정리한다.

학창 시절에는 홍일점으로 미친 존재감을 보이며 과의 궂은일을 도맡아 해 동기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고, 사회에 나와서도 전공을 잘살려 미다스의 손이라는 별명을 얻어가며 상사와 동료들과 잘 지내고 있다.

뭐든지 징징대지 않고 그저 간단명료했다.

이제 영어 본고장에서 일하면서 자기가 원래 공부하고 싶었던 신방과에 들어가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냐.

 

‘HAPPY LATIN’ 호는 짙은 안개를 뚫고 북해의 거친 파도를 씩씩하게 헤쳐 나가며 지나가는 배의 뱃고동 소리를 끊임없이 들어야만 했다.

서북유럽 수출입 화물은 모두 북해를 거쳐야 하기에 선박 통행량이 무척 많다.

캡틴이 무중항해에 레이더를 얼마나 열심히 쳐다봤는지 충혈된 눈을 깜박이며 본사와 용선주 그리고 대리점에 보낼 전보를 가지고 통신실로 왔다.

고개를 숙이며 눈인사를 하고 송신기를 켰다.

이어 조난과 일반 호출, 응답 주파수인 500kHz에서 함부르크 무선국을 호출하였다.

 

여기서 잠깐 조난신호인 SOS에 대해 언급하자면, 속설에 ‘Save Our Ship.(우리 배를 구해주세요.)’ 또는 ‘Save Our Soul.(우리 영혼을 구하소서.)’의 약자라고 말하는 이도 있는데 그런 건 아니고, 모스 부호는 점과 선을 조합해서 만들어 그 부호 중에서 가장 치기 쉽고 헷갈리지 않는 점 3개와 선 3개의 조합인 돈돈돈 쓰쓰쓰 돈돈돈(***---***)이다.

항해 중에 SOS 신호가 나오면 조난선과의 통신 이외에는 국제 조난 통신 주파수인 500kHz 사용이 금지되며, 국제해상인명안전조약인 SOLAS 규정에 따라 구조를 위해서 최선의 조치를 해야 한다.

아무리 운항 스케줄이 바빠도 선박 책임자들은 이 조난신호를 절대 무시하지 않는다.

입장을 바꿔놓고 내가 조난했을 경우를 생각해보자.

예전에 영화에서 본 ‘타이태닉’ 호가 조난했을 때 캡틴은 승객에 가능한 모든 퇴선 조치를 하고 나서 가라앉는 배와 함께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하지 않았던가?

그런저런 이유로 일국의 대통령도 배의 선장 의자에는 앉지 않는다고 한다.

만일 육상에서 밤에 휴대폰도 안 터지는 곳에서 조난했을 때는 주위보다 높은 곳에 올라가 랜턴으로 이 SOS 신호, 짧게 세 번 길게 세 번 그리고 짧게 세 번 발광신호를 반복해서 보내면 누군가 조난을 알아채고 구조하러 올 수도 있다.

 

지금 우리가 가는 브레머하펜은 브레멘의 관문항이다.

브레멘은 베저강 입구 쪽에 있어 북해와 내륙 운하를 통해 수산업과 무역이 발달하여 엄청난 부를 쌓았다.

1811년 질풍노도와 같은 나폴레옹이 브레멘을 점령하면서 프랑스의 속국이 되었으나 그의 몰락과 함께 다시 독일 연방에 속하게 된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운송업이 폭발적으로 번창하여 1827년 해운업을 좀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하노버왕국의 항구 일대를 사들인다.

베저강에서 북해로 빠지는 그곳이 바로 Bremerhafen이다.

hafen, haven은 독일어로 항구를 뜻하고 브레멘의 항구라는 말이다.

요즘 유튜브에 많은 사람이 열광하고 있는데, 2차대전 당시 독일의 유보트는 엄청난 전공을 세우며 연합군에 악명이 높았다.

브레머하펜에는 2차대전에 쓰던 독일군의 U-보트(Under-sea-boat)가 잘 보존되어 있다.

 

양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 함선을 무수히 격침해 한때 영국을 거의 패전 직전까지 몰아갔던 독일 해군의 일등 공신인 유보트.

전성기 유보트의 힘은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당시 독일 해군이 보잘없는 전력이어서 잠수정으로 영국을 공격하는 작전이 매우 효과적이었다.

유보트가 일부 전투함과 싸워서 이긴 전과는 있지만 주목적은 수송선 파괴였다.

이리저리 보급선을 파괴하다 보니 중립국인 미국 상선 루시타니아호가 재수 없게 유보트에 격침되어 미국이 열 받아 연합군으로 참전하게 되었다.

 

이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100척의 유보트가 있으면 수상함대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고, 200척으로는 영국의 바다를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으며, 300척이 있다면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고 독일 유보트 함대 사령관 카를 되니츠 제독이 장담했다.

반면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 경은 ‘전쟁 중 내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유보트였다. 그들이 바다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독일이 유보트에 모든 것을 걸었으면 전쟁이 어떻게 끝났을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유보트가 연합군에 공포와 함께 엄청난 전과를 올리던 개전 초기에 북대서양에서 가용 가능한 유보트는 고작 평균 열 척이 안 되었다고 한다.

건조하는데 시간과 경비가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1943년까지도 유보트의 성과는 무시무시해 악명이 높았으나 창과 방패의 전략 대결로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 무기가 진화하여 유보트를 폭파하는 연합군의 폭뢰 성능과 폭격기의 장거리 비행 능력이 몇 배 우수해지고 영국의 암호 해독반이 독일군의 암호 발신 장치인 에니그마를 해독해 유보트의 위치, 목적지가 다 드러나게 되어 개전 초기의 위용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그 결과 독일은 대부분의 유보트와 승조원을 잃게 되었다.

또, 미국의 무기 생산력이 절정에 달하면서 격침당하는 수보다 훨씬 많은 수송선이 유럽 항구에 속속 도착하게 되어 유보트가 더 큰 효과를 볼 수 없게 되며 독일이 패전의 길을 걷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