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양희은 누나의 스무 살 시절
양희은에 대한 추억
52년생 용띠인 그녀는 출신부터 남달랐다.
당시 대한민국 최고 명문인 경기여 중고를 나왔으니 말이다.
잘 모르는 요즘 젊은이들을 위해 조금 부연 설명을 한다면 중학교부터 입학시험을 봐서 들어갈 그때에는 초등학교에서 전교 1,2등을 해도 들어가기 힘든 전국에서 공부 잘한다는 수재들이 모인 여학교다.
그래서 경기여고 학생들은 반에서 중간 정도만 해도 서울대학교를 어렵지 않게 들어가고 전국 대학교의 여자 수석은 대부분 이 학교 출신일 정도였다.
꼴찌에 가까운 성적이라도 명문대에 쉽게 들어갔다고 하니...
실제 글쓴이가 사랑하는 막내 고모도 양 선배와 동갑인데 이화여 중고를 졸업할 때 성적이 끝에서 헤아리는 게 더 빠른 걸로 알고 있었지만(지송, 고모님. ^^) 당당히 연세대에 합격해서 재학중에 장학금 받는 것을 여러 번 봤었다.
각설하고 그녀는 그런 수재에 중고등학교 6년 동안 반장까지 했다나.
그런데다가 맑은 목소리로 노래까지 잘해서 학교 축제 때마다 초대 받아 노래를 불렀다 하니 당시 커가는 글쓴이 또래들의 우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때 어느 외신에 보도되길 한국 젊은이들의 우상이 윤형주와 양희은이라고 했던가?
그녀의 팬이었던 글쓴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실물을 보았던 일화 한 토막.
글쓴이가 이대 부속 병원 옆의 충신동 살 때였다.
하루는 어머니가 집에서 멀지 않은 숯 공장에 가서 숯을 사오라고 하셨다.
그때는 석유풍로에 밥을 해먹고 연탄 때던 시절이라 숯이 늘 필요했다.
집에서나 외출할 때 항상 입고 다니던 염색한 낡은 군복에 슬리퍼를 신고 종로 5가 쪽으로 심부름을 가다가 생각하니 길 건너편에 있는 기독교 방송국에서 양희은이 오후 7시에 했던 '우리들'이란 프로의 DJ를 마치고 나올 시간이었다.
숯을 사서 종이 백에 담아 오십여 미터 정도 떨어진 기독교 방송국 앞으로 갔더니 매스컴에서나 봤던 양희은 누나가 저녁인데도 선글라스를 끼고 정문을 나오는 것이 보였다.
'어, 정말 나오네.'라고 중얼거리며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더니 두리번거리다 133번인지 134번인지 버스를 타길래 나도 따라 탔다.
다행히 20원인가 하는 버스비가 있으니 탔지 그 돈도 없었으면 닭 쫓던 개 모양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그땐 돈이 다 어디 갔는지 내 주머니고 집 안이고 늘 궁했었다.
사람들이 많이 타고 있어서 그녀 가까운 곳에 서서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그녀를 흘낏흘낏 쳐다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그녀가 유명한 가수 양희은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때 무슨 연유인지 통기타 가수들은 라디오나 잡지에서나 봤지 TV 방송을 못 탔었다.
서 있는 그녀는 꽉 끼는 청바지에 굽 높은 샌들을 신었는데 머리가 버스 천장 손잡이에 닿을 정도로 키가 컸다.
내가 알기로는 그렇게까지 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아무튼 그러다가 명동 입구 미도파 백화점 앞에서 그녀가 내렸다.
얼떨결에 버스를 따라 탔지만 내리는 것도 같이 내려야지 뭐.
그때 지하철 공사를 했는지 도로나 보도는 엉망이었고 간이 나무 육교가 세워져 있었고 육교 주위는 어두웠다.
육교를 다 올라가서 팬이라고 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어두워서인지 그녀가 종종걸음을 쳤다.
다 내려가니 신문 가판대에서 그녀가 멈춰 서서 선데이 서울 같은 잡지를 고르고 있었다.
생방송 DJ를 하는 사람이라 멘트 하는데 늘 새로운 소재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뭔 젊은 애가 아까부터 자기를 따라오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연탄불 피우는데 숯이 필요해서 기다리고 계실 거라 그만 집으로 돌아갈까 하다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도 숫기가 별로 없었던 글쓴이는 용기를 내서 난생 처음으로 연예인에게 말을 걸려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 뒤에서 '저... 여보세...' 하려는데 갑자기 발밑에 까만 먼지가 일어나며 들고 있던 숯이 바닥에 쏟아지는 것이었다.
'염병할...' 아, 쪽 팔리게 하필 이럴 때 종이 가방이 찢어질 게 뭐람.
얼굴이 빨개지면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 양희은 선수는 회심의 미소를 지며 휘황찬란한 명동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말도 못 걸어 보고, 쫓아가지도 못한 채 망연히 그녀의 예쁜 청바지 엉덩이만 속절없이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날 어머니에게 조 터지지까지는 않고 당연히 꾸지람을 허벌나게 들었다.
숯을 사와야 꺼진 연탄불 피워 식구들 밥을 해 먹이는데 말이다.
양 선배는 명동 미도파 백화점 육교 건너편에서 있었던 숯 사건을 기억하고 계실까?
이래저래 양희은 씨는 글쓴이의 뇌리에서 영원히 잊지 못할 사람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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