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레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y 사람은 개처럼 살아야

부에노(조운엽) 2016. 3. 25. 14:08

 

 

 

 

사람은 개처럼 살아야

 

 

누군가 카푸치노의 풍성한 거품을 보고 구름을 떠올렸다면, 맑은 하늘 위의 흰 구름일 것이다.

비오는 날 그게 보고 싶어 기상예보를 봤더니 일주일 안에 맑은 하늘을 보기 힘들었다.

구름을 보기 위해선 떠나야만 한다.

한 남자가 카푸치노 잔에 구름을 담기 위해 바르셀로나로 떠났다.

이나영이 나오는 카푸치노 광고 '훔치고 싶은 거품'은 그렇게 탄생했다.

앤디 워홀이 광고주에게 들은 충고도 '스테이크가 아니라 스테이크가 지글거리는 소리를 팔아라!'였다.

 

나는 카피라이터를 '세상과 타협한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박웅현은 '좋다'란 말을 '나쁘지 않다'라는 문장으로 바꿔 말하려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쉽게 타협하지 않은 덕에 박웅현이 만든 광고 중에는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같은 광고가 있다.

"당시에는 '우리가 통신회사지 무슨 청바지 회사냐?'라고 엄청 욕먹었던 광고죠."

그는 '잘 자. 내 꿈 꿔!' 같은 추억의 광고도 만들었다.

박웅현은 '사람을 향합니다.', '생각이 에너지다.', '차이는 인정한다. 차별엔 도전한다.'처럼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광고들을 성공시켰다.


나는 유독 시간에 엄격한 박웅현을 위해 먼저 인터뷰 장소 근처에 도착했다.

하지만 '십분 전 열 시는 열시가 아니다.'라고 강조하는 이 남자의 인터뷰 시간은 예상보다 짧았다.

광고는 현대시다.

그러므로 나는 광고인 박웅현에 대한 인상을 급조한 졸작 하이쿠로 말하겠다.

'앗!' 하고 만나는 순간, '헉!' 하고 감동받았고, '어!' 하는 순간 끝나버렸다.

그가 150장짜리 소설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15초짜리 광고를 만드는 사람이란 걸 진즉에 깨달았어야 했는데.

 

 

 

 

 


먼저 박웅현의 딸에 대해 물었다.

그녀가 쓴 책 '인문학으로 콩갈다.'에서 본 어떤 문장 때문이었는데, 'Best one'보다는 'only one'이 되겠다고 말할 줄 아는 청춘이 좋아 보여서였다.

이 책에서 '널 키우는 건 내 이기심 때문이야. 무엇보다 넌 업그레이드 잘되는 재밌는 장난감이거든.'이라고 말하던 박웅현이 어린 딸에게 '실패는 누군가의 의견일 뿐'이라고 말하며 던지는 위로는 그가 아픈 청춘들 모두에게 던지고 싶은 말처럼 느껴졌다.

"넌 이미 대단해!"

"누구는 요즘 엄마들을 아동학대죄로 다 고소해야 된다는 말도 하더군요.
정상적으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사람들이 변해가더라고요. 애들도 이제는 학원 안 가면 놀 데가 없다는 말을 해요. 집단 광기 같아요. 사람들이 사랑과 집착을 구별하지 못하는구나. 좋은 대학을 나온 어떤 어머니가 아주 온화한 표정으로 '저는 우리 아들이 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완벽하게 만들 거에요!'라고 말하는데 정말 무서웠어요."

언젠가 그는 자신의 강연회에서 인생을 42.195Km의 긴 마라톤에 비유하면서 10Km만 달릴 거면 열심히 스펙 쌓으라는 독설을 날리기도 했다.

그는 이 사회가 점점 본질이 무엇인지 잊어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제가 14년째 수영을 해요. 남들은 한 달이면 배우는데 저는 6개월이 걸렸어요. 집사람이 저한테 쪽팔리지 않느냐고 물어요. 저요? 전혀 쪽팔리지 않아요. 제게 수영의 본질은 땀을 흘리는 거거든요. 그게 물이랑 싸워서 땀을 흘리건 25미터를 가서 흘리건 아무 상관이 없는 거에요. 본질이 무엇인지를 아는 건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중요해요. 본질을 추구해온 10년과 주변부만 추구해온 10년은 나중에 보면 너무 다르거든요."

박웅현은 달변가였다.

이토록 말을 잘하는 남자가 입사한 후 3년간 책상 정리만 하던 광고계의 지진아였단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것이 '안나 카레니나'나 '그리스인 조르바'를 반복해서 읽은 독서력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의 말처럼 고전 읽기는 '써서 먹기 힘든 보약을 먹는 행위'와 흡사할 것이다.

나는 최근 공중파 유일의 책 프로그램이 시청률을 이유로 폐지됐다고 얘기했다.

"안타까워요. 하지만 저는 책이 좋다는 편견도 위험한 것 같아요. 책이라는 권위에 무조건 굴복을 하는 것 말이죠. 영화도 있고 드라마나 만화에 나오는 한 구절, 얼마나 좋은 게 많습니까? 하지만 책이 한 사람의 머릿속 풍경을 가장 밀도 있게 압축적으로 정리해놓은 것 같아요. 사람들이 책을 안 읽게 되는 건 사회적 압박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서울대 권장도서라든지 무슨 추천도서 같은 긴 목록들. 나는 재미가 없는데 무슨 책을 안 읽으면 취급 못 받는 분위기가 있어요. 그러니까 억지로 읽긴 읽는데, 재미가 없는 거에요. 그런 속물적인 책읽기가 무슨 소용이죠? 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상호 교감입니다."

그의 말대로 실패란 그저 하나의 의견일 수 있을까.

세상에 좋은 살인과 나쁜 살인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실패엔 좋은 실패와 나쁜 실패가 있다.

의미있는 실패작을 남겼다는 의미에서 '미선이, 효순이 사건'을 다룬 박웅현의 아디다스 광고는 의미있는 실패일 것 같았다.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를 스포츠에만 한정하는 게 아까웠어요. 그러다 '미선이 효순이 추모 촛불 사건' 이야기를 듣게 된 겁니다. 제가 생각할 때 2002년은 월드컵 4강보다 시청 앞에 모인 10만으로 50년 후에 더 기억될 거에요. 그건 정말 불가능했던 일이었거든요. 그래서 반미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정치색을 못 본 거죠. 돌아보니 안 본 거에요. 그게 제 단점입니다. 일이 떨어지면 앞만 보고 가요. 하지만 광고는요, 소설가나 영화감독처럼 내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일할 수 없어요. 그건 부도덕한 짓입니다."

그에게 우리나라가 광고를 하기에 제약이 많은 나라냐고 물었다.
"무슨무슨 협회가 그리 많아요. 담에 걸리면 전국 담 협회 같은 게 생기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에요. 독도 문제만큼이나 수용의 폭이 좁은 거죠. 미국의 힘은 전 세계 가장 극렬한 반미가 미국 내에 있다는 겁니다. 그게 그들의 힘인 거죠."


나는 장미란 선수의 일화를 얘기했다.

간만에 친구들과 동해안에 피서를 갔는데, 어김없이 그녀의 가방 안에 들어 있던 건 무거운 '아령'이었다.

TV에 나왔던 그녀의 하소연은 '쉬고 싶은데 못 쉬어요!'였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가 '저두요!'라고 외치고 싶었다.

"사회 초년생 때 야근이 많으면 집에서 불만이 많으니까 선배들이 그래요. '광고를 잘하려면 가정을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제가 했던 말이 '가정을 포기하려면 광고를 왜 합니까?'이구요. 전 이게 중요한 포인트 같아요. 저는 광고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광고에 사명감이 있지 않아요. 근데 잘하고 싶어요. 왜? 거기서 내 밥이 나오고 딸 등록금이 되니까. 가정을 우선 존중해야죠."


어쩌다 '살아간다.'는 말이 '견디고 버틴다.'라는 말과 동의어가 되었을까를 고민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고민하기 전에, 내가 되물었어야 하는 질문은 이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몸에 병이 없길 바라지 마라, 사랑이 아프지 않기를 바라지 마라, 친구와 싸우지 않기를 바라지 마라…….

그렇게 불화와 갈등과 반목을 자연스레 함께 살아내는 것, 그런 것을 '견딘다.'라고 말하고 나면 그제야 어른이 되어가는 게 아닐까.

박웅현이 어느 회사의 광고가 만들어지는 처음과 끝을 총괄하는 역할로 들어갔을 때, 자신의 직함을 '심하게 미친 강아지'라고 설명했다.

굳이 부연 설명한다면 '미친 개'가 되겠다는 말이었다.

그의 생활신조가 '개처럼 살자!'라는 것이란다.

"개는 말이죠. 밥을 먹을 땐 밥을 먹고, 쉴 땐 쉬고, 주인에게 꼬리칠 때는 그것이 자기 존재의 유일한 이유인 것처럼 꼬리쳐요. '현재를 붙잡아라!'에 가장 충실한 동물이죠."

인터뷰를 마치고 패션 광고처럼 화려한 가로수 길을 걸었다.

오가는 자동차 사이에 요란한 엔진 소릴 내며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갔다.

광고 하나가 더 떠올랐다.

"언젠가 타려고 했지만, 언젠가라는 요일은 없다네!"

자신의 꿈이 마흔 살쯤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라고 말하던 사람은 김광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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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서른두 살에 요절했다.

할리 데이비슨의 광고처럼 '언젠가'라는 요일은 정말 없었던 것이다.



백영옥, 소설가

 

 

 

 

 

서른 즈음에, 김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