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정상에 오른 산악인 오은선 씨
죽은 동료 앞에서 찔찔 짜면서 나는 먹을 수밖에 없었다
"강풍이 불고 한치 앞을 못 볼 정도로 눈보라가 심했어요. K2 봉 캠프3 텐트에 먼저 내려와 있었지요. 그런데 뒤따라오던 대원들이 몇 시간이 지나도 오질 않아요. 그 시간은 지옥이었어요. 그 부모님들과 가족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실종대원들을 걱정하며 눈물인지 콧물인지 찔찔 짜면서 목이 메는 데도 나는 내 허기진 배를 위해 뭔가를 입에 넣고 있었어요. 인간이라는 게... 삶과 죽음이 도대체 뭔지..."
산악인 오은선 씨가 눈물을 참지 못하면서 하는 말이었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 히말라야 8천 미터 급 봉우리 9개를 올랐던 철의 여인일 수 있을까?
"어떨 때는 제가 바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저는 오로지 산에만 매달려 왔거든요. 처음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선발 되었을 때 철밥통인 공무원 직을 사표 냈어요. 직장 다니면서 하루도 지각, 결근한 적이 없었어요. 그 뒤 교사를 할 때도 그렇게 털고 떠났어요. 한 번도 8천 미터 원정 앞에서 망설여 본 적이 없었어요. 가게를 할 때 박영석 선배가 K2 봉에 가자고 했을 때도 미련 없이 정리했죠. 이 나이에 사귀는 남자 친구가 없다면 거짓말일 테고 시집도 가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산만큼 저를 매료시키지 못했어요. 전 마음을 정하면 주변상황에 개의치 않고 그냥 죽 밀고 나갔어요."
이 인터뷰를 하면서도 그녀는 원정 장비를 꾸리고 있었다.
또 혼자서 히말라야 등반을 하기 위해서다.
산에 오르면서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냐고 묻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제가 좋아서 간다는 것뿐입니다. 높은 산에 오르는 것은 살을 에듯이 춥고 숨 쉬는 것 자체도 고통이고 고독이죠. 그러나 저는 그 속에서 행복과 평화를 느껴요. 물론 등반 기록은 명예로 남겠죠. 그러나 남들이 뭐라든지 간에 저에게는 늘 새로운 길이죠. 아마 평범한 일만 계속 했었어도 저는 항상 열심히 살았을 거에요. 다만 이왕 뛰어든 거니까 최선을 다 하는 겁니다."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인데 2004년 에베레스트 원정에서 숨져 있는 동료 산악인을 보고서도 정상을 향했는데 그 상황에서도 올라가야겠다는 마음이 들던가요?
"제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손을 쓸 수 없게 상황이 종료되었어요. 자일에 매달린 채 숨져있는 그를 보고 이를 악물고 펑펑 울 수밖에 없었어요. 그가 나일 수도 있고요. 그때 상황에서 제가 내려오는 게 옳았을까요? 이듬 해 베테랑 산악인들이 시신 수습을 위해 거길 다시 갔지만 그들도 실패했어요. 당시 전 무서웠어요. 펑펑 울면서 그저 몸이 움직이는 본능대로 올라갔어요."
내려오니까 말들이 많았지요?
"혹독한 8천 미터에서 벌어진 것을 지상에서 이야기하니 '정상에 올라가는 것이 전부냐?', '휴머니즘 없는 등반이 무슨 의미가 있냐?'라는 비난이 쏟아졌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사실 저도 죽음 문턱에 갔다 왔습니다. 정상 등정 후 내려오다 탈진해서 나도 모르게 쓰러졌거든요. 한 발자국도 더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탈진해서 죽어가는 것은 차라리 편안했어요. 숨진 박무택 씨의 표정이 아기가 잠들었듯이 왜 그렇게 평온해 보였는지 이해가 갔어요. 이런 기분으로 가는 거구나... 그렇게 의식을 잃었는데 다른 나라 원정대의 세르파가 쓰러진 저를 발견한 거에요. 그렇게 구조되어 산소 마스크를 쓰고 이튿날 깨어난 겁니다. 한 편의 영화를 찍은 것 같았어요."
8천 미터 봉우리의 정상에 서면 어떤 기분인가요?
"어떤 산악인들은 정상에 서면 어떻다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더 오를 곳이 없으니 빨리 내려가서 쉬고 싶어요. 내려가는 것이 더 힘들거든요. 그렇게 내려갈 거면 왜 그리 힘들게 목숨 걸고 올라가느냐고 묻죠. 그러면 저는 이렇게 반문합니다. '당신은 하루도 안 돼 배설할 것을 왜 그리 애써서 먹느냐'고... 사는 게 그런 거 아닐까요?"
글 : 최보식 기자
내 마음 별과 같이, 지아
'꼬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 이용복 y 기이한 미술관 (0) | 2016.05.27 |
---|---|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송골매 y 아름다운 지구촌 (0) | 2016.05.25 |
거짓말이야, 김추자 y 로또 권하는 사회 (0) | 2016.05.24 |
순이 생각, 백미현 (0) | 2016.05.22 |
그날, 김연숙 y 당신은 거기에 있고 나는 여기에 있다 (0) | 2016.05.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