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대사 부인이자 시인인 이강원 님의 아주 잘 쓴 글이 길어서 몇 차례 나누어서 게재합니다.
1편에서 벌써 질리신 분도 있나 봐...
그래서 카페 게시글이나 댓글은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니까... ^^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에서 책을 보고 있는 여인
아르헨티나 드림
모든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그렇듯 이곳에도 디아기타, 케란디, 과라니 등의 인디안 부족들이 정착해 살고 있었다.
콜럼버스의 미 대륙 발견 이후 스페인 식민지 시대를 거쳐 1816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중앙집권주의자와 연방주의자들의 대립으로 정치적 혼란을 겪은 뒤 1853년 연방헌법을 제정, 초대 대통령을 선출했다.
19세기 말 이래 아르헨티나는 육류와 곡물수출에 힘입어 연평균 7%의 가파른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20세기 초반에는 일인당 GNP가 유럽국가들보다도 높았다.
수도인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뉴욕과 맞먹는 대도시로 커졌다.
당연히 유럽인들에게는 '아메리칸 드림'을 능가하는 '아르헨티나 드림'으로 비쳐져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동구 등지에서 많은 이민자들이 몰려왔다.
그러나 그들의 이민가방 속에는 앞으로 '아르헨티나 병'을 일으키는 병균이 되는 사회주의와 아나키즘도 함께 들어 있었다.
이들은 자리잡자마자 노동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노동자의 몫을 챙기기 시작했다.
때 맞추어 등장한 후안 도밍고 페론 대령은 노동자들을 정치적으로 유효 적절하게 이용하는 뛰어난 동물적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945년 54%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2차대전 후 곡물수출로 벌어들인 엄청난 외화를 노동자들에게 나눠주기 바빴고, 소비재 위주로 이루어진 공업발전계획은 자본재 수입의 증가를 유발, 외환사정을 악화시켰다.
급성장할 수 있는 또 한번의 기회는 페론의 포퓰리즘 정책으로 물 건너가고 아르헨티나는 구조적 만성 고질병환자로 곤두박질치게 되었다.
페론주의는 생산성은 떨어지지만 파업에는 뛰어난 노동자, 기업 경쟁력보다는 정경유착의 꿀맛을 탐닉하는 기업가, 국가발전이나 경제성장 등은 뒤로한 채 눈앞의 이익을 챙기는 정치인, 국가의 발전은 안중에도 없이 개인의 몫만 게걸스럽게 찾는 국민 등 집단이기주의 그룹을 양산해냈다.
설상가상으로 1950년대 들어 기본재 수입증가와 미국, 영국이 실시한 아르헨티나 산 농축산물 수입 제한으로 외환사정은 더욱 악화되었다.
결국 페론은 경제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1955년 군 쿠데타로 실각, 스페인으로 망명했다.
그는 1972년 다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복귀하지만 세번째 부인 이사벨을 부통령으로 삼는 씻을 수 없는 실책을 범했다.
1974년 7월 그가 사망하자 대통령직을 승계한 이사벨은 세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었지만 너무 무능하고 무기력했다.
가진 것이라고는 달랑 페론이라는 이름 두자뿐이었다.
이런 지도자의 무능을 절호의 기회로 이용하려는 좌익 게릴라와 우익의 테러는 국가를 혼란에 빠트려 1976년 군사 쿠데타를 유발했다.
이 군사 쿠테타는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어둡고도 슬픈 사건으로 기억된다.
좌익 게릴라 분쇄라는 명분으로 사라져 아직까지 찾지 못한 영혼이 1만명에서 3만명이라고 한다.
군사정권은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벌인 긁어 부스럼 전쟁인 포클랜드 전쟁에서 패전, 1983년 대망의 문민정부에 정권을 내주었다.
"알폰신 대통령이 이끄는 문민정부에게 거는 기대는 참 컸지요. '더러운 전쟁'이라고까지 불리던 군사독재에서 풀려났으니까요. 그런데 갈수록 태산이라고 이번에도 꽝이지 뭡니까. 이번에는 5,000%까지 가는 살인적인 인플레의 덫에 치이게 된 겁니다."
백 년도 더 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지하철
페로니즘의 망령
사랑은 가도 옛 말은 남는다던가?
페론은 갔지만 그가 남긴 페론주의의 망령은 불사조처럼 되살아나 아르헨티나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발목을 잡고 있다.
"알폰신 대통령도 페로니즘의 희생자지요. 매사에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 이기주의집단에 그의 말이 먹혀들겠어요? 처음에는 구조조정도 시도했지만 페로니즘의 벽을 뚫지 못하고 결국 임기를 6개월 남겨놓고 물러났지요."
조그만 구멍가게를 하는 일다 아줌마의 얘기다.
지평선을 삼킬 만큼 광활한 라 팜파.
며칠을 달려도 인가조차 없으며 오직 끝없는 지평선과 광대한 하늘만 존재하는 대평야가 바로 라 팜파다.
이래도 상상이 안되면 지평선에 홀려 현기증에 빠지는 병(horizontal vertigo) 을 일으키는, 다림질해놓은 듯한 막막한 대지를 상상해보면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라 팜파는 요술주전자처럼 무한한 곡물과 고기를 생산, 아르헨티나에 주체하지 못할 만큼 막대한 부를 안겨주었다.
"그때는 참 굉장했지요. 금이 너무 많아 금고에 다 넣을 수가 없어 은행 복도에까지 쌓아놓았어요. 국민이 원하면 길도 금으로 깔아주겠다고 큰소리치는 지도자도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아르헨티나의 황금기(The golden age)였지요. 이때 먼 곳을 내다보고 중장기 국가 발전에 재투자하는 지도자를 못 만난 것이 두고두고 한으로 남습니다."
텔레페 방송국 기자 홀헤는 한숨을 깊게 쉰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고풍스런 건물들과 조각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호화롭고 격조 있는 가로등도 대부분 이때 건립되었는데, 유럽산 원자재로 유럽 최고의 건축가와 조각가가 설계하고 만들었다.
거리 곳곳에 깔린 조약돌(cobble stone)도 한 장에 1달러씩 주고 사왔다고 한다.
마침 집 앞길도 그 돌길이어서 세어보았다.
어림잡아도 100m에 80장 이상이니 부에노스 주변에 깔린 것만 합쳐도 천문학적인 액수가 될 것이다.
옛사랑의 그림자만큼이나 안타까운 지난 날 영화의 자취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묘한 매력을 가진 도시다.
고색이 창연한가 하면 녹색의 나무와 꽃이 화사하고 넓은 거리와 그 모퉁이마다 자리잡고 있는 카페는 가슴 깊이 숨어 있는 우수의 줄을 팽팽하게 조인다.
부에노스의 봄은 자스민의 향기가 불러온다.
담장마다 그득 그득 피어오른 이 꽃의 향기는 밤에 더 짙어져 이 꽃향기는 향수로도 쓰이지만 최음제로도 쓰인다니 이 도시가 잠자지 않는 도시라는 별명을 가질 만하지 않은가.
자스민의 바통은 자카란다 나무가 이어 받는다.
2m도 넘는 이 나무는 그 우락부락한 가지에 조그만 종 모양의 보라색 꽃을 흐드러지게 피워낸다.
만개한 이 꽃의 보라색으로 잠식당한 도시의 모습은 숨을 들여 마실 정도로 아련하고 아름답다.
이 꽃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피는 꽃은 자카란다보다 한길은 더 큰 띠빠 나무다.
삶은 계란 노른자 같은 색깔의 꽃을 노랗게 뿜어낸다.
도시의 어느 거리를 걷는가에 따라 떨어진 꽃잎으로 길 색깔까지 달라진다.
가을과 겨울에도 꽃의 행진은 멈추지 않는다.
야자수는 흰 꽃을 무더기로 피워내고 술통모양을 빼닮은 빨로 보라초라는 나무는 분홍색과 흰색 꽃으로 큰 그림자를 만들어줄 정도다.
피고 지는 꽃을 묵묵히 지켜주는 꺾다리 아저씨 유칼립투스 나무와 참나무도 곳곳에 빽빽하다.
세련된 용모와 옷차림의 시민들은 세련된 도시와 어우러져 누구나 유럽에 와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게다가 도시를 거니는 사람들을 보면 거의 100% 백인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이곳처럼 유색인종이 드문 곳은 보기 힘들다.
누구는 스페인이 식민지로 삼기 전에 인종청소부터 하고 들어 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은 아침에 길에 나가서 흑인을 보면 그날은 재수가 좋다고 말합니다. 그 정도로 귀하다는 얘기지요."
식품점을 하는 중국인 첸이 신기하다며 들려주었다.
이들은 겉모습뿐 아니라 머릿속까지 자신들은 라틴아메리칸이 아니고 유럽인이라고 믿고 있다.
그것도 확고하게.
자신의 땅이 유럽에 붙어야 할 것이 잘못되어 남미에 붙게 되었다고 불평하고 자궁 속의 아기도 세상 나올 때 남미 땅에서는 나오기를 거절한단다.
오죽하면 아르헨티나 제2의 국가가 된 탱고도 처음에는 천시하다가 프랑스에서 좋다고 하자 '그래? 정말 괜찮네!' 하고 다시 받아들여 그 진가를 부여받았다.
(계속)
글 : 시인, 수필가, 주 아르헨티나 대사 부인 이강원 님
웃어서 아름다운 아르헨티나 ^^
라틴의 전설
Gracias a la vida
Mercedes So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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