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무조건 돕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y 잘못된 만남, 김건모

부에노(조운엽) 2013. 2. 1. 14:07

 

지뢰로 인해 다리 하나를 잃은 캄보지안

 

 

무조건 돕는다는 것은 정말 도움이 안 된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캄보디아에는 우리나라에서 많은 단체와 민간인들이 자선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다.

문명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사는 이들에게 조금 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나눔을 베푼다는 것은 아주 훌륭한 일이다.

그런데 한국인에게 도움을 받고 성장한 아이들이 현지 사회에 나와 적응을 잘 하지 못하고 부랑자나 나약한 젊은이가 되어 거리를 배회하여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도 들린다.

불쌍하다고 그냥 돈 주고, 때 되면 먹을 것, 입을 것을 공짜로 쥐어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모양이다.

이들에게 아무 대가 없이 도와주는 것 보다 자립할 수 있는 마인드나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더 중요한 시점이 된 모양이다.

인터넷 '좋은생각사람들'을 보다가 공유하고 싶은 글이 있어 올립니다.

 

 

 

 

남미의 유대인

 

가난한 사람의 자존심

 

미국 유학 시절이었다.

어느 날 생활비가 다 떨어져 막막한 상황에 처했다.

마침 잘 사는 친구가 있어서 한 달 후에 갚을 수 있다고 말하고 1,000달러를 빌려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는 빌려줄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대신 거저 주겠다고 하였다.

거저 받을 수 없으니 빌려 달라고 하자 빌려는 줄 수 없고 거저 받으라고 하였다.

결국 돈을 빌리지 못하여 한 달 동안 고생한 적이 있었다.

왜 거저 주겠다는 돈을 안 받았을까?

나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얼마 후 가난한 유학생 친구가 나에게 1,000달러를 빌려 달라고 하였다.

나도 넉넉하지는 않았으나 친구 사정이 하도 딱하여 빌려주었다.

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돈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갚았다.

그렇게 일 년 반 만에 빌린 돈을 다 갚았다.

왜 가난한 친구에게 마지막 1달러까지 다 받아냈을까?

그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서였다.

그와 나는 지금까지 좋은 친구로 지낸다.

유대인은 가난한 사람도 남을 도와야 한다는 계명을 갖고 있다.

왜 그럴까?

가난한 사람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서이다.

유대인은 아무리 가난해도 그가 자신을 가난뱅이로만 여기지 않게 하기 위하여, 기부에 의존해 사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하여 기부하며 살도록 법을 만들었다.

가난한 사람의 자존심에 대한 배려는 기부 방법에 대한 논의에도 잘 드러난다.

중세기 유대인 철학자 마이모니데스는 기부자의 기부 방법에 따라 선행의 정도를 여덟 단계로 나누었다.

 

첫 번째는 어려운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던지, 동업을 하던지, 직업을 구해 주는 일이다.

도움을 받는 사람이 전혀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고 어려움을 해결하도록 길을 열어 주는 것이다.

 

두 번째는 기부자나 수혜자가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기부가 이루어지게 하는 방법이다.

수혜자는 누가 기부자인지 모르기 때문에 자존심을 세울 수 있고, 기부자는 은밀하게 도움을 주어 순수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

기부 단체를 통하여 돕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성전의 한 방을 지정하여 아무나 은밀하게 구제금이나 구호품을 갖다 놓을 수 있게 하였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자신을 노출하지 않고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세 번째는 기부자는 누구를 돕는지 알지만 수혜자는 누가 돕는지 모르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형편이 어려운 사람의 집에 몰래 돈이나 필요한 구호품을 놓고 오는 경우이다.

이 경우 도움을 받는 사람은 누가 자기를 돕는지 모르므로 덜 부끄럽다.

 

네 번째는 도움을 받는 사람은 자기를 돕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만 도움을 주는 사람은 누구를 돕는지 모르는 경우이다.

고대 유대인들 중 여유 있는 사람들은 보자기에 돈이나 곡식 등을 느슨하게 싸서 어깨에 메고 길을 걷는 풍습이 있었다.

그러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그 뒤에 가서 필요한 대로 가져가면 되었다.

이렇게 하여 도움을 받는 사람이 도움을 주는 사람에게 자기의 모습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부끄러움을 면할 수 있었다.

 

다섯 번째는 도움을 요청받지 않았으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직접 도움을 주는 경우이다.

도움 받는 사람이 아쉬운 소리를 하기 전에 도와줌으로써 직접 도움을 부탁하는 어려움을 면하게 하는 경우이다.

 

여섯 번째는 요청을 받고 직접 돕는 단계이다.

 

일곱 번째는 자기가 도울 수 있는 양보다 적게 돕되 기쁜 마음으로 돕는 경우이다.

 

여덟 번째는 무뚝뚝한 태도로 돕는 경우이다.

이스라엘 유학 시절이었다.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을 드나들던 아내가 급기야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로 가는데 혈압이 계속해서 급격하게 떨어졌다.

병원에 도착하니 이미 복부에 4리터 이상의 출혈이 진행되어 위험한 상태라고 하였다.

아내를 수술실에 들여보내 놓고 병원 창밖을 내다보며 암담해 하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할 수 없이 지도 교수님께 전화하고 멍하니 서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어깨를 두드렸다.

전화 드렸던, 헬버 라닝 교수였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아내는 생명을 건졌다.

입원실로 옮긴 후 이젠 병원비가 문제였다.

병원비도 없었고 들어 놓은 보험도 없었다.

그런데 라닝 교수를 통하여 사정을 알게 된 학교 친구들이 돈을 모아 왔다.

뿐만 아니라 병원에서는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보험이 없는 것을 알고 병원비를 50% 감해 주었다.

병원비를 내고 나니 오히려 약간의 돈이 남았다.

그 돈으로 책을 사서 학교 도서관에 기증하였다.

학교 친구들과 병원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인생은 도우며 도움 받고 살게 되어 있다.

그러나 돕는 데는 지혜가 필요하다.

어려운 사람을 도울 때 가장 배려하여야 할 점은 무엇인가?

도움 받는 사람의 자존심이다.

가난한 사람에게서 자존심마저 빼앗아 간다면 그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최명덕 : 건국대학교 교수, 한국 이스라엘 문화원 이사

 

 

 

유대인의 참혹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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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만남, 김건모

난 너를 믿었던 만큼 난 내 친구도 믿었기에
난 아무런 부담 없이 널 내 친구에게 소개시켜 줬고
그런 만남이 있은 후로부터 우리는 자주 함께 만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함께 어울렸던 것뿐인데
그런 만남이 어디부터 잘못됐는지
난 알 수 없는 예감에 조금씩 빠져들고 있을 때쯤
넌 나 보다 내 친구에게 관심을 더 보이며 날 조금씩 멀리하던
그 어느 날 너와 내가 심하게 다툰 그날 이후로
너와 내 친구는 연락도 없고 날 피하는 것 같아
그제서야 난 느낀 거야 모든 것이 잘못돼 있는 걸
너와 내 친구는 어느새 다정한 연인이 되있었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난 울었어
내 사랑과 우정을 모두 버려야 했기에
또 다른 내 친구는 내 어깰 두드리며
잊어버리라 했지만 잊지 못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