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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기적의 드라마가 세계인을 울렸다

부에노(조운엽) 2010. 10. 14. 04:54

 

 

 첫번째 구조자가 대통령과 포옹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칠레노스

 

 

칠레 기적의 드라마가 세계인을 울렸다

 

 

칠레 북부 산 호세 광산에서 연출된 한편의 기적같은 드라마가 칠레 국민을 또 한번 똘똘 뭉치게 만들고 세계인을 울렸다. 

세계 각국 언론은 69일만에 이뤄진 33명의 칠레 광부 구조작업 현장에 차려진 '희망 캠프'의 환호 분위기를 전하면서 '산 호세 드라마가 빈부격차 등으로 갈라져 있던 칠레를 단결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칠레는 지난 2월 말 발생한 강진과 지진해일(쓰나미)로 대규모 피해를 입은 바 있다.

전 세계적으로 역사상 5번째로 큰 규모였던 강진은 500여 명의 사망자와 함께 300억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초래했다.


 

 

칠레 강진 현장에서 수거해서 남아공으로 간 칠레 국기

 


그러나 강진, 쓰나미 피해 현장에서 수거한 흙 묻고 찢긴 국기는 2010 남아공화국 월드컵에 
참가한 칠레 축구 국가대표팀 훈련장에 나부끼면서 칠레 국민의 강인한 재건 의지를 알리는 상징이 됐다.

산 호세의 영웅들이 연출한 드라마에 칠레 국민은 또다시 끈끈한 단결력을 과시했다.

수도
산티아고 데 칠레의 한 주민은 광부들의 무사 생환을 바라는 염원을 담은 딸의 편지를 들고 200㎞를 달려 현장에 도착했다.

산티아고 시내에서 종이 꽃을 팔아 연명하는 한 여성은 산 호세를 찾아 광부 가족들에게 '희망의 종이 꽃'을 전달했다.

칠레의 광산 거부 중 한 명인 에두아르도 빠르까스가 광부 1인당 1만 달러씩을 제공하겠다고 밝힌 것을 계기로 기부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구조 현장에서 매몰자 가족과 취재중인 언론

 


'희망 캠프'에서 급식을 도와온 베르나르다 로르까는 '칠레는 매우 분열된 국가였다.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빈곤층은 갈수록 어려워졌다'면서 '그러나 이곳에서는 모두 하나가 됐다'고 말했다.

산 호세 광산 사고가 칠레와 볼리비아 관계 개선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볼리비아는 1879년에 벌어진 칠레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뒤 120㎢에 달하는 영토와 400㎞ 길이의 태평양 연안을 상실하고 내륙국으로 전락했다.

볼리비아의 태평양 진출 노력을 둘러싼 오랜 갈등으로 양국은 1962년 이래 상호 대사관을 두지 않고 있으며, 1975~1978년 사이 대사관을 설치했다가 폐쇄했다.

2006년 중도좌파 성향의 미첼 바첼레뜨 
전 칠레 대통령과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상당한 의견 접근을 이뤘으나 지난 3월 중도우파 성향의 세바스띠안 피녜라 대통령이 취임한 뒤로는 협상에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칠레 정부가 33명의 광부 가운데 한 명인 볼리비아인 까를로스 마마니(23)를 우선적으로 구조하는 등 성의를 보이고, 모랄레스 대통령이 피녜라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하면서 두 정상이 정치 성향의 차이를 뛰어넘어 다가설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구조된 뒤 감사 기도하는 광부

 

한편 매몰 광부 33명 모두가 칠레의 영웅이었다.

최후의 구조 순간에도 이들은 서로 마지막까지 남겠다며 뜨거운 동료애를 과시, 전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33명의 영웅 가운데 첫번째 구조자와 유일한 외국인, 최연장자와 최연소자는 특히 언론의 집중 관심을 받았다.

첫번째 구조자로 선정돼 33명의 동료 가운데 전 세계 언론으로부터 가장 많은 각광을 받은 행운의 사나이는 플로렌시오 아발로스(31)다.

13일 AFP통신 등에 따르면 아발로스가 첫 구조자로 선정된 것은 동료 가운데 가장 건강상태가 좋아서였다.

아발로스가 첫번째 구조자로 선정된 사실이 알려진 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동료 가운데 가장 부끄럼을 많이 탄다는 이유로 매몰 기간에 구조팀이 내려보내준 비디오 카메라로 동료들의 모습을 담으면서 카메라 뒤로 숨었었다.

 

구조 작업을 생중계하던 미 CNN방송 화면 하단에는 '구조 광부(Miners Rescued) 1'이라는 굵은 글씨가 선명히 박혔다.

구조 광부의 수를 전하는 방송 자막은 약 1시간 간격을 두고 2→3→4→5로 바뀌어 갔고, 세계의 기쁨도 함께 커졌다. 

 

 

 

Mario Sepúlveda

 

아발로스 다음에 두 번째로 구출된 마리오 세뿔베다(40)는 구조 직후 놀라울 만큼 침착함과 여유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특히 세뿔베다는 땅에 발을 딛기도 전에 소리를 지르며 귀환을 자축한데 이어 주위를 에워싼 구조대원들과 피녜라 대통령에게 들고 온 돌멩이들을 건네며 '지하 감옥에서 기념품으로 가져왔다'고 말해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줄곧 신과 악마 사이에서 싸워야 했다'며 힘들었던 순간을 떠올린 뒤 '나는 결국 신의 손을 잡았다. 신이 우리를 이곳에서 꺼내 줄 것이라 믿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광부로 일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대통령에게 지하 갱도의 돌을 기념으로 선물하는 세뿔베다


 

네번째로 구조된 볼리비아의 마마니는 이번 사고로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는 행운을 잡았다.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그에게 집과 직업을 제공할 것이라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구조 전날인 12일 수도 라파스에서 연 외신 기자회견을 통해 '마마니가 구조돼 귀국하면 집과 안정된 직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마니는 볼리비아 국영에너지회사 YPFB에서 일자리를 얻을 것으로 알려졌다.

 

 

 

 

막내인 지미 산체스(19)는 다섯번째로 구조됐다.

광산에서 일한 지 5개월밖에 되지 않은 산체스는 구조 후 '더는 고통받고 싶지 않다'며 악몽 같은 시간을 회고했다.

그는 이어 '나는 신과 악마와 함께 있었다. 가장 힘들 때는 내게 딸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면서 매몰 직후 태어난 2개월된 딸이 자신을 지탱해준 힘이었다고 말했다.

최연장로서 매몰 기간에 매몰 광부들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한 마리오 고메스(63)는 아홉번째로 지상의 따스한 햇볕을 만났다.

고메스는 매몰 17일째인 지난 8월22일 '피신처에 33명이 모두 생존해 있다'는 쪽지를 올려보내 광부 전원의 생존사실을 알린 주인공이었다.

그는 한때 선원으로 일한 적이 있어 별명이 항해사였는데, 매몰돼 있는 동안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고메스는 구조 캡슐에서 나오자마자 칠레 국기를 든 채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감사 기도를 해 주위를 숙연케 했다.

12살 때부터 광부로 일해온 그는 진폐증을 앓고 있었으며, 오는 11월 은퇴할 생각이었다.



 

인근 꼬삐아뽀 시내의 아르마스 광장에서는 1만 명 가량의 시민들이 광장을 가득 메우고 밤을 지샜다.

칠레 전역 교회에서는 첫 광부가 구조된 순간 일제히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사람씩 구출될 때마다 칠레 전역엔 마치 거대한 자명종이 울리듯 환호성이 퍼져 나갔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광산이 된 이 지역은 앞으로 광부들의 성지가 될 전망이다. 피녜라 대통령은 첫 광부 아발로스가 구출된 직후 '희망캠프라는 이름은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이름이었다'며 '이곳에 담긴 정신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기념지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계적 관심을 모은 이번 구조 작전을 칠레인 모두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칠레 정부의 노력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구조 캡슐 피닉스의 외장은 빨강, 파랑, 흰색으로 3등분돼 칠해졌는데, 이는 칠레 국기를 구성하는 색깔이다.

 

Gracias a la vida, 칠레나 Violeta Par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