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에서도 통할 타조 사육 뉴질랜드에선 타조 고기를 '오스트리치 미트(Ostrich Meat)'가 아닌 한국식 발음 그대로 타조(Tajo)라고 한다. 그는 그곳에서 난생 처음 축산업에 도전했고, 타조에 그의 인생 모든 것을 걸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결국 뉴질랜드 타조 고기의 90%를 생산해내는 타조 대농의 주인으로 자리를 잡았다.
증권회사에서 20년간 명성을 달리던 배씨는 돌연 뉴질랜드로의 이민을 결행했다.
배씨 또한 그 또래들이 그렇듯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충남 홍성군 광천이 그의 고향이다.
10대에 서울로 올라와 당시 동대문상고(청원고)에서 공부를 마치자 마자 바로 증권회사에 취직했다.
회사를 다니며 홍익대 무역학과(야간)에 다니며 공부했다.
1976년부터 96년까지 딱 20년을 증권회사에 몸을 담았다.
그의 전담은 채권.
대우, 신한, 동부증권 등 회사를 여럿 옮겼지만 언제나 채권을 주특기로 삼았다.잘 나가던 채권맨을 그만두고 왜 이민을 결심했느냐 물었다.
"채권을 오래 하게 되니 전체 경제 흐름을 읽게 됩디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우리 경제의 거시적인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빈말이 아니라 90년대 말에 IMF가 올지 예상했습니다. 거품 가득했던 경제가 어려워질 것이란 것을요."
그는 마흔까지 월급장이 생활을 하고 그 이후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겠다는 인생계획을 이미 세워둔 터였다.
"20년 직장생활을 했으니 이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결정한 게 이민입니다."
그럼 왜 뉴질랜드인가.
"당시는 IT산업이 각광을 받을 때였습니다. 그 다음은 뭐가 올지 궁리했는데 아마도 1차 산업이 다시 뜨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증권회사에서 만날 머리만 움직여 돈을 벌다 보니 땀 흘리며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죠. 그래서 땅 넓은 나라인 뉴질랜드를 선택했습니다."
그는 뉴질랜드에 와서 많이 돌아다니며 살펴봤다.
뉴질랜드의 축산업은 소와 양이 주축이었다.
소나 양은 언제든 시작해도 좋았다.
안정적이었다.
그래서 그는 목표에서 제외했다.
안정적이란 건 발전 가능성도 높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때 타조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당시에도 타조는 인지도가 낮았지만 나중에 시장성이 나아지리란 것을 예상하고 타조에 몸을 던졌다.
"웰빙 바람이 불면서 타조의 고기나 가죽, 기름 등이 분명 소비되겠구나 짐작했습니다.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막연한 믿음 하나로 시작했죠. 주변에선무모하다고 말렸습니다."
그는 99년도에 뉴질랜드 오클랜드 인근에 5만㎡ 되는 농장을 샀다.
4마리의 타조로 시작한 농장이다.
주변에서 타조를 사와 제일 좋은 어미 타조를 만드는 것이 첫 목표였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넌다고 하는데 내 신조는 그런 다리는 건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남는 게 없어서입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미래가 있습니다. 과거의 경력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망설이다가는 새로운 일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그는 '해외 나가서 사업을 할 때 그래도 땅을 사서 하는 일은 그나마 안정적'이라고 했다.
어떻게 되든 땅은 남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 타조를 시작하며 젖소도 250마리 키웠다.
타조를 늘리면서 젖소는 차츰 줄였다.
그리고 2000년 11월 100만㎡ 되는 지금의 농장을 구입했다.
현재 그가 키우고 있는 타조는 3,000마리.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타조농장이다.
그는 일단 시작한 것이니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데 온 심혈을 기울였다.
최고의 고기는 사육에 달렸다.
들쭉날쭉 없는 최고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였다.
다행히 뉴질랜드는 질병이 별로 없는 청정지역이었고 타조는 또 면역성이 강해 혹한 혹서도 잘 견뎌냈다.
사업 초기 사료를 사다 쓸 때였다.
사료 보관이 잘못됐는지 먹이가 이상해 어린 타조들이 죽어나갔다.
처음엔 원인도 몰라 속만 끓였다.
700~800마리가 죽어나가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사료 때문이었다는 이유를 알고 난 뒤 사료회사에 소송을 걸었고 3년여 법정다툼을 벌여야 했다.
그 3년간 자료를 수집해나가는 과정에 타조의 먹이 등 사육에 관한 귀중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타조에 대한 잘못된 인식 중 하나가 타조는 아무거나 잘 먹으니 아무렇게나 먹이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도 물에 만 밥만 먹고 계속 살 수는 없잖아요. 타조도 마찬가지에요. 타조를 날개 달린 소라고 합니다. 풀을 뜯어먹고 사는 타조에게 풀의 영양소를 분석해 식물성 단백질이 많고 미네랄이 풍부한 것을 골라서 키워 먹였습니다. 축산이 발달된 국가답게 뉴질랜드에는 초지관리에 대한 지식이 많아 도움이 됐습니다. 타조는 또 스트레스가 극약입니다. 시속 60km로 달리는 놈들이라 넓은 공간이 필요하죠. 자연에서 편하게 맘껏 뛰어놀 수 있게 해야 좋은 품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한국은 땅값이 비싸 그런 넓은 땅 구하기도 쉽지 않겠죠."
타조 고기를 생산하면서 그는 브랜드를 고민했다.
그냥 오스트리치 미트라고 하면 안될 것 같았다.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타조'란 한국식 발음이 쉽고 이해도 빨랐다.
그래서 배씨 농장에서 나오는 타조 고기는 'Tajo'란 브랜드가 찍힌다.
뉴질랜드 타조의 90% 이상을 배씨가 생산해내니 뉴질랜드에선 타조고기는 우리말 그대로 타조라 부른다.
뉴질랜드 고급식당 메뉴판의 타조요리 옆에는 'Tajo'가 명기돼 있고 웨이터도 "타조"하면 다 알아듣는다.
그는 "매년 타조 고기 수요가 급증해 고기를 댈 수가 없을 지경"이라고 했다.
그는 5개년 계획으로 6만 마리로 키울 생각.
"이제 겪을만한 시행착오는 다 겪었다고 생각합니다. 10년의 긴 시간을 겪어 쌓은 노하우가 있어 두렵지 않습니다."
그는 청년 실업 때문에 힘들어하는 고국의 젊은이들에게 과감히 외국으로 나갈 것을 권고했다.
"IT만큼이나 1차 산업이 미래의 주요 산업이 될 것입니다. 외국에 눈을 돌리세요. 거기에 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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