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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 감독 신화 ‘페루 배구의 히딩크’ 박만복

부에노(조운엽) 2012. 1. 30. 19:11

 

 

 

 

38년 감독 신화 ‘페루 배구의 히딩크’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그를 ‘페루의 히딩크’라 불렀다.

배구의 불모지인 페루에서 여자배구 첫 올림픽 은메달을 일궈냈으니 그럴 만도 하다.

1974년 진출해 38년이 흐른 지금까지 페루 여자배구의 총감독이다.

페루에선 ‘맘보 박’으로 더 유명한 박만복 감독은 ‘대한항공 창단 감독으로 4년째를 맞던 1974년 당시 이낙선 배구협회장의 추천으로 페루 여자배구 감독직을 맡았습니다. 페루가 어떤 나라인지 알지도 못하고 떠났지요. 3~4개월 뒤 가족들이 이주했는데, 언어 적응 등 현지 정착 초기 1~2년이 참 힘들었어요.’라고 말했다.

 

1년 계약으로 갔지만 그의 지도력 아래 페루 여자배구는 1982년 세계대회 준우승, 1984년 LA 올림픽 4위, 1987년 세계대회 전승 우승을 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선 소련과의 결승에서 아쉽게 분패해 은메달에 그쳤지만 페루에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안겼다.

 

 

 

 

“내 훈련방식이 다소 가혹하다고 해서 처음엔 비난도 많이 받았지요. 그런데 성적이 나오자 여론도 바뀌었죠.”

진출 당시 1,800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이 지금도 2,500달러 수준일 정도로 페루는 경제환경이 어려운 나라다.

밥벌이를 못하면 대표 선수가 되어도 운동을 계속하기 어렵다.

박 감독은 선수들의 취업도 도왔고, 훈련도 퇴근하고 난 뒤 오후 4시부터 했다.

박 감독은 유연성, 체격과 체력, 탄력을 갖춘 선수들한테 한국식 기술 배구의 훈련법을 결합하면서 좋은 성적을 냈다.

또 오랜 기간 감독직을 맡은 힘도 컸다.

 

 

 

 

“대표팀 감독은 최소한 5년은 보장해야 자기의 색깔이 온전히 나오게 됩니다. 한두 해 성적이 좋거나 나쁜 것으로 감독을 평가하는 그런 방식으론 절대 대표팀 경쟁력을 향상하거나 유지할 수 없지요.”

 

경희대 의대 약학과 출신인 박 감독은 선수 시절 9인제 배구에서 동국대, 원광대와 국내 3파전 시대를 열었다.

이화여고와 숭의여고 코치를 거쳐 국세청과 대한항공 창단 감독을 지낸 뒤 페루에 진출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집니다. 고향인 속초로 돌아와 살고 싶지요. 그런데 명절 때면 자식들은 페루를 고향으로 알고 찾아오고, 아내도 이젠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아진 페루가 더 좋다고 하네요. 이러다 페루에서 여생을 마칠 것 같아요.”

 

페루는 박 감독에게는 물론 홍콩과 미국, 캐나다, 페루 등지에 흩어져 사는 4남매의 자식들에게도 제2의 조국이 됐다.

“자식들도 4명이 각자의 방향에서 노력하면 잘 되겠지요. 내겐 약사를 버리고 배구라는 나만의 길을 택했던 게 좋은 결과로 돌아왔습니다. 내가 좋아한 길을 갔기에 이룰 수 있었던 삶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Concierto para una sola voz, Tania Libert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