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라와 베라의 눈과 마주친 아르헨티나 푸에르토 마드린의 고래
은퇴 선원의 항해일지 중 고래와 창녀
미지의 먼바다를 항해하는 것이 사나이의 로망 중 하나인 것은 옛날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나보다.
그러나 바다는 가혹해서 마젤란 시대의 항해자들은 돛단 범선에 수십 명의 선원이 타고 바람에만 의존해 대양을 항해하다 보니 많은 희생자가 생겼다.
몇 달 육지 구경을 못 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당시 범선 항해에서 선원들이 가장 무서워했던 것은 괴혈병, 쥐보다 무풍지대였다고 한다.
차라리 앞바람이라도 불면 돛을 이용해 지그재그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하지만, 바람이 안 불면 그냥 망망대해에서 동료 선원들과 바다만 쳐다보며 농담 따먹기나 하면서 서서히 굶어 돌아가실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무풍지대에서 선원들이 전부 죽으면 배는 해류를 따라 떠다니는 유령선이 되었다.
방역이 될 리가 없는 협소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 생활을 하는 대항해시대 선원들은 당연히 잘 아팠다.
각종 질병을 줄이기 위해선 비타민C가 필수이고 자주 씻어야 하는 것조차 몰랐다.
수많은 선원이 질병과 피부병에 시달리면서 원인도 모른 채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이는 거의 18세기가 되어서야 비타민 C의 중요성을 알게 되어 선원들에게 절인 양배추라도 먹이고 찬물에 목욕을 시켰다.
당시 식량은 염장 고기, 비스킷, 오래된 물에 불과했다고 한다.
비스킷은 돌처럼 딱딱한 데다 곰팡이가 끼고 가장자리는 쥐가 갉아먹었다.
오래된 물에는 죽은 쥐가 떠다니기도 했다.
그런 썩은 물조차 부족해 씻지 못하고 땀 흘리고 옷을 빨아 입지도 못해 거지 몰골로 뱃일을 했다.
당시 범선은 화재 때문에 추운 지방에서도 불을 피울 수가 없어 추위에 떨고 물을 데워 씻을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용감 무식한 하급 선원들을 통솔하려면 엄격한 규율이 필요해서 술이나 음식을 새벼먹은 놈들은 체벌로 채찍으로 때렸고 맞다가 죽는 선원도 있었다고 한다.
특히 식사 배급 시 자기 혼자 좀 더 먹으려고 동료 선원을 다치게 한 경우는 바다에 던져버릴 정도로 교도소보다 더 엄격하게 통제했다.
아메리카나 인도 등지에서 교역품을 싣고 살아 돌아오면 평생 먹을 것을 버니 목숨 건 악조건인 줄 알면서도 인생 역전을 위해 선원이 모이고 배가 출항할 수 있었다.
더 벌기 위해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금은보화와 향신료를 실었고 선원들 먹을 식량은 근근이 싣고 항해했다.
또한 이러한 무역선들은 중간에 육지에 기항할 수도 없었다.
해안 근처에는 해적선들이 눈에 불을 켜고 무역선을 찾아다녔으며 불가피하게 자국의 항구가 아닌 곳에 들어갈 경우 항구에서 음식과 물은 인도적으로 제공해주었지만, 그 대가로 엄청난 교역품을 내려놓아야 했다.
그래서 무역선들은 섬도 안 보이는 먼바다를 돌아서 항해했다.
유럽의 대항해시대는 구대륙과 신대륙 간의 본격적인 교역이라는 점에서 세계사에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당시 국제 무역로는 오스만 제국, 인도, 중국을 잇는 머나먼 실크로드였는데 유럽과 아메리카 신항로 발견으로 신대륙에서 감자와 옥수수가 들어와 식생활에 큰 변화가 왔으며 또한 신항로의 발견으로 유럽은 무지막지한 이슬람 국가를 거치지 않고 인도와 중국 등과 직접 교역할 수 있었다.
여기에 유럽인은 아메리카의 광대한 토지에서 대량의 농산물을 재배하여 경제 성장을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HAPPY LATIN’ 호는 마젤란해협을 별 탈 없이 빠져나와 선수를 북으로 돌렸다.
브라질까지 항해하는데 바람은 좀 불어도 파도가 그리 세지 않다.
이제 거친 바다를 헤쳐나왔으니 그릇이 날아다니는 걱정하지 않고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있고 잠도 편하게 잘 수 있다는 이야기다.
본선은 남미 대륙과 오른쪽에 있는 포클랜드제도 사이를 유유히 항해했다.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 전진 기지를 두고 있는 우리나라 오징어 선단들이 목숨걸고 오징어잡이 하는 큰 어장 중 하나이다.
얼마나 오징어가 많이 잡히는지 물 반 오징어 반이라고도 하는데 파도가 세 바닷물에 휩쓸려 떨어진 선원이 다음 너울에 자기도 모르게 다시 다른 배에 올라와 있더라는 전설 같은 실화가 있는 바다이다.
우리가 좋아하며 흔히 먹는 고구마, 감자 하나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들이 심심풀이로 먹는 오징어가 그냥 오징어가 아니다.
누군가 자신과 처자식이 먹고살기 위해 목숨 걸고 피땀 흘려 잡은 것이 여러 손을 거쳐 우리 입에 들어오는 것이다.
포클랜드전쟁은 1982년 아르헨티나가 자국 옆에 있는 포클랜드제도의 영유권을 찾겠다고 선언하며 일어난 전쟁이다.
아르헨티나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선전포고 없이 포클랜드섬에 무력침공하면서 전쟁을 일으켰으나 아르헨티나군이 제도를 점령하자 영국은 그 먼 거리에서 함대와 군대를 파견해 74일 만에 포클랜드를 탈환했고 아르헨티나 군사독재정권이 망하게 된다.
아르헨티나와 스페인 문화권에서는 이 전쟁을 말비나스 전쟁이라고 부른다.
말비나스는 영국, 프랑스, 스페인이 번갈아 점유하다가 영국인이 백여 년 넘게 살고 있었다.
아르헨티나는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였으나 주민 대부분이 영국인이라 아르헨티나의 지배를 거부하였다.
아르헨티나의 군사 독재 정권은 영유권보다는 내부 문제인 인플레이션과 실업, 반독재 투쟁 인사들을 투옥, 고문한 군사독재정권을 비판하는 여론 등을 잠재우려는 고전적인 목적과 영국 정부가 남대서양의 끝에 있는 별 볼 일 없는 섬에 개입할 것 같지 않다는 판단으로 무력 점령을 시도하였다고 본다.
실제로 그 당시 포클랜드 주둔 영국군 코만도 해병대 오십여 명이 모두 포로가 되어 서거나 앉는 게 아닌 엎드려 개 취급을 당하는 굴욕을 당했다.
영국 BBC 방송은 이 모습을 보도하여 영국인의 공분을 사게 했고 포클랜드를 자국의 영토와 동일하게 취급하여 아르헨티나와 전면전을 하게 됐다.
영국은 이 전쟁에서 이김으로 많은 것을 얻었다.
전쟁 이전 영국은 실업, 석유파동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고질적인 영국병으로 고비용 저생산성에 의한 재정 악화 등으로 IMF 금융지원을 받으며 경제 규모가 세계 18위권까지 떨어졌으나 승전 후 경제가 되살아나게 되었다.
그리고 끝없이 추락하던 대영제국의 명성과 자존심을 일부나마 회복했다는 것은 큰 무형재산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는 전쟁 중에 전사한 258명의 희생자의 이름을 하나하나 거론하고 각자의 개인사와 전사자의 죽기 전 상황을 상세히 적은 마음의 편지를 휴가를 반납하면서까지 자필로 정성 들여 써서 가족들에게 보냈다고 한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간 이들을 국가 영웅으로 예우하는 나라들이 강대국으로 거듭나는 이유를 알 수가 있다.
말비나스전쟁 발발 직전 경제 침체로 역대 가장 무능한 수상으로 평가되어 실각 위기에 처했던 대처 총리는 승전과 함께 엄청나게 지지율이 상승하여 재집권하고 영국 경제가 빠르게 회복하였다.
여담으로 2차대전 후 폐허가 된 프랑스 경제가 한참 헤매던 때 아르헨티나 공군이 영국 해군의 구축함을 격침한 엑조세 미사일을 비롯한 프랑스제 무기들이 중동 무기 시장에서 대박을 터트려 프랑스의 경제가 급격히 나아졌다고 한다.
‘HAPPY LATIN’ 호는 잔잔한 남대서양 바다를 쉬지 않고 가르며 고래 번식지로 알려진 아르헨티나 푸에르토 마드린 근처를 항해하고 있다.
멀리 고래 떼가 유영하는 것이 보인다.
그 고래는 지구 위에 생존하는 포유류 중 가장 덩치가 큰 동물 중 하나로 꼽힌다.
큰 수컷의 경우 길이가 보통 15m, 무게는 50여 톤 정도 한단다.
웨일스 이민자들이 건설한 푸에르토 마드린은 고래들이 번식하기 위해 매년 천 마리 이상의 고래들이 이곳에 몰려 와 굳이 배를 타고 나가지 않아도 해변에 앉아 눈으로 고래를 볼 수 있다.
그 부근은 고래뿐 아니라 펭귄, 바다사자, 바다코끼리 등이 평화롭게 떼 지어 사는 세계적인 해양동물 서식지이기도 하다.
죽기 전에 해변으로 올라온다는 상상의 고래.
사랑하는 남자와 진정한 자유를 느끼며 영원한 사랑을 꿈꾸었던 로라.
그녀의 유일한 사랑인 에밀리오는 그녀를 반도네온 연주를 하며 마약에 찌들어 사는 포주에게 돈 몇 푼에 팔아넘기고 떠난다.
홀로 남겨진 로라는 탱고와 파타고니아의 아름다운 해변을 바라보며 외로움을 달랜다.
그러던 어느 날 로라는 고래가 해변을 헤엄쳐 다니는 것을 보게 되고...
암 진단을 받은 여류 작가 베라는 의욕을 잃고 모든 것을 정리하던 중, 같은 병실에 있는 할머니가 갖고 있던 사진이 낯설지 않음을 느꼈다.
베라는 우연히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 아르헨티나 군인들의 사진첩에서 왠지 모를 신비로운 사진과 편지를 발견하고 아르헨티나로 갈 생각을 한다.
몇십 년 전 로라와 함께했던 그 고래가 다시 같은 장소에 나타나 베라와 눈이 마주친다.
아르헨티나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 상처 입고 해변으로 쓸려온 고래.
곧 다가올 죽음을 기다리며 삶의 허무함을 담담히 건네는 고래의 크고 검은 눈은 오래 전 한 여인의 슬픈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상처 입은 고래처럼 아픔을 가진 베라와 로라도 스스로 극복하지 않으면 누구도 그들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거기서 그냥 죽든지 아니면 다시 헤엄쳐 바다로 나가든지...
아르헨티나 영화 ‘고래와 창녀’는 자신감을 잃고 혼돈의 세상에서 도피하려는 여성 작가 베라가 우연히 본 빛바랜 흑백 사진 속의 창녀 로라의 흔적을 추적하면서 시작된다.
하나하나 퍼즐을 맞추듯 그녀의 존재를 되짚는 사이 베라는 어느덧 로라의 삶과 동화되어간다.
끝까지 함께 하기를 원했던 남자가 제일 먼저 자신을 떠나버리자 슬픔에 빠진 로라의 가슴 절절한 사연이 긴 세월 동안 깊은 바다에 가라앉아 있다가 마침내 베라를 통해 수면에 나타난다.
사랑과 삶은 깊은 바다 밑에서 부유하는 고래가 건네주는 무상함과 같다는 것을 ‘고래와 창녀’를 통해 전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생선 비린내 가득한 오래된 부두와 보까 홍등가의 흐린 불빛 아래에서 이민자들의 애환과 고향의 그리움을 달래주던 와인과 탱고는 고단한 인생의 활력소이자 그들이 살아가고자 하는 희망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우리에겐 막걸리와 우리의 리듬인 아리랑이 있듯이...
‘고래와 창녀’에서 흘러나오는 탱고 선율은 어둡고 무거운 음색의 반도네온이 곁들여져 아르헨티나 탱고만의 독특한 리듬으로 삶에 지친 슬픈 영혼들을 위로한다.
와인과 아사도 굽는 냄새가 가득한 카페에서 뿌연 담배 연기와 불완전한 조화를 이루며 로라가 추는 탱고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걸고 사랑한 남자에게 배신당하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그녀의 마지막 몸부림일 것이다.
‘고래와 창녀’는 젊기에 그리고 사랑하기에 아파해야 하는 우리들의 고독한 영혼을 ‘둘이 춤추지만, 그 상대와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태생적인 슬픔을 간직한 전설의 탱고 선율과 함께 우리를 거친 세상에서 홀로 서게 만든다.
Libertango, Astor Piazzo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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