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에게 메일 주소를 적어주고 있는 바네사 양
¿Recibamos más, paguemos menos?
(많이 받고 적게 내자?)
어제 리마, 미라 플로레스에 있는 미국 문화원에서 외국인을 위한 스페인어 강좌 두 번째 달 수강 등록을 하고, 걸어서 인근에 사는 라틴방 친구인 hanky 님 댁에 차 한 잔 마시러 갔다.
가는 도중에 담배 가게에서 지폐를 내고 말보르 블랑꼬 한 갑과 라이터 한 개를 사고 동전을 받아 갔다.
hanky 님 부부와 사십여 분 정도 이야기를 하며 차 한 잔 마시고 리마 대학 다니는 유학생에게 스페인어를 물어보려고 라르꼬마르에 있는 아파트를 향해 걸어가다가 주머니가 허전해서 뒤져보니 있어야 할 지폐가 부족했다.
좀체 뭘 안 잊어버리고 다니는 사람인데 지폐를 어디다 흘렸을까 생각하다가 담배 가게에서 잔돈을 다 안 받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긴가민가하면서 일단 가까운 곳이니 찾아나 가 보자고 생각하고 짧은 스페인어로 이야기하는 것은 힘들고 영어로 어떻게 말할까 생각하면서 갔다.
이야기해 보고 모른다 하면서 어깨를 움찔하면 그냥 가야지 생각하며 가게 문을 들어섰다.
조금 전에는 'Buenos días.'였지만 지금은 'Buenas tardes.'가 되었다.
인사를 하니 세뇨리따가 웃으며 뭔 말도 하기 전에 지폐를 내준다.
깜짝 놀라서 영어로 날 기억하느냐 물었더니 그렇다며 잔돈을 다 안 받아갔다며 또 활짝 웃는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Peruana es muy buena.'라고 말하고 갔다.
그리고 오늘 새벽에 일어나 스페인어 공부를 하다가 어제 그 일이 생각나서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그녀의 정직과 친절이 고마워서 그 가게에 다시 들러 칭찬을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스페인어 수업을 마치고 초꼬라떼 두 개를 사서 그녀가 있는 가게에 들렀다.
어제는 유니폼을 입었던 거 같은데 오늘은 다른 옷을 입고 있어서 그녀가 맞는지 확실하지 않았다.
일단 인사를 하니 또 활짝 웃으며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그래서 또 나를 기억하냐고 물어보니 'Sí.'라고 말하면서 반갑게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나는 미리 생각했던 스페인어로 'Ud. es muy sincera y graciosa. Estos chocolates son para Ud.' (당신은 매우 정직하고 밝아요. 이 초콜릿을 당신에게 드립니다.)라고 말하고 나왔다.
사실 그녀가 모른다고 시치미를 떼거나 말이 안 통한다고 어영부영하면 거기서 잔돈을 다 안 받았는지도 확실하지 않은 기억으로 진땀만 흘리고 돌아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않았던가.
전에 칠레, 산티아고에 있을 때 스폰을 받아 뽀르띠죠 스키장에 사진을 찍으러 간 적이 있었다.
내 돈 내고 가는 것이 아니라서 경비는 신경 쓰지 않고 안내 팸플릿에 나와 있는 대로 전용버스비 이만 뻬소(미화 약 40불)에 왕복으로 표를 끊는다고 사만 뻬소를 내고 표를 사고 나오는데 남자 직원이 나를 부르며 이만 사천 뻬소를 돌려주었다.
의아하게 쳐다보니 팸플릿에 나와 있는 요금 자체가 왕복이고 호텔 픽업까지 포함된 비용인데 나같이 직접 오면 픽업 비용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때도 그 직원에게 고맙다며 칭찬을 했는데 그 사람 말이 칠레인의 프라이드로는 그런 잘못된 돈은 받지 않는다며 양 손을 펴고 어깨를 움찔했던 기억이 났다.
글쓴이는 이민 생활자는 아직 아니고 여행자 신분이지만 예전에 배를 타고 남미를 십여 년 다녔을 때와 최근 약 1년 6개월 동안 남미에 있으면서 좋지 않은 기억이 별로 없다.
딱 한 번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센뜨로에서 전문 소매치기에게 주머니를 털린 적은 있었다.
많지 않은 인파 속에 혼자 걸어가는데 오른쪽 어깨를 누가 살짝 치는 것 같더니 순간적으로 왼쪽 바지 주머니가 허전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걷던 곳에서 십여 미터 떨어진 가까운 곳에 경찰이 서 있었지만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글쓴이나 경찰 모두 얼굴 한 번 쳐다보고 씩 웃고 가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소매치기는 차가 안 지나갈 때를 노리고 한 일이라 내가 상황 파악했을 때는 벌써 길을 건너 저 멀리 엄청 빠른 속도로 달아나고 있었고 도로에는 차들이 양쪽으로 통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 주머니에 메모지만 잔뜩 있어서 두툼했지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소매치기 둘이서 나중에 얼마나 욕을 했을까나.
자식, 돈 좀 많이 넣어가지고 다니지…….
담배 가게에서 있었던 그 아가씨의 선행에 나를 돌이켜 본 시간이었다.
과연 지금까지 나는 정직하게 살아 왔는가?
그리고 남에게 베풀기보다 받기를 더 바라는 사람은 아니었던가?
늘 활짝 웃는 바네사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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