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내 곁에 있는 당신
3년 넘게 암으로 투병하다가 남편은 재작년 10월에 결국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생생한 슬픈 기억이 제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그때 그이는 통증과 고통을 이길 수 없어 거의 이성을 잃을 즈음이었습니다.
잦은 통증 때문에 광기가 있을 정도로 입에 못 담을 폭언을 퍼부었고, 손에 잡히는 대로 부수며 주위 가족들의 혼을 빼놓았습니다.
진통제 주사를 자주 안 놓아준다며 병실이 떠나가도록 입에 못 담을 욕을 의사와 간호사에게까지 막 퍼부었으며 이로 말미암아 그이는 통증관리를 따로 받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것은 척추에 가는 쇠파이프를 주입하고 선을 연결하여 적당량의 진통제가 자동으로 척추를 통해 들어가는 시술이었습니다.
그것으로 그는 잠시 잠잠해지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그때 3년 간의 간병생활로 인하여 내 자신의 몸도 간염과 담석증을 얻었고, 지치고 피곤해 차라리 먼저 죽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종일 환자 침대 옆에 서서 주무르고 먹이고 부둥켜안고 울고 달래고 씨름하며 지내다 보면 다리가 퉁퉁 부어 곧 쓰러질 것 같고 제대로 걸음도 걷지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그이는 오직 살고 싶다는 욕망뿐 체면도 품위도 인격도 없었습니다.
머리 속에 있는 신은 다 찾았고 어떤 종교도 다 받아들였습니다.
무엇이든 좋다는 약은 다 먹고 발랐습니다.
그땐 이미 온 몸에 암세포가 퍼져 병원에서는 기적만 바랄 뿐 속수무책이었고 보호자에게도 마음의 준비를 당부한 상태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불교 집안에서 자라온 저는 부족한 믿음이지만 늘 부처님을 의지하며 살아왔습니다.
그이에게 잠시라도 통증의 고통을 헤어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때 제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통증으로 미쳐버릴 듯이 고통스러워하는 불쌍한 그이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보, 통도사 명정 스님께 연락이 왔는데, 당신하고 나하고 하루 한 시간씩 일주일만 묵언기도를 하면 일주일 후부터는 당신 통증도 줄고 병도 차차 나아진대요.”
“정말이가? 그럼 오늘 당장 시작하자”
저는 조용히 그이를 달랬습니다.
“저는 한 시간은 묵언할 수 있지만 당신은 아파서 하시겠어요? 한 시간 동안 움직여도, 절대 소리 내어서도 안 되는데 만약 어기면 기도가 허사인데…. 그럼 당신은 앉지 못하니 누워서 저를 바라보며 마음만 한곳에 모으세요. 대신 제가 당신 몫까지 열심히 기도할게요. 일주일이니까 꼭 이겨내셔야 해요.”
“할 수 있다. 아파도 참지 뭐. 좋다. 오늘밤 10시부터 시작하자.”
저는 그날 밤부터 9시 반만 되면 세수를 하고 종일 땀에 젖은 옷도 갈아입고, 그이의 얼굴과 손을 닦아주고 편안히 눕혀 저를 바라보게 했습니다.
저는 간이침대의 창 쪽을 향해 단정히 앉았습니다.
암세포가 퍼져 지난해에 한쪽 눈 제거 수술을 받은 남편은 나머지 한쪽 눈으로 나를 지켜보았습니다.
그이는 행여 내가 움직이고 소리 냄으로 기도가 잘못될까봐 한순간도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은 내게 모자란 듯 흘러갔습니다.
그 시간은 내게 어떻게 보면 휴식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모습과 분위기가 너무나 슬퍼 소리 없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이도 한 시간은 조용했습니다.
11시가 되자 그이는 잠에서 깨어난 듯 '인자 됐다. 그런데 당신 그래 많이 울면 부처님이 뭐라 안 카겠나? 울면 기도가 바로 되겠나? 효험이 없기만 해봐라. 니는 죽을 줄 알아라.'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이의 손을 가만히 잡고 말했습니다.
“그냥 기도하는 것보다 울면서 매달리면 불쌍타고 더 잘 들어주실지 압니까? 거봐요. 당신 한 시간 동안 하나도 안 아프네예.”
그때서야 그이도 조용해졌습니다.
그날 밤부터 하루 한 시간만은 완벽하게 통증을 잊었습니다.
누가 저녁시간에 병문안을 오면 9시만 되도 다들 나가라고 고함을 쳤습니다.
9시 반쯤 되면 혹시 내가 기분이 상해 기도를 잘못할까봐 내 눈치를 슬슬 보며 비위를 맞추려고 몇 마디라도 부드러워지곤 했습니다.
그이의 그런 마음이 안쓰러워 나는 더욱 맑고 단정하게 앉아 그이를 위해 벌을 서기로 했습니다.
그 한 시간은 내게 유일한 자유시간 이었고, 움직여서는 안 되지만 그나마 제겐 조용한 휴식시간이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면 울고 울어서, 안 울면 안 울어서 효험이 없을 거라는 둥, 일주일 후 통증이 안 나으면 기도가 성의 없어서 그러니 죽을 줄 알라는 둥 별별 말로 통증을 호소하면서도 우리는 하루 한 시간 묵언기도를 어김없이 채웠습니다.
그이는 조금씩 조용해져 가는 날이 많았습니다.
담당 과장님은 병이 막바지에 오면 통증이 조금씩 줄어든다고 하셨습니다.
더욱이 기력이 떨어지니 자꾸만 조용해져 갔습니다.
그이가 영영 가기 하루 전날 밤.
그 날은 종일토록 전혀 통증이 없었습니다.
너무 고요한 얼굴로 저를 쳐다보기에 저는 그이의 얼굴을 만지며 자꾸만 말을 걸었습니다.
그이는 내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기도하는 거 거짓말했는 줄 다 알았다. 내가 거짓말인 줄 알고 있다면 당신이 실망할까봐 그동안 아파도 당신 때문에 이를 악물고 안 참았나. 나는 20년이 넘도록 당신하고 살면서 내 마누라이기 전 내 여동생같이 정말 사랑했는기라. 김서방 뒷바라지 잘 해 공학박사 만들고, 세영이 대학 졸업시켜 좋은 사람한테 시집보내고, 그라고 당신 좀 쉬거라. 내가 오래 아파서 당신한테 정말 미안했다.”
그이는 내 손을 가만히 가슴에 안고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립니다.
그이가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출처 : 인터넷 좋은생각 사람들 조금옥 님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임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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