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수 양 무죄 판결
온두라스에서 살인 혐의로 가택 연금중인 한국인 한지수씨(27ㆍ여)가 17일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에 따라 한씨는 올 연말까지 석방될 것으로 보인다.
외교통상부에 의하면 한 씨는 지난 2008년 온두라스 북부 로아딴 섬에서 발생한 네덜란드인 변사 사건 용의자로 지목됐다.
한지수씨의 죄라면 죽어가는 네델란드 여성을 모른척할 수 없어 다이빙 강사 수업을 받으면서 배운 응급처치를 한 것 뿐이었다.
그 순간 알지도 못하는 외국 여성의 불행을 못본 척 했다면 그녀에게 불운은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의로운 길을 택했고 자신이 구하려던 여성의 조국 네덜란드로부터 배신당했다.
지난해 8월 이집트 카이로 공항에서 체포된 한 씨는 온두라스 당국에 의해 구금됐으며 그해 12월 가석방된 뒤 온두라스의 한인교회에서 가택연금돼왔다.
외교부는 지난해 12월 외교부와 경찰,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변호사협회 등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대표단을 온두라스에 파견, 온두라스 당국 수사의 법의학적 문제점을 지적함으로써 한씨의 보석 석방을 지원해왔다.
믿기지 않는 일
2009년 8월 27일. 이집트 카이로 국제공항.
한씨는 어깨에 가방을 둘러메고 오른손에 여권을 든 채 출국심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한씨가 몇 시간이 지난 뒤 도착한 곳은 엄마를 만나기로 한 뉴욕이 아니라 카이로의 감옥이었다.
"온두라스 댄(Dan) 살인사건 기억하는가?"
한씨는 자신이 온두라스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됐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카이로의 감옥을 '지옥으로 가는 정거장'으로 기억했다.
하나님을 믿지 않던 한씨의 입에서 저절로 '하나님, 나가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가 나왔다.
무섭고 떨렸다.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은 그를 더욱 낙담하게 했다.
수감된 지 2주 만에 찾아온 영사는 '문제가 생각보다 복잡해 온두라스에 직접 가야 할 것 같다'는 말을 전할 뿐이었다.
처음 만난 사람, 처음 느낀 평안함
한 달 뒤 한씨는 온두라스 로하탄경찰서 유치장으로 옮겨졌다.
희망을 잃지 않고 있었다.
"사건과 무관하다는 것만 밝히면 아무 문제 없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분명히 내가 저지른 일이 아니니까요."
9월 28일 한씨에 대한 2차 심리가 열렸다.
현지에서 고용한 변호사는 자신만만했다.
한씨는 "솔직히 짐까지 다 싸 놨었어요. 아빠에게 '우리 여기서 좀 놀다가 한국 들어가요'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기대가 상당했죠"라고 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이튿날 무너졌다.
'나갈 수 없다'는 한마디.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아빠에게 너무 미안했어요. 부검의(剖檢醫)와 변호사 선임 비용 등, 딸로서 미안할 정도의 거액을 쓰게 했으니까요"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일주일 후 그는 라세이바 감옥으로 이감됐다.
본격적인 수감 생활이었다.
온두라스의 감옥은 열악했다.
한씨가 일기장에 그렸던 감옥 그림을 보니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 수 있었다.
그나마 면회가 자유로웠던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아버지 원우(57)씨는 일주일에 세 번 한씨를 찾았다.
그 이상은 면회가 안 됐다.
한씨는 '아빠가 오는 날만을 기다리며 살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아빠와 이야기하고 일기장에 글을 써내려가는 것만이 한씨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긍정적인 생각, 쉽지 않았다.
그의 안타까운 처지를 뒤늦게 안 온두라스 교민들이 김치, 라면 등 먹을 것을 싸들고 찾아왔지만 큰 위로가 되지 않았다.
"처음엔 한국 사람들이 찾아오는 게 싫었어요. 감옥에 있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내 마음을 아는 양 말하는 게 싫었으니까요."
우울증, 자살충동
2009년 12월 15일. 가석방 판결이 내려진 한씨는 승합차를 타고 온두라스 한인교회에 도착했다.
환호성과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런데 교회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감옥에 있을 때보다 더 힘들었다.
감옥에서는 언젠가 나갈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오고 나니 온갖 불안감이 그를 억눌렀다.
"사람들을 만나는 게 싫었어요. 유죄선고에 대한 공포, 부모에 대한 미안함, 그동안의 상처가 저를 짓누르기 시작했어요."
마음의 상처는 우울증으로 발전했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자살'이라는 단어를 쳐 넣기도 했다.
마음의 평안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는 결국 교회 내 체육관에 목을 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한씨는 태어나 한번도 우울증에 사로잡힌 적이 없었다.
부족함 없이 자라 명문대에 다녔고 대기업에서 일했다.
'거침없는 당당함!'
그게 바로 한씨였다.
처음 겪는 마음의 병은 더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아빠에게 '죽어 버릴 거야'라고 소리쳤어요. 그땐 정말 죽어야 모든 게 끝나리라 생각했거든요."
두 가지 소원
그런 한씨를 묵묵히 지켜보며 기도하는 사람이 목사님 외 한 명 더 있었다.
아버지.
한씨는 지난해 12월 어느 날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그녀는 감방 안에서 아빠와 싱글 매트리스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었다.
아버지 한씨는 자고 있는 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뺨에 뽀뽀를 해주고 감방을 나섰다.
돌아누워 있던 한씨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어렸을 땐 아빠 냄새난다고 싫어했는데… 얼마나 저를 사랑하는지 느껴져 많은 눈물을 흘렸어요,"
한씨에겐 이제 두 가지 소망이 있다.
열심히 기도한 만큼 하루 빨리 누명을 벗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첫 번째 소원이다.
한씨는 '사건 이후 도피하며 지내던 댄이 최근 호주에서 잡혔어요. 제 억울함이 빨리 풀렸으면 해요'라며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한씨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재외국민 보호는 매우 약한 수준입니다. 저와 같은 일을 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제 경험을 활용해 재외국민 보호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일조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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