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에서 41년째 구두수선 장인
한 가지 일을 40년간 계속해왔다면 그를 장인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화여대에 구두 장인이 있다.
구두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고치는 이다.
그는 '구두 만드는 건 일이고 고치는 건 예술'이라고 했다.
열다섯 살에 이대 앞에서 구두를 만지기 시작해 올해까지 41년째 그는 굽을 갈고 밑창을 뜯고 바느질을 한다.
이대 헬렌관 1층 구두수선집 주인 허완회(56) 씨 이야기다.
"구두 닦아주지는 않아요. 서비스로 닦아주는 적은 있지만 돈 받고 닦아주지는 않습니다. 구두 닦는 건 군대 갔다 오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그게 무슨 기술이야. 나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이오."
이대생들 사이에서 이 구둣방은 '두 명이 가면 안 되는 집'으로 알려졌다.
둘이 가서 자리 차지하고 떠들면 허씨가 '일하는 데 방해된다.'며 쫓아내기 때문이다.
그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1970년 이화여대 정문 앞 '전통구둣방'에서 일을 시작했다.
스무 살 좀 넘어서는 신촌기차역 근처에 '이화사'라는 구둣방을 차렸다.
그는 '내 인생철학이 용 꼬리보다 닭 머리가 되는 것이어서 구두 수선으로 한국 1등이 되려고 했다.'고 말했다.
신촌역 일대가 개발되면서 이대를 떠나 명동과 다른 지역에서 일하다가 다시 이대로 돌아온 게 1990년 3월이다.
"이대에서 전화가 왔더라고요. 학교 구내에서 구두수선점을 할 생각이 없느냐고요. 그래서 한 달쯤 고민한 뒤에 들어왔어요. 대학 구내로 들어온다는 건 내 맘대로 가게 문을 여닫을 수 없다는 거잖아요. 학교의 구성원이 되는 거죠. 쉽게 말해 코가 꿰는 거니까 고민이 되더라고요."
이후 오늘까지 토, 일요일을 제외하곤 단 하루도 문을 닫은 적이 없다.
초등학교 때 받은 6년 개근상을 아직도 자랑스러워하는 그는 '어디가 부러지면 모를까, 학교가 멀쩡히 돌아가는데 아프거나 힘들다고 문을 안 열 수는 없다".'고 했다.
"처음엔 누나들 구두를 만졌고 곧 내 또래들 구두를 고치다 보니 동생들이 손님이 됐어요. 이제는 막내딸뻘 애들 구두를 고치죠. 재학생이 졸업한 뒤에 교수가 되어 다시 오고, 다시 그 딸이 또 이대에 입학해 내 손님이 됩니다."
재학생과 교수는 물론, 졸업생과 퇴직 교수, 교직원들이 줄지어 구두를 들고 찾아왔다.
2008년에 정년퇴직한 미술대학 이성순 교수가 마침 구두를 고치러 왔다가 '내가 40년 단골이고, 지금 교수로 있는 내 동생, 강사인 내 딸이 모두 아저씨 단골이며 구두 고치러 다른 데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허 씨는 '역대 총장 구두도 모두 내가 고쳤다. 김동길 박사도 항상 여기로 구두를 보냈는데 한 2, 3년 뜸한 걸 보면 어디 편찮으신가 보다.'고 했다.
"이 업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나를 부러워해요. 이대 안에서 하니까. 이대가 여자대학으로는 동양에서 최고잖아요. 그 최고의 대학 졸업생과 교수들이 모두 나를 인정해 주잖아요. 내가 잘하는 건 딱 하나, 구두 수선이에요. 그리고 나를 알아주는 곳도 딱 한 군데, 이대뿐이에요."
어떻게 최고라고 자신하느냐고 물으니 '학생들이 가져온 구두를 보면 알 수 있어요. 다른 데서 한번 고친 걸 보면 대부분 어설프더라고. 내 손님이 전국에서 오고 미국에서도 와요. 그런데 다들 자기 동네에선 안 된다며 가져오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한국 최고지.'
약 두 평이나 될까 싶은 공간에서 그는 평생 일해왔다.
거리의 구둣방과 다른 것은 천장이 높다는 것, 그리고 고기 굽는 전기 그릴이 한쪽에 있는 것이었다.
"접착제가 미지근해야 잘 붙어요. 그래서 보통 난로를 쓰죠. 근데 너무 더워. 어느 날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는데 이게 괜찮겠더라고. 그래서 가져와 써보니 좋아요. 덜 덥고 넓어서 편리해요. 세계 어디에 가도 이걸로 구두 고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의 구둣방에 앉아서 여러 가지를 처음 알게 됐다.
멋쟁이들은 하이힐을 1주일쯤 신으면 굽을 간다는 사실, 뒤축 높은 새 구두를 가져와 축을 조금 잘라내는 사람들이 뜻밖에 많다는 것, 그리고 매끈한 구두 밑창에 우둘투둘한 밑창을 덧대어 신는다는 것이다.
허 씨는 '멋쟁이들에게 구두굽은 남자들의 담뱃값 같은 것'이라고 했다.
굽을 잘라낼 거면 왜 높은 구두를 사느냐고 물으니 "그게 여자에요. 키도 커 보이고 싶고 멋있을 것 같아서 자신 있게 샀는데 너무 힘든 거지. 저렇게 작은 굽이 그 체중을 견디는 게 신기한 거요. 진짜 공주들은 그런 고통을 다 참아요. 친구들이 '너 그거 너무 높지 않니?' 하고 물으면 '아니, 난 낮은 건 못 신어.'라고 대답하죠. 다 거짓말이에요. 그리고 집에 가서는 끙끙 앓지요."
마침 졸업반이라는 학생 한 명이 꽤 높아 보이는 구두를 가져와서 밑창을 덧대다가 '굽 높이가 6㎝까지는 괜찮은데 7㎝부터는 너무 힘들다.'며 맞장구를 쳤다.
가장 흔한 손님은 닳아버린 굽을 떼고 새 굽을 다는 사람들이었다.
손톱보다도 작은 하이힐 굽을 펜치로 떼어 내고 새 굽을 박아넣는 데 드는 시간은 길어야 30초 정도였다.
그는 '여기에 세계적인 굽들이 다 와요. 그래도 안 되는 게 없어요.'라고 했다.
휴가도 가느냐고 하니 '휴가를 어떻게 가요. 3박 4일 여행이란 걸 내 인생에서 가본 적이 없어요. 금요일 저녁에 출발하면 기껏해야 일요일까지 2박 3일이죠. 언제나 거기에 가면 구두 아저씨가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하는데 어느 날 말도 없이 문을 닫아봐요. 특히 졸업생들이 일부러 찾아왔는데 그러면 안 되죠.'
허 씨는 '외부에서 졸업생들이 가져오는 일감이 무시 못할 만큼 많아요. 휴대전화기에는 엄청나게 많은 전화번호가 한가지 이름으로 저장돼 있어요. 성은 졸, 이름은 업생. 하하하.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몰라요. 그런데 졸업생이란 건 알아. 졸업생 전화는 조금 각별하게 받고 하죠. 쉽게 말해 단골을 관리하는 거죠.'라고 말했다.
한 학생이 구두에 올리브기름이 스며들어 얼룩졌다며 울상을 하고 들어왔다.
허 씨는 대번에 '이건 안 되겠다.'고 했다.
"확실한 건 내가 안 되는 건 어딜 가도 안 돼요. 어려운 건 없어요. 되는 것과 안 되는 게 있을 뿐이죠. 기술자가 '어렵겠다'고 말하는 건 돈을 더 받으려고 하는 소리고, 정말 어려워서 어렵다고 하면 그건 기술자가 아니에요. 나는 한 푼 더 벌려고 안 되는 거 된다고 안 합니다. 나는 손님을 VIP 대접 안 하거든. 내 인생에서 내가 VIP지. 사람들은 내 기술을 돈 주고 사는 거에요. 강남 어디 가면 사모님 사장님 하면서 차에다가 구두 실어주고 한다는데, 난 그런 것 못해요."
그가 '88학번 졸업생이 가져온 것'이라며 부츠 한 켤레를 보여줬다.
가죽은 멀쩡한데 밑창이 너덜너덜해진 신발이었다.
그는 '이런 걸 고치는 게 예술이고 작품이지, 공장에서 구두 찍어내는 게 무슨 예술이냐?'고 했다.
그의 작업복 바지는 본드 얼룩으로 누더기가 됐다.
싸구려를 사서 한 달쯤 작업복으로 입다가 버린다고 했다.
"몸을 아끼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아요. 일감이 몸에 딱 달라붙어야 일을 다부지게 할 수 있어요. 내가 여기서 와이셔츠에 넥타이 매고 일해봐요. 일이 되겠어요? 한번은 교수님이 좋은 의자를 선물하겠다기에 '이 일은 편한 자세로는 안 됩니다.' 하고 사양했죠. 구두 고치는 게 얼마나 복잡하고 정교한 일인데 뒤로 젖혀지는 의자에 앉아서 합니까."
구두만 봐도 사람의 성품을 알겠느냐 물으니 "물론이죠. 그런데 학생들이 와서 그렇게 물어보면 '그런 게 어디 있어?'하고 말아요. 안 그러면 '저는 어떤 것 같아요?'하고 꼭 묻거든.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 말해줄 수 있나요?"
"구두를 어떻게 신느냐와 그 사람의 성격이 정확하게 정비례합니다. 굽이 다 닳아서 구두가 달그락거리면 민망해야 정상인데, '누가 이걸 보겠어?'하고 신고 다니는 학생들이 있죠. 구두가 그런데 뭐는 다르겠어? 거기까지만 얘기할게요. 그래서 멋쟁이들이 공부도 잘해요. 모양내려면 부지런해야 하거든. 그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데요."
"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채플 끝나고 점심시간이면, 이화교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어요. 따가닥따가닥 하고. 다들 하이힐을 신고 다녔다고요. 근데 요즘 애들은 다들 운동화를 끌고 다니잖아요. 그냥 산에 가도 되겠더라고. 그러다가 4학년 때 취업 면접 가려면 하이힐 신어야 하잖아요. 그러면 너무 힘든 거야. 취직은 잘 안 되고 하이힐은 힘들고. 그러니까 '내가 왜 이걸 신어야 해?' 하면서 구두에 화를 내죠. 여자는 야금야금 만들어지는 거예요. 조금씩 하이힐을 신고 훈련을 해야 해요. 짧은 치마 입고 높은 구두 신으면 얼마나 조심하고 신중해지는지 알아요? 그게 바로 여자다운 거예요."
마침 면접을 앞둔 학생이 굽을 갈러 왔다.
허 씨는 '얼른 나가서 본전 찾아야지. 학교에다 얼마나 갖다바쳤느냐.' 하더니 '면접이라니까 서비스다.'라며 구두를 깔끔하게 닦아줬다.
이렇게 단골이 많으면 사업을 늘릴 수도 있을 텐데, "안 그래도 이대 목동병원 사람들이 병원에도 하나 내달라고 해요. 그래서 '그럼 여기 일은 누가 하고?' 하니까 '아, 그렇지.' 하더군요. 사람을 쓰면 되는데 내 솜씨가 나오나요. 그리고 누가 요즘 이런 일 하겠어요. 나는 어렸을 때 먹여주고 재워주면 감사하다고 해서 월급 없이 일을 배웠어요. 요즘엔 시급으로 받는 아르바이트 천지잖아요. 돈 벌기가 얼마나 쉬워? 그런데 일 배우겠다고 덤비는 젊은이가 없어. 자기 눈높이에 맞추면 할 일이 천지에 널렸는데."
허씨의 수선 솜씨를 보고 있자니 집 신발장의 낡은 구두들이 저절로 떠올랐다.
구둣방 앞뜰엔 40년이 족히 넘었을 플라타너스들이 줄지어 햇살을 받고 있었다.
겨울애상, 이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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