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레

눈물의 파티, 조용필 y 나는 이제 희망을 연기하련다, 배우 김갑수

부에노(조운엽) 2016. 4. 22. 01:41

 

 

 

 

나는 이제 희망을 연기하련다, 배우 김갑수

 

 

“그냥 제 삶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려고 해요. 저는 희망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는 나오자마자 허허 웃었다.

지루한 소나기 끝 햇살처럼, 맑고 밝은 웃음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얘기부터 꺼냈다.

어린 김갑수에게 희망은 먼 얘기였다.

아무리 손 뻗어도 닿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등학생 때 어머니마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는 6남매 중 다섯째였다.

세끼 먹을 수 있는 날이 흔치 않았다.

하루하루 오늘을 살아낼 뿐 내일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중학생 때부터 신문 배달은 물론, 김밥 장사, 막노동, 공장 일 등을 했다.

고등학교는 자신이 번 돈으로 가겠다고 우겨서 겨우 입학했다.

그런 그의 메마른 가슴에 설레는 일이 생겼다.

떠돌이 약장수들이 선보이는 연극이었다.

우연히 본 영화 '울고 넘는 박달재'도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가난했던 그는 관람료가 가장 싼 조조 영화를 봤다.

영화가 끝나면 화장실에 가는 척 몸을 숨겼다가 다시 들어가 두 번 더 봤다.

“첫 번째는 전반적인 흐름, 두 번째는 감독의 의도, 세 번째는 배우의 연기를 봤어요. 그렇게 연기자의 꿈을 키워나갔죠.”

그는 이제 다른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그는 믿는다.

 

꿈꾸는 자에게 기회는 분명히 찾아온다는 것을.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군대 갈 준비를 할 때였다.

그가 연기에 관심이 있는 걸 알고 있던 친구가 신문을 오려왔다.

“현대극장에서 연기자를 모집한다는 광고였어요. 한 번 해보자는 생각에 시험을 봤는데 합격했지요.”

그렇게 극단 현대극장에 1기 연습생으로 입단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지원자 모두를 연습생으로 받아준 것이었다.

그래도 그는 마냥 들떴다.

숙소를 아예 극단으로 옮기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밤낮 연습했다.
 
하지만 그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그만둬라. 너는 재능이 없다.’였다.

명문대 출신에, 실력을 갖춘 배우가 넘쳐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쉽게 좌절하지 않았다.

재능이 없으면 노력해서 갖춰나가면 된다.

그는 박근형, 신구 등 선배 배우가 연기하는 걸 보기 위해 3분짜리 단역과 스태프를 자원했다.

“그분들의 연기뿐 아니라 삶 자체를 흡수하고 싶었어요.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대본을 연습하는 모습, 무대에 오르기 전의 습관까지 꼼꼼히 관찰했지요.”

그는 그렇게 희망을 키웠다.

많은 사람이 안 된다고 했지만 그만이 자기 자신을 믿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분명히 해낼 거다. 목숨 걸고 해보자.’라고...

 

 

 


“전 타고난 배우는 아니에요. 타고난다는 것은 남들보다 어느 부분이 더 발달했다는 거죠. 하지만 그것도 노력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기는 사람을 표현하는 것이고, 그걸 내가 하면 되는 거거든요. 자기한테 충실하면 됩니다. 자기 감각을 훈련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노력은 사람을 바꾼다.

 

마음을 열게 한다.

선배 배우와 연출가, 작가들의 인정을 얻은 그는 난생처음 주연으로 무대에 섰다.

성공이었다.

김갑수 연기 잘하더라.’라는 말이 세상 밖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영화 '태백산맥'에 출연했다.

단순하지만 기민한 행동력을 지닌, 친일파 염상구 역이었다. 
 

그는 이 작품으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고, 각종 시상식에서 남우 주연상을 휩쓸었다.

방송과 영화계에서 그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늘 고향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가 넘어졌다 일어나기를 반복한 곳, 연극 무대였다.

희망의 씨앗을 뿌린 토양이기도 했다.

결국 그는 직접 극단 ‘배우 세상’을 창단하게 된다.

“살아가는 내내 제가 빚을 갚을 수밖에 없는 곳이에요. 의무적으로라도 공연하고 싶었어요. 일 년에 한 번씩은 작품을 꼭 올렸지요.”
극단 이외에 그가 희망을 나누는 방식이 하나 더 있다.

장애인, 노인 등 어려운 이를 위한 연극을 제작하고, 전국으로 공연하러 다니는 것이다.

그는 바란다.

그들에게 작은 희망의 창이 생기기를.

그리하여 또 다른 김갑수가 나타나기를.

 

 

 


“저도 보잘 것 없는 사람이지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에요.”
그는 강조했다.

천 원이 있어도 만 원이 있는 것처럼 풍요롭게 해주는 건 문화밖에 없다고.

돈이 하지 못하는 걸 문화는 할 수 있다고.

“어때요, 저 강연할 자격이 있나요? 하하. 지금껏 살아오면서 확실히 깨달은 게 있어요. 스스로 자신을 믿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다는 걸요. 그러려면 성품과 능력 모두를 끊임없이 발전시켜나가야 합니다. 그게 희망을 지켜내는 인간적 힘이니까요.”

그가 자리를 떠난 뒤에도 마음속 깊게 남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의 희망 말이다.

그는 참 따뜻했다.

그리고 내면의 힘이 세게 느껴졌다.

 

글 안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