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만의 복수전
58년 개띠 화이팅!
이세돌 9단, 박지은 9단 등 2011 바둑대상 수상자들은 흔쾌한 기분으로 2012년을 맞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흔쾌히 2012년을 맞는 사람은 서능욱 9단일지도 모른다.
서 9단은 작년 12월 제2회 ‘대주배’에서 결승에 올라갔고, 거기서 만난 조훈현 9단을 물리쳤다.
흑을 들고 175수 만에 조 9단의 엄청난 대마,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바둑판의 3분의 1쯤을 차지한 28마리 대마를 잡고 이겼다.
대주배는 본격 기전은 아니다.
남자 고참 시니어기사만 참가하는, 이른바 ‘부분 기전’이다.
그러나 우승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본격 기전이든 부분 기전이든 그 감격과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그 우승의 배경이 32년 포한임에랴.
서능욱 9단은 남산중 2학년 때 전승 입단한 수재로 인터넷 바둑 1만 승에 도전하고 있다. 왼쪽 서봉수 9단과 대국 장면
58년 개띠 서능욱 9단은 1972년, 열네 살 중학생 때 입단했다.
천재 소리를 듣던 소년이었다.
중학생 입단은 요즘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입단 후 한동안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당시 바둑계는 가난했고 서능욱도 가난해 ‘프로기사’에 전념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요즘 기재를 인정받는 청소년 대부분이 입단하자마자, 흡사 식당의 ‘개업빨’처럼, 펄펄 나는 것과는 달리 서능욱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입단하고 나서 4~5년이 지나면서부터였다.
78년에 왕위전 본선 멤버가 되었고, 일단 발동이 걸리자 가속도는 무서웠다.
이듬해 제4기 최강자전에서 준우승까지 치고 올라갔으며 다시 이듬해에는 제1기 전일왕위전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두 타이틀 매치의 상대가 모두 조훈현이었다.
아무튼 오래 가지 못하고 없어진 기전들이긴 하지만, 애기가들은 서능욱이 머지않아 우승 트로피를 안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던 것인데 예상은 또 빗나갔다.
우승 트로피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대주
83년에 지금은 신문은 있지만 기전은 없어진, 대구 매일신문 주최 대왕전의 도전자가 되었다.
상대는 역시 조훈현이었다.
또 졌다.
그래도 대왕전과는 인연이 남달랐던지 이후에도 세 번을 더 계속해서 도전자가 되었다.
대왕 타이틀은 여전히 조훈현의 손에 있었고, 서능욱은 4연속 도전해서 계속 패배했다.
준우승의 사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87년에는 최고위전과 KBS바둑왕전에서 도전권을 쥐었고, 조훈현에게 쳐들어갔으나 분패했다.
89년에도 KBS바둑왕전 결승에서 조훈현을 만났고, 졌다.
90년에는 MBC제왕전과 KBS바둑왕전, 두 TV속기전 결승에서 조훈현을 만났고, 또 졌다.
91년에는 대왕전처럼, 지금 신문은 있지만 기전은 없어진 서울신문 주최 패왕전에서 조훈현에게 도전했으나 좌초했다.
여기까지 도합 열두 번째의 준우승이었다.
그 시절 조훈현 때문에 준우승을 많이 하기는 서봉수 9단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대서(大徐) 서봉수는 서너 번에 한 번은 타이틀을 빼앗아 오기도 했는데, 소서(小徐) 서능욱은 없었다.
92년에는 최고위전에서 조훈현의 제자 이창호에게 도전장을 들이밀었으나 거절당했다.
‘최고위’는 조훈현의 첫 국내 타이틀인데 제자 이창호는 89년에 스승의 첫 타이틀을 자신의 첫 본격 타이틀로 삼았다.
사제 2대에 이어지는 악연이었다.
그것이 서능욱의 열세 번째 준우승이었다.
이후 서능욱은 타이틀 무대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최고위전도 몇 년 전 사라졌다.
그로부터 19년이 흘렀다.
조훈현, 서봉수, 서능욱은 시니어기사가 되었고 열댓 살 여드름 소년이었던 이창호는 30대 중간을 넘어섰는데, 올해 조훈현, 서봉수, 서능욱은 대주배에서 만났다.
서능욱은 4강전에서 서봉수를 보냈다.
그리고 자신을 열두 번 좌절시켰던 조훈현의 초대형 대마를 격침시켰다.
서능욱은 인터넷 바둑 사이트에서도 유명인사다.
대국수도 엄청나고 팬도 엄청나다.
원래 김희중 9단과 쌍벽을 이루었던 초속기파니 고기가 물을 만난 것이나 다름 없다.
대주배는 제한시간 각자 15분에 40초 초읽기 3회, 우승 상금은 천만 원이다.
또 대주배의 후원사는 ‘TM마린’이라는 선박회사이다.
대주(大舟)는 ‘큰 배’, TM마린의 김대욱 사장은 30여 년 지기라고 한다.
이기섭 7단의 자취방에서 같이 뒹굴며 외로움과 가난함을 나누고 위로하던 시절이 있었다.
TM 마린은 조선 기자재를 수입해 국내 조선소에 납품하는 회사이다.
김대욱 씨는 바둑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배웠고 사업 의사 결정을 할 때도 도움이 돼
그 보답 차원에서 이 대회를 후원했으며 바둑 영화 제작에도 거액을 지원했다고 한다.
서능욱 대주는 인터뷰에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지나도 늦은 것이 아니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복수는 30년이 지나도 늦지 않는 것.
복수에 성공하고 서능욱은 휴대전화로 누군가와 통화하며 씩 웃었다.
사랑하는 부인, 바둑계의 여걸로 통하는 현인숙 씨였다.
2012년이 가장 반가운 사람은 서능욱 9단일 것이다.
이광구 기자
별이 빛나는 밤에, 윤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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