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need you, Julio Iglesias y 동티모르, 맨발의 꿈으로 인생역전

부에노(조운엽) 2017. 5. 12. 09:00

 

 

 

 

 

'동티모르의 히딩크'로 불리는 유소년 축구팀 감독 김신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산 김 감독에게 축구는 인생 전부이자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서게 한 원동력이다. 
그는 맨발로 축구공을 차던 동티모르의 가난한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쳐 국제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하는 기적을 일궈내 내전으로 절망에 빠졌던 동티모르인들에 희망을 안겨줬다.

 

 

 

 


김 감독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해 장항중, 한양공고, 해군축구단을 거쳐 실업팀 현대자동차에서 뛰다가 1988년 서른두 살의 나이로 은퇴했다. 
그의 부모는 딸 여섯을 내리 낳고 얻은 귀한 아들이 축구를 한다기에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아들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김 감독은 실업팀 은퇴 후 개인사업을 했으나 부진을 면치 못했고, 1996년 친구가 있는 인도네시아로 옮겨 봉제공장을 했지만 이마저 실패하고 말았다. 

더구나 아내와 이혼해 두 아들과 떨어져 사는 고통까지 감수해야 했다.

그는 2001년 인도네시아의 식민지 동티모르를 처음 방문했다.
독립을 앞둔 나라라서 돈을 벌 만한 사업 아이템을 기대했지만 막상 가보니 도저히 살 곳이 못 된다고 생각해 한국으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2002년 동티모르 독립 후 다시 찾아갔고, 평화유지군으로 파병된 상록수부대의 주선으로 사나나 구스마오 대통령을 만나 '무보수로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치겠다.'라고 제안했다.
김 감독은 '동티모르에 다시 가보니 건물의 70%가 부서져 있고 하루 2∼3시간만 전기가 공급될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으나 아이들이 맨발로 축구공을 차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저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2003년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팀의 초대 감독으로 임명돼 초등학생 40명을 가르쳤다. 

말이 좋아 감독이지 9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는 감독 겸 코치이자 총무, 스폰서, 아이들 부모 노릇까지 모든 일을 혼자 도맡아왔다고 한다.
김 감독은 '돌이켜보면 내가 어떻게 그 많은 일을 다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고 하면 절대 못 할 것.'이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김 감독은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팀이 2004년 일본에서 열린 제30회 리베리노컵 국제 소년 축구대회에 초청받았으나 비행기값을 구하지 못하자 한국 언론사에 편지를 보냈고, 그 기사를 본 한국기업의 도움으로 대회에 참석했다.

축구팀은 첫 출전이지만 예상을 깨고 32개 팀 가운데 6전 전승으로 우승했고, 그는 일약 동티모르의 국민 영웅으로 부상했다.

유소년 축구팀은 이듬해 같은 대회에서 또다시 우승하는 신화를 기록했다.

 

 

 

 


김 감독은 동티모르 대통령으로부터 두 번이나 공로훈장을 받았고, 그의 스토리를 영화로 만든 '맨발의 꿈'이 2010년 개봉되면서 그의 이름은 한국에도 널리 알려졌다.
그는 '우승은커녕 대회에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워낙 아이들이 낙천적인데다 운도 따라줘 우승할 수 있었으며 축구가 내게 다시 일어설 희망을 준 것처럼 동티모르 아이들에게도 축구를 통해 꿈을 심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지원을 받아 동티모르 전역에 5개의 유소년 축구클럽을 결성하는 프로젝트에 나섰다. 

그는 '가족과 재결합해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것 같다.'며 '동티모르 아이들이 축구와 학업을 통해 훌륭히 자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세상은 몰랐지만 폐허의 땅 동티모르에서 희망을 차 올린 김 감독과 맨발의 소년들이 이뤄낸 특별한 우정과 기적은 우리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준다.



 

 

When I need you, Julio Iglesi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