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에서 만난 할아버지
밤새 버스를 타고 달리다 사람들이 부스럭거리며 일어나는 소리에 졸린 눈을 비볐다.
등받이를 최대한 뒤로 눕히고 잤지만, 버스의 흔들림에 좌석은 비좁게만 느껴졌다.
나의 첫 유럽 배낭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유레일패스보다 유로 버스를 택한 건 순전히 경비 때문이었다.
초창기만 해도 유로 버스는 각 나라 큰 도시에만 정차했다.
지금은 유로 라인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내려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나와 내 친구만 덩그러니 남았다.
버스 기사는 다시 출발해야 한다며 우리를 재촉했고 나와 내 친구는 그제야 주섬주섬 짐을 챙겨 내렸다.
여름철이었지만 이른 새벽의 뮌헨은 입김이 나올 정도로 쌀쌀했다.
자다가 쫓겨난 듯한 느낌에 동서남북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정신이 없었다.
낯선 도시의 서늘한 공기만이 우리를 맞았다.
뮌헨 지도를 땅바닥에 펴놓고 기차역, 건물, 도로를 비교하며 어설프게 맞추기를 십여 분 정도 했을 때, 한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와 어디를 찾느냐고 물었다.
무척이나 인자하게 생긴 전형적인 독일 할아버지, 그 모습을 보고 우리는 마음을 턱, 놓았다.
유스호스텔을 지목하며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하자, 할아버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너무 멀다고 했다.
다른 숙소를 알아보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제일 저렴한 숙소라 다른 곳은 아예 알아보질 않았다고 솔직히 답했다.
그러면서 멀어도 좋으니 방법을 알려 달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을 꺼냈다.
“뮌헨엔 얼마나 머물 거지?”
“음… 한, 삼사일 정도요?”
“그렇게 짧게 있을 거면, 여기 2층이 내 집이니까 머물다 가도 괜찮네.”
뜻밖의 제안에 어리둥절했지만, 호의를 받아들여도 되는지 생각하기도 전에 피곤한 몸이 먼저 반응했다.
배낭을 둘러메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발을 디뎠다.
어느새 2층에 올라 방과 욕실을 보여주는 할아버지를 보고서야 제정신이 들어 인사했다.
주워들은 '당케!'를 다행히도 기억하며 연신 허리를 굽혔다.
숙소가 해결되었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렸는지 잠시 눈을 붙인다는 게 꽤 시간이 흘렀던 것 같다.
조심스레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할아버지였다.
“밤새 아무것도 먹지 않아 배고플 텐데 시장에 같이 다녀옵시다. 구경도 좀 할 겸.”
우린 벌떡 일어나 할아버지를 따라갔다.
커다란 카트에 소시지, 빵, 생활용품을 담던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넣으라고 했다.
염치를 상실해버린 우리는 그때부터 눈여겨봐 둔 음식들을 몽땅 카트에 넣어 가득 채웠다.
계산대 앞에서 선 우리가 물건값을 보태려고 하자, 할아버지는 근엄한 표정으로 'No! No!' 하시며 말렸다.
집에 돌아와선 능숙한 솜씨로 음식까지 해주셨다.
게 눈 감추듯 음식을 먹던 우리에게 할아버지는 가족 이야기를 꺼냈다.
아내와 사별하고 근처에 아들이 산다고.
그러면서 우리를 돕게 된 이유까지 털어놓았다.
“'젊은이가 여행하는 모습을 보면 참 아름답고 행복하게 보인다.'고 생각하고 있었네. 그때 마침 자네들을 만난 거였네. 그래서 내 집에서 머물러도 좋다고 말했던 게지.”
덕분에 우리는 삼박사일을 뮌헨 시내 한복판에서 편안하고 즐겁게 지냈다.
독일 사람들의 맥주 문화, 맥가이버 닮은 아들과의 데이트, 자세하고 친절한 시내 가이드….
뮌헨을 떠날 때도 음식 한가득 챙겨주시고 따뜻한 포옹까지 해주며 축복의 말을 건넨 할아버지.
우리가 너무 고맙다고 말하자, 할아버지는 웃음 가득한 얼굴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네들도 형편이 될 때 누군가를 도우면 된다네.”
자유 여행가, 정진희 님
Tell Laura I love her, Ray Pet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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