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밤의 꿈
새벽 잠결에 비가 엄청나게 오는 소리가 들렸다.
번갯불이 번쩍이고 천둥소리가 천지를 뒤흔드는 것 같았다.
더운 나라의 비는 정말 화끈하단 말이지.
늘 비를 좋아하는 나는 비몽사몽 간에 말라카 해협에서 화물선을 타고 해적을 피해 엄청난 빗속을 뚫고 물대포를 쏘며 항해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중동에서 원유를 싣고 긴 항해에 지쳤다가 아름다운 상하의 나라 싱가포르에 벙커링을 하기 위해 입항해 상륙 나가 시원하게 한바탕 쏟아지고 금방 햇볕이 쨍쨍 비치던 싱그럽던 풍경도 생각났다.
타이나 캄보디아의 우기도 거의 비슷하다.
엊그제 프놈펜 뚠레삽 강변 레스토랑에서 만났던 귀여운 아가씨가 생각났다.
웃고 있는 얼굴을 보며 마음 한편에선 늘 짠하게 여겨지는 그니들...
갑자기 등이 축축하게 느껴졌다.
얼른 방바닥을 만져보니 물이 출렁인다.
아니, 이게 뭐야.
바닷속인가?
열어놓은 창문으로 비가 몰아친 건가?
옥상이 구멍 났을까?
벌떡 일어나 사태파악을 하니 방안에 메모지와 담뱃갑이 둥둥 떠다니고 물이 한강이었다.
내 방은 3층인데 홍수에 물에 잠길 리는 없어 문을 열고 방 밖을 봤다.
밖은 말짱했다.
누전을 우려하여 방 밖으로 나가 살짝 전등 스위치를 올렸다.
베란다 쪽이 문제 같았다.
엄청난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베란다에 있는 이물질을 건져냈다.
화장실 쪽에 있는 발수건을 밀쳐내니 그쪽으로 물이 확 나간다.
엄청난 비에 베란다 하수구가 막혀 방안이 메콩 강이 된 것이었다.
한 시간여에 걸쳐 방안의 물을 대충 정리하며 태풍과 홍수 만난 사람들의 아픔을 생각했다.
쓰나미에 삶의 터전이 거덜 났던 푸캣 친구들을 떠올렸다.
그에 비하면 이까짓 사단은 조족지혈의 만분의 일도 안 되지.
이제 좋아하던 비보기도 쉽지 않겠다.
새벽에 비가 많이 오면 우기가 끝난다 하니...
먼지의 도시 프놈펜은 건기에 미은 툴리다이 찌라은. (먼지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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