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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으로 피어난 페루 소녀의 미소

부에노(조운엽) 2013. 1. 1. 07:05

 

 

 

 

페이스북으로 피어난 페루 소녀의 미소

 

 

"무차스 그라시아스(Muchas gracias, 대단히 고마워요)."

연두색 두건을 쓴 하이디 로리아니가 수줍게 웃었다.

소녀의 오른쪽 어깨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어깨뼈에 자라고 있는 종양을 검사하기 위한 절개수술을 했기 때문이다.

하이디의 병은 '뼈 암'으로 불리는 골육종.

항암 치료를 받기 시작한 3일 전 머리도 빡빡 밀었다.

막 잠에서 깬 하이디는 아이패드부터 꺼내 들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울해질 것을 염려한 최종환 신부가 선물했다.

바로 이 아이패드를 통해 접속되는 페이스북이 하이디에겐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었다.

 

 

 

Puerto Malabrigo

 


페루 북부 조그만 어촌 마을 뿌에르또 말라브리고에서 나고 자란 하이디는 작년 말 어깨가 딱딱하게 굳는 증상이 생겼다.

그녀의 아버지 윌똔 메나는 딸을 데리고 수도 리마의 알 마네라 병원을 찾았다.

그곳 의사는 '종양이 더 커지기 전에 하이디의 오른팔을 잘라야 살 수 있다.'고 했다.

윌똔은 가슴을 쳤다.

어분공장에서 받는 월급 800 솔레스(약 30만 원)로는 치료비를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았고, 더욱이 사춘기에 접어든 딸이 엄청난 충격을 받을까봐 걱정스러웠다.

윌똔은 한국에서 파견돼 온 마을 성당의 최 신부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던 최 신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착한 소녀 하이디가 지금 병원에 있다. 오른쪽 어깨에 악성종양이 있는데 팔을 잘라내야 한다. 이제 겨우 12살 어린아이인데. 한국 병원에 문의하고 싶다. 이 아이에게 삶의 절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다.'라고 썼다.

팔에 깁스를 하고 있는 하이디의 사진도 붙였다.

이로부터 딱 열흘 만에 하이디는 2만km를 날아와 서울 강남의 성모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열흘간의 기적'은 이렇게 이어졌다.

먼저 사연을 읽은 최 신부의 페이스북 친구인 정재우 신부가 서울에서 백방으로 뛰며 하이디를 도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정 신부는 자신이 아는 오승민 가톨릭중앙의료원 의료협력본부 사무국장에게 무료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고 긍정적인 대답을 받아냈다.

오 국장도 최 신부의 페이스북을 찾아갔고, 페친이 됐다.

오 국장으로부터 최 신부를 소개받은 정양국 가톨릭의대 정형외과 교수는 절단 없이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했다.

이런 식으로 하이디의 사연은 조금씩 퍼져갔다.

최 신부의 페이스북에서 사연을 접한 사람들은 각자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항공료와 체재비 등을 지원하기로 했고, 성모병원 측은 하이디와 아버지의 빠른 비자 발급을 위해 진료예약 확인서를 보내왔다.

리마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김 다니엘라 수녀는 여권 발급 등 세세한 절차를 도왔다.

비자가 발급되자마자 리마에서 하이디와 아버지는 비행기에 올랐다.

하이디는 앞으로 항암치료를 받고, 종양절제와 뼈 재건을 위한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Lima

 


하이디의 한국행을 반대하던 마을 사람들을 설득한 것도 페이스북이었다.

친척처럼 살가운 이웃들은 '대관절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리마에서도 충분히 치료할 수 있다.'며 반발했었다.

3층 건물이 가장 높은 '빌딩'인 어촌 사람들을 위해 최 신부가 페이스북에 성모병원 사진을 올리자, 반발은 싹 사라졌다.

최 신부는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인데, '열흘'은 참으로 기적과도 같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한 노신사가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신원을 밝히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병원에 10억 원을 기부했던 70대 독지가였다. 

그는 '내 기부금을 제일 먼저 하이디에게 써달라.'고 말했다.

하이디는 이 독지가가 마련한 기금의 첫 번째 수혜자가 됐다.

하이디의 아버지가 쓰는 게스트 하우스 사용료와 생활비 전부를 지원받는다.

하이디가 페루로 돌아가는 날이 기금 지원 만료일이다.

병원 관계자는 '노신사 내외는 하이디의 병실을 찾아와 쾌유를 빌기도 했다.'고 말했다.

윌똔은 '2만km나 떨어진 한국에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하이디는 오른팔을 잘라내지 않는 대신, 기증받은 뼈를 이식받았다.

윌똔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당초 페루 병원에서는 '종양이 더 커지기 전에 오른팔을 잘라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정양국 가톨릭의대 정형외과 교수는 '뼈에는 거부반응이라는 게 없기 때문에 한국 사람의 뼈도 하이디에게 무리 없이 이식할 수 있었고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 석 달 정도 지켜본 뒤 하이디를 고향으로 돌려보낼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하이디의 수술비와 입원비는 일억여만 원이 넘는다.

페루 국적의 하이디에게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까닭이다.

어분 공장에서 일하며 월급을 받는 그녀의 아버지가 감당할 수 없는 액수다.

이 비용을 성모병원이 부담했다.

병원 관계자는 '처음 데려오기로 했을 때부터 하이디를 끝까지 책임지기로 했다.'고 말했다.

페루인의 병문안도 많아졌다.

페루 대사관 직원의 아내 까띠아 완다는 '한국에 거주하는 페루 사람들끼리 하이디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의견을 나누어 하이디가 외롭지 않게 번갈아가면서 병실을 찾기로 했다.'고 말했다.

병문안을 온 마리 산띠아고는 '한국에서 투병 중인 하이디의 친구가 되어주고 싶어서 매주 한 번씩은 병문안을 온다. 꿋꿋이 병을 이겨내는 하이디의 모습에 도리어 우리가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Ceviche

 


"일단 어머니가 해주는 세비체를 먹고, 그간 못했던 공부 열심히 해서 의사가 되고 싶어요. 내가 아파봤으니까, 치료를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선 지금은 몸이 다 낫는 게 소원이에요..'

말하는 소녀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페루 국민 가수 Tania Libertad의 Concierto para una sola vo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