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묵고 합시다
먹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가족, 친지들과 둘러 앉아 오순도순 음식을 같이 먹을 때의 행복함은 그것만으로 신성하다.
별 말들 없어도 마음 속에 행복과 미소가 수도 없이 오가는 자리이니….
우리가 아이를 낳아 키우고 짐승을 거두어보면, 먹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잠깐, 시인 지우 님의 입을 통해 그 거룩함부터 느껴보고 얘기를 이어가자.
“몸에 한 세상 떠 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중략)
파고다 공원 뒤편 국밥집에서 숟가락 가득 밥을 떠 넣으시는 짱짱이 님의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짱짱이 님 자화상
굳이 ‘평상심이 도(道)’란 말을 떠올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그 단순한 일상의 밖에서 중요한 무엇을 찾겠는가?
헛되고 헛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절 식구들 밥 지어주는 공양주 역할을 하며 깨달음을 얻었던 지심행 선사의 수행이 주는 매력은 크다.
젠 체하지 않고 식객들을 위해 묵묵히 쌀을 씻고 밥을 짓던 지심행 님의 과묵함과 수줍음….
스승에게 기묘한 질문을 받고, 번번이 말문이 막혀 당황하는 그녀의 선문선답은 가벼운 세태를 좇는 중생들을 오히려 당황하게 한다.
지심행 선사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쌀을 일고 있을 때 일이다.
스승인 북한산 단풍 님이 다가오더니 약간의 도발을 한다.
애정이 있어야 도발도 하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황당한 질문이다.
“그대는 모래를 일어서 쌀을 가려내느냐, 쌀을 일어서 모래를 가려내느냐?”
“쌀을 일어 모래를 가리지요.”
여기까지는 비교적 성공적인 대응이었으나, 곧바로 철퇴가 날아든다.
“그렇게 하면 대중은 무엇을 먹느냐?”
또 지심행 님이 밥을 짓고 있던 어느 날이다.
스승 단풍 님이 다시 시비를 걸어온다.
“오늘은 밥을 얼마나 지었느냐?”
“두 섬을 지었습니다.”
“모자라지 않겠느냐?”
“금식 기도하는 보살님도 있습니다.”
다시, 비교적 성공적인 방어.
그러나 철퇴는 여지없다.
“갑자기 모두 먹겠다고 달라들면 어떻게 하겠느냐?”
짱짱이 님의 망중한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닌듯한 일상의 문답이다.
그러나 지심행 님이 쌀과 모래를 구분하고, 밥의 적정량을 애써 가늠하는 동안, 스승은 그 분별의 마음을 그냥 두기 싫었다.
스승의 꾸지람 앞에서 제자는 자신의 분별심을 자책하며 속수무책으로 반성하게 된다.
그러나 지심행 님의 짧은 답과 침묵이 총명과 지혜를 자랑하는 이들의 간담을 서늘케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지심행 님은 혼란 속에서도 일구던 쌀을 마저 일궈 밥을 안쳤을 것이다.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 당장에 공양주의 중책을 맡고 있는 자로서, 자신의 개인적 깨달음을 어찌 대중의 공양 위에 두겠느냐는 말이다.
기록된 건 없지만, 공양주에서 은퇴하기 전까지 그렇게 무던히 쌀을 씻고 밥을 짓는 수십 년동안 지삼 행님은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이 확고한 마음자리를 마련했을 것이다.
짱짱이 님과 국밥 묵는 친구들
머리 좋은 사람이 마음 좋은 사람 못하고, 마음 좋은 사람이 손발 부지런한 사람 못하다는 얘기들을 한다.
그것은 나태함을 꾸짖는 세속의 경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구도의 한 방책이기도 하리라.
킬리만자로의 표범, 조용필
'꼬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운 금강산, 조수미 y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0) | 2016.07.11 |
---|---|
가슴 아프게, 김수희 y 한국 트로트 계의 별 박춘석 님의 명복을... (0) | 2016.07.10 |
초원의 빛, 히식스 y 나탈리 우드 (0) | 2016.05.31 |
총 맞은 것처럼, 백지영 y 산 소같은 여자 (0) | 2016.05.30 |
비, 이용복 y 기이한 미술관 (0) | 2016.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