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레

가슴 아프게, 김수희 y 한국 트로트 계의 별 박춘석 님의 명복을...

부에노(조운엽) 2016. 7. 10. 17:58

 

 

 

 

한국 트로트계의 별 박춘석 님의 명복을

 

 

 

법정 스님은 불쌍한 중생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었고......

박춘석은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노래를 많이 만들어 그들의 정서 함양에 많은 도움을 주었고...... 

길태는 서민들의 아픔과 소외 계층 사람들의 어두운 자화상을 인식시켜주었고......

우리의 짱짱이 님은 서민들의 앞날에 많은 꿈과 희망을 주고 있다. ^^

 
원로작곡가 박춘석 씨는 1930년 서울에서 고무 공장을 운영하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풍금을 자유자재로 연주하며 신동 소리를 듣던 박 씨는 경기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음대 기악과에 입학했지만 1년만에 중퇴하고, 신흥대학(현 경희대) 영문과로 편입, 졸업했다. 

1954년 '황혼의 엘레지'를 통해 작곡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1956년 발표한 '비 내리는 호남선'이 히트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64년부터 이미자와 콤비를 이루면서 트로트로 급선회했고 이후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 흑산도 아가씨, 노래는 나의 인생 등 이미자씨와만 700여곡을 발표했다. 

1967년 '박춘석 가요창작 999곡째 발표'라는 이색 타이틀 공연을 가졌고,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박춘석 창작가요 2,000곡 기념공연' 무대를 국도극장에서 열었다.
이때부터 '박춘석 사단'으로 불리는 패티김, 남진, 나훈아, 문주란, 정훈희, 하춘화 등과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수많은 히트곡 행진을 이어갔다. 

고인은 가요계뿐만 아니라 영화는 물론 연극음악까지 큰 업적을 남겼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94년까지 쉴 새 없이 1백여 편의 영화음악을 작곡했다.
일본 최고의 여가수 미소라 히바리(美空 ひばり)에게 '風酒場(かぜさかば)'이라는 곡을 써주기도 했다. 

박춘석씨는 오아시스레코드사와 지구레코드사 전속작곡가, 한국 음악 저작권 협회 회장, 레코드사 사장 등을 거치며 1950~1980년대 한국 가요계를 이끌어왔다.
국내 대중가요 개인 최다인 2,700여 곡을 작곡했고 2001년 영국 그로브음악대사전에 이름을 올렸다.
또 1994년 제1회 대한민국 연예 예술상, 1995년 옥관 문화 훈장을 수상했다.
 

 

2010년 3월 14일

 

 

 

 

 

가슴 아프게, 김수희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쓰라린 이별만은 없었을 것을
해 저문 부두에서 떠나가는 연락선을
가슴 아프게 가슴 아프게
바라보지 않았으리
갈매기도 내 마음 같이 목메어 운다

당신과 나 사이에 연락선이 없었다면
날 두고 떠나지는 않았을 것을
아득히 바다 멀리 떠나가는 연락선을
가슴 아프게 가슴 아프게
바라보지 않았으리
갈매기도 내 마음 같이 목메어 운다


 

 

 

가슴 아프게, 김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