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프놈펜에서의 하루, 인형

부에노(조운엽) 2016. 6. 22. 17:34

 

 

졸지에 집이 가내 공장으로 변했다

 

 

 

 

프놈펜에서의 하루, 인형

 

 

프놈펜에 산 지 오 년이 넘었다.

어디 사나 먹고 사는 것이 만만치는 않은 터...

우여곡절 끝에 봉제공장에 재봉사를 대주는 용역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럭저럭 먹고 살긴 하는데 결제가 항상 문제가 된다.

3, 4월에 일한 인건비를 중국 공장 두 곳에서 아직도 받지 못해 힘들다.

한국 공장에서 옷 부속을 꿰매고 벌 당 얼마 받기로 계약한 건도 수지가 맞지 않아 재봉사와 보조 60여 명을 공장에 남겨두고 석 달 만에 손 털고 나왔다.

 

 

그러던 중 어제, 노느니 집에서 재봉틀 한 열 대 놓고 인형 부속을 꿰매보라는 제의가 들어왔다.

이런저런 갈등을 겪던 중이라 돈 들어 갈 건 없고, 재봉사 인건비에 약간의 내 생활비만 나오면 될 것 같아 흔쾌히 수락했다.

 

 

일단 같이 일할 재봉사들에 연락하면서 이 일을 해 본 아는 공장장 출신에 전화했다.

한걸음에 달려온 C 사장님은 샘플을 보고 공정 분석을 하더니 받을 공임으로 재봉사 월급 대기도 힘들겠다고 하면서 그래도 K 사장님이 갖고 온 일거리니 한 번 해보라 하고 갔다.

 

 

 

 

 

 

최근까지 같이 일했던 위 씨

 

 

 

 

새벽에 얼른 출근 준비해서 5시 40분쯤 모토를 타고 까나스티에 있는 재봉사 위 씨 집에 찾아갔다.

지지난 주까지 같이 일했는데, 어제 전화번호 세 군데로 여러 번 전화해도 연락이 되질 않아 직접 찾아간 것이다.

그 집안에는 일 잘하는 재봉사들이 여러 명 있다.

그녀의 남동생, 올케, 올케의 친정 언니, 그 신랑, 올케의 큰언니 그리고 위 씨의 조카 모두 7명이나 된다.

어린 조카 빼놓고 기능이 좋은 재봉사가 6명이나 되니 조카 끼어 다 나오면 일타칠매(?)로 얼마나 좋냐 말이지...

집에 가보니 위 씨는 다른 공장에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놀게 되면 나와 같이 일하자 말하고 까나리야 공단으로 급히 갔다.

 

어제 연락한 내 일을 많이 도와주는 찌소완너리 씨가 기다리고 있다.

그녀와 여기저기 재봉사들에 전화 연락하고, 우리 재봉사 열 명 이상이 필요하니 내일 보자 하고 그녀는 공단으로 들어가고,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늘부터 같이 일할 재봉사 르은 씨를 뜨러페악 틀렁 시장에서 만나 태워서 왔다.

 

 

오늘 나오기로 한 스라이 레잉 씨가 집에 오질 않았다.

이젠 집이 아니고 작지만 공장이지... ^^

전화해도 연결이 되질 않는다.

그럴 사람이 아닌데 뭔 일이지...

캄보디아 사람들은 약속해도 와야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려니 하고 오늘 작업 준비를 했다.

본봉 재봉틀 열 대를 임대하고 르은 씨가 샘플을 만들었다.

어제 듣던 것보다 실제 해보니 공정이 적게 들어간다.

 

 

 

이 년째 같이 일하고 있는 르은 씨, 자타가 공인하는 일급 재봉사이다

 

 

5명 한 조로 시간당 백 개를 만들면 하루 오십 불이 남는다.

두 조가 돌아가면 하루 백 불...

시간당 백 개가 넘으면 그 이상 남고...

이건 어디까지나 계산상 그렇다는 거다.

생각대로 다 되면 망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자, 준비는 대충 됐고, 내일부터 재봉사를 열 명 채워 일해 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