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은퇴 이민

동남아 은퇴 이민의 허상

부에노(조운엽) 2016. 10. 30. 11:20

 

 

 

우리가 살면서 오늘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연과 인연의 연속인지...

타이, 푸껫 까따 비치에서

 

 

 

동남아 은퇴 이민의 허상

요즘 필리핀에서 한인 피살 사건이 자주 일어납니다.

게다가 한인들끼리 청부살인 하는 일도 있었지요.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래도 현지에 파견된 우리나라 경찰이 직접 수사한다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지 경찰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외국인 피살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기에.

모쪼록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살인자는 다 검거하고, 살인을 청부한 사람들도 꼭 죗값을 받게 하길 바랍니다.

암튼, 이런 내용을 서두에 적는 이유는 많은 사람이 동경하는 동남아 이민, 은퇴 이민의 허상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기 위함입니다.

물론 본 포스팅의 내용은 그동안 태국, 필리핀, 베트남 등 여러 나라에서 직간접적으로 거주, 취업, 사업 등을 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동남아를 그저 아름다운 휴양지, 그리고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느긋하고 평화로운 곳쯤으로 생각하고 계시는 분이 많습니다.

한 나라를 단순히 여행하면서 바라보는 시각과 현지에서 실제 현지인들과 함께 사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롯데월드에 놀러 온 사람과 먹고살기 위해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의 차이처럼 말이죠.

당신이 여행 가서 본 잘 웃고, 착하고, 순박한 그들.

​같이 살아보면 절대 만만치 않습니다.

오래전 우리도 그랬듯이 못사는 나라의 많은 현지인의 주머니는 늘 비어 있는데 갑자기 자식이 아프고 부모형제가 교통사고라도 당하면 어찌합니까?

만약 그때 그들 곁에 주머니가 넉넉한 외국인이 있으면 절박한 그들의 눈에 이성을 잃고 보이는 것이 없을 수도 있겠지요.

'동남아에서 이백만 원으로 황제처럼 살기'라는 책과 내용이 미디어로 많이 소개되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이 '아! 정말 동남아에서 그렇게 살 수 있어?'란 환상을 갖게 된 거 아닌가 싶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좀 격하게 이야기해서 '개소리'입니다.

저는 황제처럼 산다는 게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꼭 황제처럼 아니더라도 대충 가정부에 운전기사 두고 마당과 텃밭이 있는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오붓하게 고기 구워먹고, 일주일에 몇 번 골프도 치면서 인생을 즐기는 수준이라고 가정해도 역시 개소리입니다.

태국,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라오스 다 다녀보았지만 이백만 원으로 황제처럼 산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단, 생활방법이 현지인화하면 황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 더 여유 있게 살 수는 있겠죠.

하지만 이미 국민소득이 삼만 불에 육박하는 한국인의 수준에서 그런 생활에 만족하기는 쉽지 않으며 이것을 황제처럼 산다고 말하면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이야기입니다.

간단한 예로 베트남을 들어보지요.

한국인이 십만 명 가까이 산다는 대도시 호찌민 시를 봅시다.

살면서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만 말해보지요.

일단 집의 경우 호찌민 시내 기준 한 달 임대료가 700~1,000불 정도 합니다.

가사 도우미 월급 이백 불, 운전기사 250~400불, 식대의 경우 한국 재료 가격이 한국과 비슷합니다.

의식주만 대충 합쳐도 천오백 불 이상, 여기에 정말 황제 흉내라도 내려면 품위 유지비 들죠, ​골프라도 일주일에 한두 번 치려면 답이 안 나옵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물론 '나는 대도시가 아닌 지방 소도시, 시골에 정착할 거야'라고 생각하신다면 위의 예가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이 있지요.

​저개발국가의 시골이나 변두리에 사는 것은 치안 불안, 심심함,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과 공존해야 합니다.

그렇게 산다면 그건 황제 같은 삶이 아니라 제 돈 쓰고 하는 유배생활이 아닌가요?

그러려고 은퇴 이민을?

​난센스지요.

실제로 이민을 생각하는 이들이 가장 쉽게 생각하는 게 바로 자영업입니다.

그중에서도 손쉽게 할 수 있는 게 식당이죠.

'동남아에 한류 바람이 부니까 한국 음식 좋아할 거야. 거기다가 막연히 값싼 임대료와 노동력 등으로 초기 부담스러운 투자비용이 없으니 가능하지 않겠어?'란 생각을 하겠지만, 만고불변의 법칙인 음식은 맛이 있어야 합니다.

오천만 명의 잠재 고객과 모든 재료가 다 있는 한국 내에서도 음식점으로 성공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대부분 현지인의 주머니는 늘 비어있다고 봐야 합니다.

​열에 하나 성공한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초기투자비용도 못 건지고 그저 학습비로 날렸다 생각하며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정식으로 작은 사업이라도 하려면, 현지인 명의를 빌려 50% 내외의 합자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가깝던 현지인이 어느 날 갑자기 '당신, 누구세요?'하면 어찌합니까.

그러면 왜 이런 내용의 책과 미디어가 자주 방송되었을까요?

​현지 실정을 정확히 모르고 수박 겉핥기로만, 대중의 관심을 얻고 인기를 끌기 위한 언론 속성상 과장보도로 그렇게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웬만하면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하는 야간비행이 장문의 이런 안티 포스팅을 적는 이유는 그동안 주변에서 동남아 은퇴 이민이 마치 천국으로 가는 계단쯤으로 쉽게 생각하고 착각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고 또 그들의 끝을 봤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많은 분 중 동남아 은퇴 이민을 계획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결코 말리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심어드리기 위한 포스팅이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다만 '적당한 의심은 넘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넘어질 수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장애물을 미리 피해 넘어지지 않는 것과 피치 못해 넘어지더라도 빨리 일어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달 이백만 원으로 동남아에서 황제처럼 살기란 허상입니다.

단, 잘 준비하신다면 은퇴 후 인생의 제2막을 한국과는 좀 더 색다르고 여유롭게 살 기회가 주어질 수는 있을 겁니다.

살아보니 기회는 잡는 게 아니고 준비하는 것이더군요.

 

글쓴이 야간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