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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챔피언 홍수환 열전

부에노(조운엽) 2020. 5. 7. 08:53



더반에서 세계 챔피언이 되어 돌아와 김포공항에서 환영받는 홍 선수와 어머니




세계 챔피언 홍수환 열전

 


홍수환 4전5기 경기 : https://www.youtube.com/watch?v=48ZEPO_BwlU

배경음악 : https://www.youtube.com/watch?v=ioE_O7Lm0I4


 

우리 카페는 동시대를 살아온 분들이 대부분이라서 칠팔십 년 대 세계 복싱 경량급 두 체급 챔피언을 지냈던 사전오기의 주인공인 홍수환 선수를 잘 알 것이다. 

글쓴이는 어렸을 때 권투에 관한 한 비상한 기억력을 갖고 있어 한국 선수와 겨뤘던 많은 외국 선수들의 이름과 에피소드를 알고 남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었다. 

그래서 유제두 선수가 동양 타이들 매치할 때만 해도 서울에 차들이 안 다니고 흑백 TV 앞에 모인 동네 어른들께 와지마 고이찌가 어떻고 벤베누티 선수가 저쨌느니 하는 이야기들을 술술 잘 풀어나가 좌중의 흥을 돋웠던 기억이 난다.

그때 동네 한 어르신이 장내 아나운서는 얼마 받느냐 묻길래 '오천 원 받아요.'라고 뻥을 치고 그분은 '많이 받네.'라고 응수하고...

 

그런데 얼마 전에 홍수환 선수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서 그것을 풀어나가는데 희한하게도 수십여 년 전의 선수들 이름이며 그때 상황이 그대로 기억나더라는 것이다. 

하나도 검색 안 하고 그 감동적인 얘기를 다시 말씀드리면, 홍 선수가 복싱에 입문하던 때는 우리나라 경제가 빈약해서 먹고 살기 어려워 인생 역전의 꿈을 품고 복싱을 하던 때였다. 

그는 체격이 왜소하고 힘이 약해서 친구들한테 덜 얻어맞으려고 복싱하는 친구 따라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운동을 몇 년 하다 보니 자세가 좀 나오자 아마추어 시합에도 나갔다고 한다. 

많이 맞기도 하고 지기도 하다가 그의 빠른 복싱을 눈여겨본 한 지도자의 눈에 띄어 훈련을 거듭하여 프로에 뛰어들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무슨 운동을 하든지 프로에 들어가기만 해도 상당히 성공한 건데 그때는 장충체육관에서 시합했다는 것은 가문의 영광 정도는 아니더라도 두고두고 자랑거리였다. 

참고로 글쓴이도 새마을 운동, 고운 말하기 운동 등 운동을 무지 많이 했지만, 장충체육관에는 응원석밖에는 안 있어 봤다.


프로에서 4회전 선수부터 시작하여 차츰 기량이 상승하여 한국 챔피언이 됐고 동양 타이틀까지 따고 군대에 가게 되었다. 

남산 옆 필동에 있는 수경사에서 군 복무를 하던 중 절호의 기회가 왔다. 

당시 남아 연방에서 처음으로 세계 밴텀급 챔피언이 된 국민 우상 아놀드 테일러가 방어전을 쉽게 치르려고 무명의 동양 복서를 1차 방어전 상대로 지목한 것이다. 

그래서 훈련에 들어간 홍 선수는 부대에서 로드 웍을 시작하여 남산 도서관 옆 마지막 계단까지 지치지 않고 뛰어서 올라갈 수 있으면 그를 꺾을 수 있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물론 처음에는 쉽지가 않았지만, 꾸준히 연습한 결과 출국하기 직전에는 정말 가벼운 몸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리하야 일주일이나 비행기를 타고 돌고 돌아 남아 연방의 더반에 도착하여 시합하게 되었다. 

여독에 지친 몸이었고 출국할 때 한국 권투 연맹에서조차 환영 나오지 않았던 무명 선수인 그를 관중석에서는 한국 선원 삼십여 명이 목이 터지라고 응원했다고 한다. 

이에 힘을 얻은 홍 선수는 1회전에 카운터 펀치를 날려 아놀드를 다운시켰다. 

그러나 맷집과 기량이 뛰어난 챔피언은 시합을 마지막 라운드까지 끌고 갔다. 

홍 선수는 판정으로 가면 홈 어드밴티지 때문에 이길 수 없는 경기로 생각하고 죽기 살기로 싸우다가 오른손 뼈가 부러져 한 손으로만 싸우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으나 젖 먹던 힘까지 다 발휘하여 경기를 주도하여 판정승을 거두었다. 

TV나 라디오 중계도 안 해준 적지에서 처음으로 세계 챔피언이 된 순간이었다. 

그리하야 이른 아침 등굣길과 출근길에 전 국민에게 감동을 선사했던 유명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와 그의 어머니의 '우리 아들 장하다. 대한 국민 만세다.'라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말이 탄생하였다.

대한민국 일등병으로서 처음으로 국군 의장대 사열을 받았던 그는 청와대에 초대받아 박 통 내외와 관계인들이 참석했던 자리에서 대통령으로부터 '자네는 경기중에 왜 손을 그리 흔들었나?'라는 질문을 받고 주먹 뼈에 금이 가서 흔들었다는 소리는 못 하고 엉겁결에 '그거 회오리 타법입니다.'라고 말하여 좌중을 웃겼고 나중에 시합 도중 종종 국민에게 볼거리를 더 제공하기도 했다.


다른 에피소드도 무쟈게 많지만 길면 재미없으니까 멕시코의 강타자 알폰소 사모라에게 타이틀을 뺏겼던 이야기는 빼고 파나마의 엑또르 까라스끼야와 세계 주니어 페터급 챔피언 결정전할 때 이야기로 넘어간다.

부인과 이혼하고 가수 옥희와 어쩌고저쩌고 하던 이야기도 사생활이니까 넘어가고 아무튼 파나마에 원정을 갔다. 

당시 남의 나라에 가서 타이틀을 따온다는 것은 KO로 쓰러뜨리기 전에는 참 힘들던 시절이었다. 

더군다나 상대는 13전 12KO승 1 무승부를 기록하고 있는 강타자 아니던가.

당시 한국 복싱에 대해 친구들 간에 나름 해박했던 글쓴이조차 홍 선수가 이기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전문가들은 어땠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시작하자마자 다운을 당하더니 네 번이나 쓰러졌다. 

당시 주심은 미국인이었는데 영어도 좀 하고 유머 감각이 있는 키가 상대적으로 작은 홍 선수를 좋게 봤다고 하는데 마지막 다운을 당하고 계속 싸우겠다는 홍 선수의 결연한 눈빛을 보고 게임을 중지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다운 된 선수는 다리가 풀리고 정신이 연탄가스 맡은 사람 같은 상태라 한다.

일 분간 휴식하고 다시 라운드가 시작하여 다 이겼다고 생각한 상대 선수는 쥐가 고양이를 갖고 놀듯이 톡톡 치다가 홍 선수의 혼신의 힘을 다한 카운터 펀치를 맞고 비틀거렸다.

썩어도 준치라고 홍 선수는 한때 세계 챔피언을 지냈던 선수 아니던가.

그 기회를 놓칠세라 키가 한 뼘은 더 큰 까라스끼야 선수를 로프로 몰아붙여 역전 KO승을 해냈다.

젊고 힘센 중남미 선수에게 한 라운드에 네 번의 다운을 당하고도 포기하지 않고 오뚝이같이 일어나 얻어낸 값진 인간 승리였다.

직전에 동양에서는 적수가 없었던 이창길 선수가 콜롬비아에 원정 가서 세계 웰터급 장수 챔피언 호세 세르반떼스에게 6회에 다운을 당하고 일어나면 죽을 거 같아서 그냥 누워있었다고 기자 회견한 직후였다.

그래서 4전 5기와 두 체급 세계 타이틀 홀더의 역사가 탄생하였다.

역시 권투만큼이나 입이 야무졌던 홍 선수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그 유명한 말 '짜식, 건방져서 꼭 이기려고 했어요.'라는 말을 국민들에게 회자시키고 링을 벗어났다.


그 후 세월이 흘러 부침의 세월을 거듭했던 그를 직접 만나게 되었다.

어떤 모임에 초대 강사로 강연하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야무지게 청중들을 리드하던 그의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말. 

"여러분, 제가 처음부터 강의를 잘했을 거 같습니까?" 

관중들은 '네~.'라고 우렁차게 대답했고 잠시 뜸을 들이다가 '제가 처음 공무원들 모인 자리에 초대되어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하다가 집에 돌아가 거울 보면서 수도꼭지를 틀고 펑펑 울었답니다. 세계를 제패했던 챔피언이 얼마 안 되는 관중 앞에서 얼마나 떨고 땀을 흘리며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왔는지 쪽 팔려서 죽고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라고 묻자 관중들은 '잘해요~~~'라고 대답했다. 

"그렇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한때 세계를 제패했던 두 체급의 챔피언인 저도 뭔가를 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공부를 해서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지 아십니까?" 


재미있게 보셨습니까? 

세상일 만만한 게 어디 있겠어요? 

혹시 사실과 다른 오류가 있으면 지적해 주십시오.

순전히 기억에만 의존해서 쓴 거니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