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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키델릭의 여제 김정미 님과 보디가드, 간다고 하지 마오

부에노(조운엽) 2020. 5. 9. 05:43






사이키델릭의 여제 김정미 님과 보디가드



배경 음악 : 간다고 하지 마오 https://www.youtube.com/watch?v=6J5Xd4sTaEA

               잊어야 한다면 https://www.youtube.com/watch?v=dgj4l8bCl2c&list=RDO3EMubX7n-E&index=4

 

 

"히히~~~ 아저씨, 정미 누나 노래 좀 녹음시켜주세요."

"어, 학생 왔냐? 용돈 생긴 모양이지."

"네, 참고서 산다고 엄마한테 삥땅했어요."

"8트랙 테이프 카트리지네."

"네, 아빠가 사 오셨는데 이 뽕짝 지우고 좀 해주세요."

70년대에 LP판과 함께 음악을 듣던 8트랙 카트리지.

LP판은 한 면 노래가 끝나면 손으로 다시 돌려줘야 하지만 8트랙은 마냥 돌아갔다.

음질도 더 나은 것 같았다.

그런 걸 청계천 7가에 가면 해적 LP판과 함께 팔았다.

몇백 원만 주면 녹음도 해주었다.

당시 경제 사정이야 말 안 해도 상당히 어려울 때였다.

불과 몇 년 전 국민학교 다닐 때는 점심 도시락을 못 싸 와서 미국에서 원조해준 옥수수죽으로 점심을 때우는 학생들이 거의 절반 가까이 됐다.

6학년 때 옥수수빵으로 바뀌었지만...

그리고 용돈 몇백 원만 생기면 청계천 7가로 뛰어가서 듣고 싶은 음악을 녹음해 오고, LP 해적판을 사는 것이 큰 행복이었다.

주로 산 것이 Led Zeppelin, Deep Purple, Melanie Safca 그리고 B.T.O. 등이었다.

그렇게 모은 것이 백여 장은 넘었다.

가수 김정미 님과 한 동네 살면서 그녀의 팬이 되어 그녀의 노래를 녹음해서 듣는 것도 큰 낙이었다.

용돈이 거의 없는 학생 입장에서 정품을 산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저 그렇게 불법 녹음해서 듣는 것만 해도 엄청 감사한 일이었다.

당시 집에 TV는 말할 것도 없고, 전축도 없는 친구들이 제법 많았으니 말이다.


그때 정미 누나 운전기사 겸 경호를 하던 해병대 출신 아저씨 에피소드 하나.

정미 누나가 용산 근처 업소에서 노래를 부르고 다음 장소로 가기 위해 아저씨와 업소를 나오는데 술 취한 젊은 애가 시비를 걸었단다.

기사 아저씨가 말로 해서 안 되니 정미 누나는 차에 타라 하고 그 젊은이들과 싸움이 붙었단다.

그랬더니 그 젊은 애 패거리 대여섯 명이 우르르 달려들더란다.

아무리 해병대 출신이라지만 젊은이들 여러 명을 혼자서 상대하기에는 버거운 일 아닌가?

그런데 이 작달막하고 다부진 아저씨는 맞으면서 한 놈만 노리고 패면서 혼자 그 젊은 애들을 차례차례 눕혔다고 한다.

그 젊은이들은 용산 건달들이었다.

건달 두목이 소식을 듣고 놀라 현장에 왔더니 그 기사 아저씨가 혼자 웃통을 벗고 씩씩대며 자기 똘마니들을 무릎 꿇려 앉히고 '내가 해병대 이백몇십 긴데 요 조막만 한 놈들이 우리 정미 씨를 건드려.'라고 말하고 있더란다.

실제론 자기가 제일 키가 작으면서... 

건달 두목도 해병대 출신이라 바로 그 자리에서 넙죽 인사하며 '아이고, 선배님. 죄송합니다. 저 한 참 후임입니다. 동생들 교육을 잘못시켜서 죄송합니다.'라고 백배사죄를 하더라나...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고 해병대 출신들의 선후배 의식과 의리는 아무도 못 말린다.

그 후로 밤업소에서 건달들이 김정미 님과 기사 아저씨는 절대 안 건드렸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