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선원의 항해일지

한국전쟁 고아 아일라와 터키

부에노(조운엽) 2020. 7. 20. 07:09

 

 

한국전쟁 고아 아일라와 터키 

 

 

터키 영화 아일라 https://www.youtube.com/watch?v=Rg1ia8Kic8Y

 

 

'HAPPY LATIN'호는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에게해에서 북해를 잇는 터키의 마르마라해에 진입해 이스탄불항에 닻을 내렸다.

파일럿이 승선하는 동안 잠시 대기 중에 대리점이 가지고 온 본사 서류와 선원들 편지를 받고 보스포루스해협을 통과한다.

 

터키는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다리역을 하는 나라로 국교가 없이 신앙의 자유가 있지만 대부분 이슬람을 믿는다.

대한민국을 외국에서 'KOREA, CORE'라 부르듯 터키는 '튀르크'가 본명이다.

여러 나라에서 터키라고 부르지만, 터키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터키인들도 영어로 Turkey가 칠면조이고 겁쟁이라는 뜻이 있기에 용맹스러운 터키 용사의 유래가 된 튀르크의 '용감하다'라는 뜻과 상반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국기에 대한 맹세'와 미국의 '충성 맹세'처럼 터키에도 비슷한 게 있다고 한다.

매주 학생들 조회 시간에 '조국과 민족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내가 터키인이라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라고 합창하며 자긍심을 키웠다고 한다.

유럽, 중동에서 상당한 인구 대국으로 땅도 넓어 8천만 국민의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나라이다.

 

이스탄불 시내를 가로지르는 보스포루스해협은 러시아의 우랄산맥과 함께 유럽과 아시아 지역을 나누는 지리적인 경계선이다.

해협이라지만 폭이 좁아 강처럼 보인다.

이스탄불은 바닷길과 육로가 맞물리는 요충지였기 때문에 고대부터 중요한 도시였고, 결국 로마 제국, 동로마 제국, 오스만 제국까지 수천 년간 수도였다.

 

소련,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흑해 안 주변국은 이 해협을 통해야만 지중해로 나갈 수 있기에 오랫동안 터키와 티격태격했다.

터키로서는 국운을 걸고 반드시 지켜야 할 해협이었고, 2차대전 내내 중립국이었던 터키가 미국 편에 선 이유도 소련의 협박에 굴복할 수 없어서였다.

지금 터키는 민간선박의 통행은 자유롭게 허용하고, 대신 군함은 국적 불문하고 순양함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해협을 잇는 다리는 보스포루스 제1대교와 두 번째 다리가 시내에 있으며 해협 북쪽에는 현대건설이 만든 제3대교가 있다.

남쪽엔 SK건설이 참여한 컨소시엄이 해저터널을 만들었다.

 

6.25전쟁 참전국이며 형제의 나라라고 하는 터키.

한국전쟁에서 터키의 용맹함과 활약은 대단했다고 한다.

전쟁 당시 터키여단을 지휘했던 타흐신 야즈즈 육군 준장이 한국전쟁 영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야즈즈 준장은 터키 육사를 나와 제1차 세계대전, 터키 독립전쟁에서 활약하고 6·25전쟁에 참전하였다.

터키여단은 한반도 도처에서 전투하며 격전을 치렀다.

이들은 특히, 유엔군의 대규모 수색 작전인 용인 전투에서 터키군 장병들은 용감한 백병전으로 적을 무찔렀다.

터키여단은 연이어 지리적 요충지인 수리산 고지 전투에서도 큰 역할을 하여 유엔군의 한강 진출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었다.

6.25전쟁에 파병한 16개국 중에 3번째로 많은 만오천여 명의 전투병을 파병, 구백여 명이 전사, 실종됐고 이천여 명이 부상했다. 

그중 462명이 부산 유엔 기념공원에 묻혀 있다.

터키 여단은 전쟁이 끝나고 1960년까지 한국에 주둔해 전쟁 복구를 도왔다.

자유를 위해 우리나라를 지켜준 이들의 목숨 건 희생에 고저 엎드려 감사드린다.

 

터키에서 제작된 한국전쟁 영화 '아일라'가 있다.

터키 군인이 전쟁 고아인 얼굴이 달처럼 동그란 아일라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하며 감동을 주는 실화이다.

'어떻게 저렇게 할 수가 있지? 나라면 과연 저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자문을 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터키에서 흥행이 엄청나게 잘 되었다고 한다.

 

밀레니엄 시대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터키탕이라면 음란 퇴폐업소였다.

이 명칭은 일본에서 도루꼬탕이라고 하여 전혀 엉뚱한 이름인데, 당시 터키 대사관에서 강력하게 항의했다고 한다.

"당신들은 터키에서 음란 퇴폐업소를 코리아 하우스라고 부르면 기분 좋으시겠냐고?"

그래서 터키탕을 증기탕이란 이름으로 바꾸었고, 당시 국내 언론에서도 6.25 때 참전하여 우리나라를 도와준 나라를 모욕하는 명칭을 쓰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쿠르드 여전사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지에 흩어져 사는 세계 최대의 유랑 민족 쿠르드족은 기원전부터 이 지역의 산악 지대에서 유목민으로 살았다.

현재 인구는 삼천삼백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 중 약 천오백만 명이 터키에 거주하고 있다.

수천만 명의 단일민족이 고유문화와 언어를 사용하는데도 나라 없이 중동 산악지대에 흩어져 살고 있어 '세계 최대의 유랑 민족'이라고 불린다.

국가가 없는 거대민족이라는 점 덕분에 쿠르드족은 여러 번 미국과 영국 등 강대국을 돕다가 버려지거나 배신당했다.

한국전쟁 때 참전한 터키 군인 중 쿠르드족이 상당수 차지했다고 한다.

쿠르드족 대다수는 해당 정부의 차별정책과 탄압에 맞서 민병대를 조직하여 독립하기 위해 지금도 싸우고 있다.

쿠르드계는 다른 중동과 달리 남녀가 평등하거나 여성의 지위가 높은 편이며 이들의 사회 참여도 활발하여 많은 여성이 참전해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저승사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단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 중에 여군에게 총 맞아 죽으면 재수 옴 붙어 지옥으로 직행한다고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아 이들 쿠르드 여군들이 저격수로 활약하면서 IS의 전의를 꺾는데 큰 몫을 했다고 한다.

 

이스탄불 출항 전문을 본사와 소련 대리점에 보내니 노보로시스크 대리점에서 회신이 왔다.

외항 도착 후 지정된 이스턴 앵커리지에 닻을 내리고 기다리라는 간단한 내용이다.

 

에게해 바닷물이 흑해로 들어가 되돌아 나오는 데 수천 년이 걸린다고 한다.

우리 인간의 희로애락은 이런 자연의 순환에 비하면 조족지혈로 얼마나 가소로운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