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선원의 항해일지

희망봉과 크루즈선

부에노(조운엽) 2020. 8. 15. 06:19

 

 

남아프리카를 유람하는 크루즈선

희망봉과 크루즈선

음악 : Sailing, Rod Stewart https://www.youtube.com/watch?v=dJjvgmYyzKo

적도를 지나 잔잔했던 바다가 희망봉이 가까워지니 파도가 뱃전을 넘실댄다.

바람도 거세진다.

멀리 검푸른 바다에서 물거품을 품어내며 숨 쉬는 고래 두어 마리가 보였다 사라졌다 한다.

마치 고래가 춤을 추는 듯이 보인다.

작아 보이는 놈은 암놈일까, 새끼일까?

사실 고래는 원래 육지에 살던 포유동물이라 새끼는 어미 젖을 먹고 자란다고 한다.

고래는 아가미가 없고 머리 뒤쪽에 있는 콧구멍을 통해 폐로 숨을 쉬는데 물 위로 올라와야 숨을 쉴 수 있다.

고래가 수면에 올라오면 우선 콧구멍으로 기도의 물과 폐의 공기를 내뱉는다.

이때 '푸우~' 하는 큰 소리가 나면서 멀리서 보면 마치 물을 뿜는 것 같다.

온열동물인 고래가 숨을 내쉴 때 나오는 따뜻한 공기가 바깥의 찬 공기에 닿아서 물방울로 변해 물을 내뿜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땅끝마을 우수아이아와 함께 남극이 가까운 아프리카의 희망봉.

배는 이곳을 지나야 대서양이든 인도양으로 가게 된다.

본사에서는 희망봉을 돌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항에서 철광석을 싣고 고베로 가란다.

드디어 해피 라틴호 타고 처음으로 아시아에 들어간다.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이 희망봉이라고 알려졌지만, 그건 당시 항해사들이 착각한 것이고 150km는 더 가야 한다.

15세기에 디아스라는 포르투갈 항해사가 이곳에 도착하였을 때 심한 폭풍우 끝에 발견하여 '폭풍의 곶'으로 이름 붙였으나 왕실의 조언에 따라 폭풍우가 거센 그곳에 어울리지 않게 '희망의 곶'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곳을 지나는 항해자들이 인도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17세기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케이프타운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원주민을 쫓아내고 식민지로 만들었다.

나폴레옹 전쟁 때는 영국이 슬금슬금 들어와 후에 영국령이 되었다.

희망봉은 사실 산이 아니고 바다 쪽으로 좁고 길게 뻗어 나온 바위로 된 곶(cape)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 누군가 번역을 기가 막히게 한 모양이다.

희망곶 보다는 희망봉이 더 그럴싸하지 않은가?

희망곶 뒤에 버티고 있는 야트막한 봉우리에는 구름이 자주 걸려있다.

마치 목욕을 마친 여인이 수건을 가슴에 두른 것처럼 마도로스의 낭만을 자극한다.

포 왕이 희망의 곶으로 이름 지어서인지 십여 년 후 바스쿠 다 가마라는 포르투갈 탐험가가 결국 인도로 가게 된다.

오랫동안 금과 향료를 찾아 헤매던 포르투갈인들의 꿈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긍정적인 생각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새 역사를 만드는 모양이다.

근대에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어 아시아와 유럽을 단축하는 항로가 생기자 케이프타운에 배가 들어오지 않아 파리만 날렸다.

요즘은 수에즈 운하의 통행요금이 대폭 오르고, 근처의 해적들이 난리를 쳐 거리가 멀어도 희망봉을 돌아서 유럽으로 가는 배들도 있다.

배가 커서 수에즈운하를 통과할 수 없는 16만 톤 이상의 슈퍼 탱커는 홍해 끝의 파이프라인 터미널에서 기름을 빼 흘수를 줄여 운하를 통과하여 지중해에서 다시 기름을 싣고 떠난다.

그런 비용에 운하 통행료는 많이 오르고 연료값은 떨어지다 보니 비용 절감을 위해 중동 유럽 간 희망봉을 돌아 먼 뱃길을 항해하는 슈퍼 탱커와 광석선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멀리 항해하는 크루즈선이 보인다.

한눈에 봐도 예쁘게 잘 빠졌다.

호화 여객선 또는 대형 유람선으로 영어로는 Cruise ship이라고 한다.

일반 여객선인 페리가 커지고 더욱 고급화된 배이다.

신간 편한 사람들이 배 안에서 먹고 자고 놀다가 항구에 정박하면 상륙해서 구경하고 다시 떠난다.

주로 한밤중에 출항한다.

지중해, 카리브해, 알래스카, 북해 피오르 크루즈 여행 등이 있고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세계 일주도 한다.

쇼핑몰, 카페, 레스토랑, 수영장을 비롯한 각종 레포츠 시설, 카지노, 극장, 나이트클럽 등이 갖추어져 있으며 배 일정과 소식을 알려주는 신문도 매일 발행된다.

크루즈는 저가의 크루즈선이 아닌 이상 아무 옷이나 입고 타더라도 반드시 정장이나 드레스가 한 벌 있어야 한다.

선장 등이 주최하는 환영회, 정찬 디너 등에 반바지에 나시, 슬리퍼를 신으면 입장이 안 되고 정장을 입어야만 만찬을 얻어먹을 수 있다.

배 안에서 숙식은 물론 웬만한 편의 시설이 다 제공되니 배도 커, 길이가 이삼백 미터나 되고 최대 승객수가 오륙천 명에 승조원도 이삼천 명 이상이 되는 큰 배도 있다.

배 잘 만든다고 소문난 우리나라가 약한 부분 중 하나이다.

시장 규모는 작지만, 부가가치는 엄청나 고작 대형 크루즈 여러 척 만드는 유럽 조선소의 매출이 일 년에 대형 화물선 수십 척 만드는 한국 조선소 매출보다 많다고 한다.

크루즈선은 화물선처럼 뚝딱 만들 수 있는 배가 아니다.

일반 상선과 달리 세계 각국의 승객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조선 기술만으로 안 되는 인테리어와 편의시설을 만드는 노하우가 많이 필요하다.

조선 기술이 우리보다 앞섰던 일본의 미쓰비시중공업이 몇 년 전 크루즈선을 만들다가 조 단위에 가까운 손해를 보고 손들었다고 한다.

갈수록 크루즈 여행 시장이 커지고 성장하던 산업이었는데 코로나 난리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업 중 하나이다.

회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글쓴이도 자연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만 날 타던 화물선이 아닌 크루즈선 타고 세계 여행하며 폼 한번 잡아보고 싶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