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재 톤수 30만 톤급 삼호드림호와 청해부대 왕건함
소말리아 해적과 석해균 선장
음악 : Soldier of fortune, Deep Purple https://www.youtube.com/watch?v=wZuW3YvHHLU
해피 라틴호는 소말리아 해적이 영업하는 해상에서 적어도 800해리는 떨어져 나름 안전하게 에메랄드빛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천 개가 넘는 천혜의 아름다운 섬이 있는 몰디브제도에서도 한참 아래이다.
소말리아 내전이 오래 이어지면서 경제는 완전히 말아먹었다.
내전으로 초토화된 나라에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있겠는가.
게다가 소말리아는 대부분 사막지대라 농사지을 땅도 별로 없다.
어업 역시 환경오염과 다른 나라 어선들이 싹쓸이하는 통에 고기도 잘 안 잡힌다.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어선도 싹쓸이 불법 어획에 한몫한 게 사실이다.
그리고 웬 아이들은 그리 많은지 먹고 사는 게 너무나 고단했다.
90년대 중반 소말리아 영해 내에서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 등의 유럽 국가와 아랍 국가들이 쓰레기와 산업폐기물을 배에 싣고 와 소말리아 영해에 갖다버렸다.
이탈리아 마피아 조직이 유럽의 산업폐기물을 돈 받고 소말리아 앞바다에 불법 투기하는 사업을 오랫동안 해왔다고 한다.
그래서 어자원이 풍부했던 소말리아에 고기 씨가 말라버렸다.
사실 소말리아 영해 내에서 맨 먼저 불법 어업을 한 건 예멘 어선이었다고 한다.
소말리아 어민들이 예멘 어선에 분풀이로 겁만 주려고 총을 쏘아댔더니 예멘 어민들이 울며불며 살려달라고 돈을 주니 그 맛에 차츰 해상 강도가 되었다고 한다.
아덴만 여명 작전으로 잡힌 해적들의 증언도 비슷했다.
그들 대부분이 먹고살기 힘들어 해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해적질은 목숨 걸고 하는 일인데 벌이가 없다시피 한 소말리아인에게 이래 죽으나 굶어 죽으나 인생 역전할 기회였다.
게나 고동이나 총기를 휴대할 정도로 무정부 상태에 치안이 엉망이라 총 맞아 죽을 확률은 비슷했다.
아무튼 하도 일거리가 없어 하루 풀칠하기 힘든 나라 사람들에게 해적질로 인생이 바뀌었다는 소문이 돌자 너도나도 처자식 먹여 살리고자 또한 대박을 꿈꾸면서 해적 산업에 뛰어들었다.
1990년대부터 해적질로 악명을 떨치던 말라카 해협을 제치고 최대의 위험지역이 되었다.
이렇게 해적 산업이 잘 되는 것은 화물선이 수에즈 운하를 통해 유럽으로 가는 데 지름길이기에 고객은 넘쳐났다.
특히 유럽에 중동산 원유를 싣고 가려면 희망봉을 돌지 않는 한 여기를 통과해야 한다.
처음에는 불법 어로 하는 타국의 어선들에 삥 뜯는 수준에서 시작되었지만, 생각보다 큰돈이 되자 많은 어부가 해적 일이 본업이 되고, 또한 돈 냄새를 맡은 전주들이 투자하면서 해적질이 큰 산업으로 날로 번창하게 되었다.
다른 민간인들도 해적이 납치한 화물선에 주부식과 생필품을 적당히 납품하면 떼돈이 됐다.
이런 경우엔 두리뭉실 올려주고 부르는 게 값이었기 때문이다.
해적들에게 배가 잡히고 몸값을 주는데 골머리가 아픈 선사들이 사기업의 무장 경비병력을 배에 태우기 시작했다.
다국적 해군의 단속도 계속됐다.
덕분에 아덴만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군함이 가장 많이 모인 바다가 되었다.
특히 러시아 특수부대는 해적을 보면 다 죽이다시피 해 해적들도 러시아 선박은 공격하지 않는다고 한다.
소말리아 해적에 대한 대응법으로 해적들이 나타나면 구조 요청을 한 뒤 엔진을 끄고 패닉룸으로 들어간다.
선원들이 비교적 안전한 패닉룸에 들어가 버리면 해적들이 거대한 화물선의 엔진을 조작할 줄 모르고, 설령 알아도 십만 톤 하는 유조선, 화물선 엔진은 시동 거는 데만 이삼십 분이 걸린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특수부대가 도착해서 해적들을 진압했다.
결국 해적들의 부담이 커지자 해적들도 납치행위를 사실상 포기하게 된다.
그래도 소말리아 해적이 위험하다는 데는 아직 변함이 없다.
한국은 청해부대를 파견하여 우리나라 배와 선원을 보호하였다.
2010년에는 30만 톤급 유조선 삼호드림호가 피랍되어 청해부대가 출동했다.
그런데 해적들이 선원들을 죽인다고 공갈 협박을 하며 소말리아 영해로 들어갔다.
청해부대는 영해 안에 들어갈 수 없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지루한 협상 끝에 선원들은 개고생하고 219일 만에 석방되었다.
몸값은 무려 950만 달러로 역대 최대 금액이라고 한다.
그래서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게 되었다고 말이 많았다.
'테러리스트와는 협상하지 않는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 삼호드림호 캡틴은 글쓴이와 다른 유조선에서 일 년간 한솥밥 먹었던 분이시다.
같은 해에 피랍된 금미 305호는 해적들이 선원들 먹여 살릴 돈이 없어 풀려난 황당한 경우였다.
삼호드림호에서 재미 본 해적들이 다음 해에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했다.
이걸로 한국 선박이 해적에게 여덟 번이나 납치되어 우리 정부는 협상이 아닌 구출 작전을 택했다.
다행히 청해부대의 아덴만 여명 작전은 성공했으며 우리 선원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다.
해군 부사관 출신인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은 해군이 작전을 수월하게끔 몸을 사리지 않고 총탄을 맞으면서도 저항해 영웅이 되었다.
삼호주얼리호가 납치되어 해적들이 소말리아 영해로 배를 몰고 가라고 하자 일부러 배 운항을 지체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해적의 명령으로 본사와 몸값 협상을 영어로 교신하면서, 중간중간 한국어를 못 알아듣는 해적들의 인원 및 무장상태, 위치 등을 해군에 알렸다.
특히 해적들이 링스 헬기의 위협 사격에 겁먹고 있다는 것과 새벽에는 다들 퍼 자 경계가 느슨하다는 것을 알려서 작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
석 선장은 구출 중에 해적과 아군이 쏜 총에 맞아 중상을 입었으나 오만에서 응급치료를 받고 한국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다.
이때 외상 외과 전문의 이국종 박사가 날아가 치료해 많은 국민의 성원을 받았다.
이후 석 선장은 해군 충무공 리더십센터에서 장병과 시민들의 안보 교육을 하다 퇴직하였다
UN 해양법은 '모든 국가는 공해 또는 국가 관할권 밖에서라도 해적에게 나포된 선박에 있는 모든 사람을 체포, 구금하여 자국법으로 재판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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