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선원의 항해일지

이란에서 살아남기

부에노(조운엽) 2020. 8. 21. 06:33

 

 

이란 미소

이란에서 살아남기

이글거리는 적도 태양 부근을 항해할 때 가끔 용오름 현상과 마른하늘에 날벼락, 아니 마른번개를 종종 볼 수 있다.

용오름 현상은 주로 흐린 날씨에 보이는데 거대한 물기둥이 구름으로 올라간다.

찬 공기가 따뜻한 바다와 만나 상승기류가 생겨 바닷물을 끌어 올리는 회오리바람이다.

보통 십 분 전후에 사라지는데 그게 계약서 쓴 게 아니니 삼십여 분 이상 가기도 한단다.

미국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토네이도에 해당하는데 마치 이무기가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 같아 용오름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물에 있던 물고기, 심지어는 거북이도 빨려 올라갈 수 있다는 데 구름에 들어간 물고기는 바람 따라 움직이다가 비 올 때 하늘에서 물고기가 떨어지는 진기한 일이 생기게 된다.

어느 비 오는 날 미꾸라지가 집 앞에서 기어 다녀 얼른 잡아다 어항 속에 넣고 키웠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온 이무기과 미꾸라지라고 뻥쳤다.

다들 정말인 줄 알고 신기하게 쳐다봤다.

이웃 동네 사는 꼬맹이들도 이무기가 뭔지 구경하러 왔다.

그럼 신이 나서 입에 거품을 물며 조금 있으면 장어가 될 거라는 둥 만화를 썼다.

왜냐하면 도시 주택가 도로에 산 미꾸라지가 있을 턱이 없으니 말이다.

사실 지나가던 미꾸라지 활어차에서 떨어진 게 틀림없었을 것이다.

마른번개는 더운 지방 육지 옆을 지날 때 초저녁에 자주 볼 수 있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아스라이 열대 야자수들이 보이는 이국의 바다에서 비도 안 오는데 번개가 번쩍번쩍 치는 건 배를 타니 볼 수 있는 이색적인 풍경이다.

그러면 육지에 대한 아련한 생각이 더 많아지게 된다.

지금도 사랑하지만, 소식이 끊기다시피한 남희며 옛 여친들 생각에 복잡해진다.

생각의 실타래가 뒤죽박죽되다가 군대에서 내무반장이나 고참들에 조 터지던 생각이라도 나면 기분 잡치는 거다.

그것도 일종의 트라우마인가.

그러면 혼술 모드로 간다.

일본인들은 번개가 치면 아이들에게 배꼽이 떨어지니 납작 웅크려야 한다고 가르친다.

번개 칠 때 자세를 낮추는 것은 과학적으로 벼락에 맞을 확률을 줄여주는 현명한 방법이다.

해피 라틴호가 항해하는 인도양 저 위쪽에 페르시안걸프가 있다.

수많은 유조선과 화물선이 오가는 붐비는 바다이다.

다른 배를 탈 때 이란 이라크 전쟁 중에 옥수수를 싣고 이란에 풀어주러 왔다.

이것도 군인이 자시면 전쟁물자라고 전쟁 보험료가 붙고 이라크 비행기의 공격을 피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됐다.

아~ 애꿎은 선원이 뭔 죄냐고...

모두 졸아서 호르무즈해협 입구의 이란 반달 아바스 외항까지 와 닻을 내렸다.

반달 호메이니항에 화물을 풀어주기 위해 대기하는 배가 수십 척이었다.

선원들이 명분 없는 싸움에 죽기 싫다고 하선하겠다고 술렁댔다.

그리스 선주는 전쟁 위험수당으로 기본급의 100%를 준다고 꼬셨다.

귀국하니 마니 시끄럽다가 다들 만기 때까지는 승선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얼마 전 반달 호메이니항으로 들어가던 화물선이 이라크 전투기의 공격을 받고 선원 몇이 죽고 배가 침몰한 사건이 있었다.

그 후 호메이니항으로 들어갈 화물선은 반달 아바스항에서 대기하다가 선단을 이루어 밤에 항해등과 레이더, 통신기를 모두 끄고 이란군의 호위하에 약 300해리를 더 항해하여 간다.

이때 최소 당직자 외에는 모두 선수 창고에 숨어있는다.

보통 이라크 공군기는 배의 기관실이 있는 선미 부분을 타격하여 동력을 잃게 만든다.

반달 아바스항에 접안해서 대기 중 저녁 선선할 때 가끔 부두에 상륙 나갔다.

총을 메고 경비하는 이란 군인들이 곳곳에 서 있었으나 자기 나라에 화물을 싣고 온 선원들에 별다른 제지는 없었다.

다른 한국 배에 가서 책과 비디오테이프를 바꿔오기도 하고 그리스 배에 놀러 간 적도 있다.

그리스 포트 캡틴과 같이 배를 탄 적이 있어 그리스어 몇 마디는 배웠다.

'야사스, 에프가리스토 포리(안녕하세요, 대단히 고맙습니다)'라는 간단한 말을 주절대니 그리스 배 기관장이 반갑다고 자기 배에 놀러 오라 해서 갔다.

그런데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준다.

아니, 술을 시일 시키지 않냐고 물으니 오히려 놀라며 맥주가 술이냐고 반문한다.

우리는 맥주도 다 시일 창고에 넣고 봉인했다고 하니 어깨를 으쓱한다.

물론 몇 박스는 비밀창고에 짱 박아 놓았지만...

페르시아만의 맹주였던 이란의 팔레비가 실각하여 이곳이 어수선할 때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 공군기지를 설치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아프가니스탄에서 4백여km밖에 안 된다.

소련은 그 전에 홍해 양쪽인 에티오피아와 남예멘에 해군 기지를 건설해 영향력을 키우려 했다.

이에 맞서 미국은 오만에 공군기지를 건설하고 소말리아에서도 군사 기지를 만들었다.

아프리카의 케냐와 인도양의 디에고 가르시아 섬에도 미군기지가 있다.

이들 기지는 중동에서 전쟁이 터졌을 때 현장에 파견될 특수부대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 특수부대의 임무는 중동 유전 시설의 보호 또는 복구와 원유 항로의 안전유지이다.

호르무즈해협이나 페르시아만에서 전쟁이 터졌을 때 미군과 육로로 밀고 들어오는 소련군 누가 먼저 오느냐에 따라 중동의 주도권이 바뀔 것이다.

네 번의 이스라엘, 중동 전쟁에서 이미 입증된 것이다.

이란, 이라크 전쟁은 민족, 영토와 종교 문제로 악화한 호메이니와 후세인 간의 8년 전쟁으로 백만여 명이 죽거나 다친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쟁 중 하나이다.

우리는 하마하마 언제 호메이니항에 입항하나 기다리다가 6개월이 지나 승선 계약 만기가 된 선원들은 반달 아바스항에서 하선하여 버스 타고 테헤란으로 갔다.

솔직히 육 개월 동안 월급만 받고 먹고 논 거다.

글쓴이도 만기가 되어 전쟁 위험수당을 받아 007가방에 달러를 챙기고 다른 소지품은 다 배에 놓아두고 교대하였다.

당시 거금인 만 불 가까운 현찰을 갖고 가는데 일 년 넘게 입던 옷 나부랭이를 가지고 비행기 탈 필요가 있나 해서 다 버렸다.

테헤란 호텔에서 한국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며칠 동안 종종 시내 구경을 하였다.

전쟁 중인 나라라는 게 실감 나지 않게 도시는 사람들로 붐비고 식당과 시장에는 먹을 게 넘쳐났다.

그때 양고기를 파는 식당에서 맛있는 양구이도 먹어봤다.

전쟁 중이라 암달러가 10배 이상의 가치가 있을 때였다.

거기서 돈 천 불 하는 오메가 손목시계를 단돈 백 불에 살 수 있었다.

나중 생각에 한 열 개 사다가 그동안 신세 진 사람들에 생색이나 크게 낼 것을 전쟁 통에 쫄아서 너무 조신하고 있다 온 건 아닌지 하는 후회가 들었다.

이란은 지금도 흉악범에 공개 교수형을 하고,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남에게 상해를 입히면 똑같이 보복 처형을 하는 등 살벌한 나라이다.

특히 이란 여성과 손을 잡거나 연애라도 하다가 걸리면 뼈도 못 추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