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또니오와 부에노의 동상이몽
다국적 레스토랑 GESTO(헤스또, 새로 바꿀 상호)의 주방장 안또니오의 복안은 우루과이 최고의 레스토랑을 만드는 데 있다. 그래서 자기 집에 소장하고 있던 오래 된 골동품들을 한 차 싣고 왔다. 건물이 백 년이 넘었는데 갖고 온 골동품은 삼백 년 된 것도 있고 보통 수십 년 이상 되었단다. 값도 꽤 나갈 거 같다. 왜 그가 이렇게 혼신의 힘을 다 할까?
이런 저런 골동품을 갖다가 적절한 위치를 선정하기 위해 벽에 세워 놓았다.
안또니오가 세 번째 부인과 석 달 전 이혼할 때 그녀가 미화 팔십육만 달러를 갖고 스페인으로 날랐단다. 그래서 지금은 빈털터리가 되어 뭔가 대책을 찾던 중에 부에노가 운이 좋게 인수한 레스토랑에 Socio(동업자)가 되려고 제의를 했고, 지금 그 자금을 마련하려고 전 부인에게 소송을 제기해 놓고, 본국 스페인에도 긴급 자금을 요청해 놓았다. 그리고도 혹시나 해서 우루과이 전직 은행 간부에게 대출 관계를 알아보고 있다. 일단 약속된 금액을 나에게 주어야만 소시오 계약을 하든가 말든가 하지 아직은 나 혼자 대빵이고 그는 주방장일 따름이다.
한 때 몬테비데오에서 선박 관계 사업을 하면서 돈도 많이 벌었다던 그가 아끼던 골동품을 싣고 나타났을 때, ‘아, 이 사람이 정말 소시오를 하긴 할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비업체에도 바로 계약을 하고, 급하게 서두르는 것도 없이 영업을 하면서 조금씩 내부시설을 손수 바꿔나간다. 아직은 손님이 많지 않지만 앞으로 우루과이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만들어 돈도 벌고, 또 다른 임자가 나타나면 프리미엄을 붙여 매각할 수도 있다. 가령 백만 불을 받았다 하면 골동품 값을 제하고 나머지에서 그가 반을 가져가는 거니까 적은 돈 투자해서 부가가치가 높은 사업일 수도 있다.
손님이 나가고 없을 때 주방에서 나와서 골동품을 손질하고 있다.
부에노의 생각은 어떤가. 이미 알고 있는 분들은 아는 사실이지만 한국 떠날 때 가진 게 별로 없어서리 아주 적은 돈으로 이 가게를 인수했다. 나머지는 벌어서 갚기로 했으니 안또니오에게 소시오 자금을 받으면 내 빚은 다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별 다른 하자가 없으면 5년 간 이 가게를 운영할 수 있다. 뭐 잃어봐야 잃을 거도 별로 없는 상황이니 손해 볼 것도 없다. 가게를 팔 생각도 별로 없다.
그런데 이 레스토랑이 우루과이 최고의 식당이 된다면 얼마나 재미있겠나. 다른 나라 대빵들이 오면 들른다든가, 이 나라에서 유력한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명소가 된다면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젊었을 때 한국에서 1% 안에 드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Voice of America' 방송을 듣고 알았을 때 가슴 뿌듯했었는데 남의 나라에 빈털터리로 와서 비록 인구는 얼마 안 되지만 이곳에서 최고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면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사실 Dinero(돈)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살아보니까 돈을 쫓아간다고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적자만 안 보고 가게만 돌아갈 수만 있으면 족하다. 인건비는 두 명이 월 팔천 뻬소(한화 약 32만 원) 밖에 안 나간다. 안또니오는 이익금에서 일부 가져가기로 했으니 적자나면 가져갈 게 없다. 이 나라는 물가가 싼 대신 공공요금이 무척 비싸다. 아직 공과금을 내 본 적은 없지만 전임자가 낸 전기료 영수증 등을 보면 장난이 아니다. 이런 거만 무리 없이 해결되면 뭐가 걱정이겠나.
시설 고치는 데도 사실 돈도 없지만 별 돈은 안 들어간다. 웬만한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손수하고, 업체와는 ‘Give & take’로 우리나라 주류 마케팅과 비슷하게 맥주 넣을 테니 ‘쇼 케이스 두 대 임대해줘라.’, ‘간판에 니들 와인 상호 넣고 하나 쌈박하게 만들어줘라.’ 하는 식이고 다른 경쟁업체에서 판촉 오면 ‘니들은 뭐 할 건데?’ 하면 ‘비싸서 잘 안 나가는 와인 세 박스를 주겠다.’라든가 ‘맥주 판촉용으로 열 박스 줄게.’ 하면 ‘그래, 그럼 놓고 가.’ 하는 식이다. 어떻게 보면 쥐뿔도 없는 놈이 갈 길은 먼데 유유자적하게 있는 이유 아닌 이유이다.
증조 할아버지 사진도 걸어놓고, 곰방대를 물고 생각에 잠겨 있다.
나폴레옹 시대에 만들었다는 거울
쉬는 날, 예쁜 Amiga와 카메라 메고 이 나라 구석구석을 여행 다닐 계획이다. 휴가 때는 라틴방 최고의 민간 외교관이자 문필이신 유빈 님 사시는 페루의 삐우라에도 방문하고 싶고, 회색의 도시(?) 부다페스트, 프라하에도 가보고 싶다. 유럽의 바다에 접한 나라들은 거의 가 보았지만 내륙 지방인 헝가리, 체코 등은 못 가봤다. 그리고 스페인어를 배워서 스페인어로 글도 써보고 싶다. 어제 쇼핑센터에 갔다가 도서 코너에서 스페인어로 된 책을 들여다보면서 얼마나 읽고 싶었던지......
아직 정식 개업은 안 했지만, 가게가 자리 잡히고 여유가 되면 어학연수나 유학 오는 젊은이들에게 숟가락 하나 더 놓고, 옆방에 침대 하나 더 놓아서 아무런 대가 없이 그들을 돕고 또 장학금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한솥밥 먹던 젊은이가 나중에 우리나라의 큰 일꾼으로 성장한다면 얼마나 보람 있고 행복하겠는가.
점점 틀이 잡혀가는 가게와 180여년 전에 일일이 손으로 수를 놓았다는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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