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4248 2007.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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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치기와 칼 안 든 강도
누구나 지나간 추억은 아름다운 법이다. 옛날 사귀던 애인은 다 멋졌고, 놓친 고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몇 년 후에는 엄청 큰 놈으로 변해 있고, 조금 큰 쥐가 몇 년 뒤 고양이만 해졌다가 나중에는 송아지만 해지니…….
예전에 몬테비데오 항에 입항해서 얼마나 재미있게 지냈던지 한국에서 술자리를 할 때 어쩌다 한 번씩 안주 삼아 그 때 쌍 코피 흘렸던 이야기를 하던 그 곳에 다시 와 정착해서 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십여 년 만에 다시 찾아 온 이곳에서 예전의 추억을 되새겨 봐도 어디가 어딘지 전혀 모르겠다. 다만 그 때 알고 지내던 태권도 사범님을 만나서 옛 이야기를 하니 어렴풋이 기억을 하셨다. 그 때는 군부의 입김이 셌던 시절인데 제자들이 군경 곳곳에 요직에 있어서 사범님 일거수일투족이 신문에 매일 나올 정도로 유명했고 또한 아주 잘 생기신 분이었는데 세월의 무상함은 어쩔 수 없어 초로의 영감으로 변해서 옛 모습을 겨우 알아볼 정도였다.
Centro(시내 중심가)는 밤에 혼자 다녀도 별 위험이 없다 하여 가게 인수를 준비할 때 저녁이면 호텔을 나와서 산책을 다녔는데 음식 값이 싼 노천카페에서 세르베사 두서너 병에 아사도나 뽀요(닭 구이)를 식사 겸 먹고 이 생각 저 생각에 젖어 있다가 돌아가는 길에 누가 뒤에서 오른쪽 어깨를 살짝 치는 거 같더니 왼쪽 주머니가 허전함을 느낀 순간 젊은이 두 명이 차도를 건너 막 뛰어서 도망가고 있었다. 얼른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까 아까 음식값을 내고 거슬러 받은 잔돈과 이것저것 적어 놓은 메모지들이 없어졌다. 어떻게 그렇게 순식간에 주머니를 털 수 있을까. 잘 훈련된 전문 소매치기의 소행이었다. 다행히 다친 데도 없고 잃어버린 돈도 얼마 안 되었다. 드문드문 보이는 경찰들은 자기들끼리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서 있었고, 지나가던 행인들은 아무 영문도 모르고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처음으로 군중 속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순간이었다.
나중에 가게 앞 경비 보는 현지인 가찌또 씨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남의 돈을 훔치는 놈들은 나쁜 놈이니 어쩌니 하면서 글쓴이가 밖에 나가면 원하지 않아도 필요 이상으로 밀착 경호(?)를 했다. 이 경비 아저씨는 가게 양 옆에 있는 미장원과 다른 가게를 밤새워 지켜주고 월급을 받고, 카지노에 온 손님들의 주차한 차를 봐주고 팁을 받아서 생활하는데 내 가게는 가운데 껴서 어부지리로 공짜 경비를 받고 있는 셈이었다. 그렇게 과잉 경호를 한 후면 반드시 손을 내민다. 담배가 됐든 음식이 됐든 뭘 좀 주라고…….
식사중인 경비 아저씨
가게를 인수하고 물이 잘 안 나와서 일하는 데 애로사항이 많았다. 그래서 건물 관리인에게 이야기해서 수리업자가 와서 보고 옥상 물탱크에는 이상이 없다 해서 우리가 두어 번 아는 업자를 불렀는데 오는 데 삼 일, 일 하는 데 삼 일, 원인을 못 찾고 우물쭈물 삼 일, 토, 일요일 끼어있으면 또 삼일, 돈도 안 받고 그냥 간다. 그렇게 지내길 한 달여 있다가 샤워하는데 물이 쫄쫄거리고 잘 안 나와서 눈도 맵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전화번호부 책을 보고 다른 업자를 불렀더니 산 도적같이 험악하게 생긴 배불뚝이 영감 두 명이 와서 잠깐 보고는 다시 온다고 하면서 출장비를 이백 페소 받아 갔다.
두어 시간 있다가 연장을 들고 다시 와서 2층을 왔다 갔다 하더니 한 시간 만에 물이 콸콸 잘 나왔다. 얼마나 기쁘던지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역시 전문가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수고했다.’ 하고 수리비를 물었더니 6,500페소 달란다. 잘못 알아들었는지 해서 다시 물어봐도 그 돈을 주란다. ‘에이, 우리 종업원들 한 달 열심히 일해 봐야 월급이 3,4천 페소밖에 안 되는 데 너무 한 거 아니냐?’고 했더니 자기네는 정식 허가 내서 수리하는 전문업자라 그 돈을 받아가야 한단다. 나는 ‘도저히 그 돈을 다 못 주겠다. 니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 삼십 분 일하고 그렇게 많이 달라고 하냐?’ 하고는 버티니까 영수증 처리 안 하고 4,500페소만 주란다. ‘그것도 너무 비싸서 못 주겠다.’ 하고는 현지에 오래 사신 교민 분에게 전화를 해서 도움을 요청해봤는데 전혀 씨가 먹지 않았다.
조수 영감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연장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스페인어로 뭐라 살벌하게 중얼댄다. 주방장 안또니오와 모사 까리나 양은 아무 말도 못하고 얼른 보냈으면 하는 표정이다. 아무리 니들이 경찰을 부르고 어떻게 해도 그 돈을 받아가야겠다는 데 별 재간이 없어 돈을 주어 보냈다. 칼만 안 들었지 연장 든 강도(?)에게 꼼짝없이 당한 상황이었다. 앞으로 또 이런 경우를 당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안또니오와 까리나 양
점점 자리잡아가는 가게 모습
- RailArt박우물
- 미리 택시를 타는 것처럼 얼마냐고 물어봐도 글쎄 상황 따라 다르니 뭐라고 가격을 산출할 수 없다라는 뻔한 대답이 올까요? 그래도 최소한의 가격은 결정하고 부르세요. 행님요! 07.03.29
- 부에노
- 모두 감사합니다. 어이쿠! 티지 최 사장님, 반갑습니다. 잘 계시죠? 종종 흔적을 남기셨더군요. 서울뷔페 주방 누님에게 안부 좀 전해주삼. 톳오리 영감님도... 중후하신 풍모에 어울리지 않는 아이디를 바꾸심이, 겁나서리... ㅋㅋㅋ ^^ 07.03.29
- 토마토
- Antonio 와 Carina 가 아무 말 안 한 것보면 그 액수의 수리비가 맞을 것 같네요. 나도 아르헨티나 살 때 하수도 뚫는 사람이 기계 하나 가지고 5분도 일 안하고 꽤 비싼 비용을 요구했는데, 사실 그 비용은 원인 파악하는 그의 지식과 노하우 값이었죠. 세멘트바닥 다 뜯어 07.03.29
- shinmyunwoo
- 그래서 나는 1년 동안을 수도배관, 위생변기, 전기, 타이루, 목공, 페인트 일을 배워 손수 내가 2 년동안 헌집을 새집으로 만들었지요. 내가 기술자이고 인부[일당 16,000원]사서 했습니다. 하도 힘들어서... 내가 보면 문제 OK -- 칠레산티아고에서-- 07.03.30
- 유빈
- 하하하 부에노님 첫번째 수업료를 단단히 지불하셨군요. 우물님 말씀처럼 반드시 가격을 먼저 결정하고 일을 시작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그런 일 계속 당하니까요. 저도 처음에 많이 당했던 일이죠. 택시를 탈 때도 목수를 부를 때도 기술자를 부를 때도 다... 07.03.29
- 제인
- 항상 기술자를 부를 땐, 증상을 말하고 얼마에 고칠 것인가 사전에 가격을 흥정하고 방문할 수 있도록 하는 편이 낫다... ㅋ... 서로 나중에 얼굴 붉힐 필요가 뭐 있는가... 07.03.29
- David
- 수업료를 현지인들은 derecho piso라고 하지요. (각 나라마다 틀리겠지만) 많이 지불하면 많이 배우겠지만, 적게 지불하고 많이 배우는게 이상적인 이민자 생활이겠지요. ^^ 07.03.30
- 지성
- 한 번씩은 치뤄야 하는 남미의 바가지 ^^ 상술 미리 알았더라면 아니 누군가 미리 주의하셔야 할 점을 애기해줬더라면... 조금의 아쉬움이 있긴하지만 유빈님 말씀처럼 수업료 주셨다 생각하셔야지여. ^^ 07.03.29
- 블랑꼬이네그로
- 일급경호원 아찌(?) 식사하시는 모습 참 맛있게도 드심다. 내도 꼭 가야지. 밀착경호하고 우리 잰틀맨 돈 안또니오 보러 ㄲㄲ (농담임다). 허나 입학금(등록금)이 좀 장난이 아니였군요. 나쁜넘들... 글 잘 보고 감다. 화팅! 07.03.30
- saci
- 정말 매번 가게가 점점 멋져가네요...... 전 싸우고 기다리기 싫어서... 대충 혼자 고치거 나... 내가 못 해결한 경우... 그냥 달라는 대로 다줍니다...... 사전에 말하라고 하면... 뜯어 봐야 안다고들 합니다... 왠만한 배선... plumbing 선수가 되었지요... 07.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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