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선원의 항해일지

프랑스 군함 메두사호의 뗏목

부에노(조운엽) 2019. 8. 17. 07:50

 


프랑스 군함 메두사호가 침몰한 후 당시 뗏목에서 살아남거나 죽은 사람들

  

 

 

프랑스 군함 메두사호의 뗏목 

 

 

 

자, 이제 피리우스에서 배가 팔리고 알렉산드리아로 전선 할 때 시간이 되면 남희가 있는 독일에 비행기 타고 갈 수도 있다.

후후, 우리 차칸 남희.

살다 보면 전혀 예상하지 않은 일이 생겨 엉킨 실타래같이 될 때도 있다.

게다가 엎친 데 겹친 격으로 주변 돌아가는 것이 매사 도움이 안 되는 일만 생길 때도 있지만, 배 팔려 매선 수당 두 달분을 받고 바로 전선 하면서 틈새 남희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누가 말했듯이 너만 만나면 타는 듯한 목마름에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라더니 남희가 그 짝인 거 같다.


통신실 전화벨이 울린다.

“어이, 국장! 식사하고 본사와 대리점에 Noon Report 보내야지.”

캡틴 전화다.

 

사관 식당에 들어서니 오늘의 화제는 호루라기 이야기다.

1항사는 집에 호루라기가 몇 개 있단다.

따님이 호루라기 불기를 좋아하는 모양이지.

1기사도 서너 개 있다는데...

사연인즉 연가 중에 아이들이 아빠 왔다고 밖에 놀러 가지도 않고 집 안에서만 맴도니까 분위기(?)도 잘 안 잡히고 해서 아이에게 과자 사 먹으라고 돈을 주면서 꼭 호루라기 하나를 사 오라고 시킨단다.

그러면 아이들이 과자 사 먹고 제 볼 일 다 보고 또 얼른 집으로 오고 싶어서 호루라기를 불면서 집에 온다나.

멀리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면 얼른 옷 챙겨 입고 헛기침하고 있어야지.

 

캡틴이 큰소리로 너털웃음을 웃다가 말을 한다.

“난 프랑스 영해만 지나가면 나폴레옹이 생각나는데 1항사는 무슨 생각이 드는가?”

전 코냑! 향이 죽여주잖아요.”

“흠, 들어봐요. 프랑스 나폴레옹과 독일의 히틀러가 종종 비교되는데 히틀러는 12년간 권력을 행사한 뒤 군대를 제외한 분야에서는 독일에 시체와 쓰레기만 산더미처럼 남겼다고. 반면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라고 말했던 나폴레옹은 30대 초반에 프랑스 황제가 되어 유럽의 절반을 차지하고, 시민개혁과 문화, 교육, 법률을 근대적으로 변화시킨 업적은 그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 하나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거요.”

캡틴이 목을 축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


국장, 그 나폴레옹 시대에 프랑스 군함 메두사호 사건이 일어났어요. 알아요?”

밥 먹으면서 얼른 대답을 못 하자 캡틴이 말을 잇는다.

“안데스산맥에서 비행기 추락으로 우루과이 럭비 선수들이 동료 시체를 먹고 살아남은 일이 이 바다에서도 일어났단 말이지. 메두사호가 좌초하여 타고 있던 사백여 명 중의 열네 명만이 살아남은 거야. 그것도 식량도 없이 아주 오랜 기간 표류하면서.”

 

1기사가 입을 뗀다.

“네, 선장님. Alive 영화는 보았는데 메두사호 사건은 잘 모르겠습니다. 죽은 동료 선원의 시체를 뜯어먹고 살아남았다는 겁니까?”

기관장이 무겁게 말문을 연다.

“만약 여러분들이 그런 상황에 처했더라면 어떻겠소?”

모두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기며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한다.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쟁에서 패하면서 실각한 직후, 프랑스의 대형 선박 메두사호는 세네갈 해안에서 조난을 했다.

세네갈을 점령하기 위해 떠난 군인들이나 신분이 높지 못한 이들 백오십여 명은 선장을 포함한 상급자와 고위 인사들이 탄 구명선에 뗏목을 연결하여 배에서 탈출했지만 구명선에서 지들만 살겠다고 뗏목 밧줄을 끊어버리자 망망대해에서 표류하게 된다.

결국 살아남은 자는 열네 명.

 

테오도르 제리코라는 화가가 생존자들을 직접 찾아가 당시 상황을 꼼꼼하게 듣고 스케치한 다음 참혹했던 뗏목에서의 생활을 대형 화면에 서사적으로 풀어냈다.

그는 숨을 거둔 시신을 그리기 위해 파리 시내의 병원 시체안치실에 직접 찾아가 연구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리려고 노력했다.

화면 왼편, 죽은 시신을 한쪽 팔로 잡고 있는 남자는 핏빛 천을 머리에 두른 채 생각에 잠겨 있다.

모든 것을 다 놓아 버린 듯한 남자의 무표정함은 늘어져 있는 시신들보다 더한 절망감을 준다.

구조선을 향해 깃발을 흔드는 사람들의 모습은 처절한 절규에 가깝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

그렇지만 이미 죽은, 혹은 죽어 가는, 그리고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이들의 조각처럼 다부진 몸과 대리석같이 창백한 피부 톤은 정확한 선과 완벽한 채색을 강조하던 고전주의적 화풍을 떠올리게 한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다소 칙칙한 갈색 톤은 그들이 처한 현실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든다.

 

3항사가 3기사를 쳐다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원효대사는 해골바가지에 담긴 썩은 빗물을 마시고 도통하셨다는데...

 

마음이 동하면 모든 것이 나를 위한 것이요, 마음이 떠나면 다 부질없는 것이리다.

모든 것이 마음이요, 오만 가지 것들이 다 생각에서 나온다.

다 내 마음먹기 따라 생기고 마음 따라 사라지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