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lantic Road in Norway
죽어도 좋아
‘HAPPY NINA’ 호는 함부르크에서 하역을 마치고 파도가 거친 북해로 들어가 다음 하역지인 바이킹의 나라 노르웨이의 크리스티안순드와 트론헤임을 향해 전속력으로 항진하고 있다.
남희를 보내고 정신줄 놓고 살다 보니 요즘 말문이 막혀 입안에 거미줄이 친 것 같다.
북해를 항해하니 역사학자 토인비가 즐겨 말하던 청어와 고난의 행군 이야기가 생각난다.
북해에서 청어잡이를 하는 어부들은 런던까지 청어를 싱싱하게 살려서 갖고 오는 게 중요했다.
어부들이 아무리 빨리 와도 배가 런던에 도착하면 청어들은 거의 다 죽었다.
그러나 한 어부의 청어만은 싱싱하게 산채로 있는 것이었다.
동료 어부들이 그 비결을 물어보았더니 ‘나는 청어를 넣은 어창에다 상어를 한 마리 집어넣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동료 어부들이 놀라 물었다.
“그러면 상어가 청어를 잡아먹지 않습니까?”
어부는 말했다.
“네, 상어가 청어를 잡아먹습니다. 그러나 놈은 청어를 몇 마리밖에 못 잡아먹지요. 하지만 그 통 안에 있는 수많은 청어는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계속 도망치는 고난의 행군을 하지요. 산소가 부족하고 좁은 어창에서 죽을래야 죽을 수가 없지요. 그러니 먼 런던에 도착해도 청어는 여전히 살아서 싱싱합니다.”
상어의 공격에 살아남기 위한 고난의 몸부림이 결국 청어의 목숨을 부지하게 한 것이다.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아닌가.
노르웨이는 미세먼지가 없는 청정지역으로 손꼽는 나라인데 빙하가 만들어놓은 말갈기 같은 피오르 지형이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
그리고 우리 술안주나 밥상에 자주 오르는 연어와 고등어가 이 청정지역에서 잘 자라 우리나라에서 수입을 많이 한다.
‘HAPPY NINA’ 호의 노르웨이 첫 하역지인 크리스티안순드항에서 삼사십 킬로 떨어진 곳에 저 유명한 Atlantic Road가 있다.
자동차나 타이어 광고 촬영지로 유명한 그 해안도로 말이다.
아틀란틱 로드는 노르웨이의 작은 섬들을 이어주는 다리인데 바람의 저항을 덜 받게 하려고 구불구불하게 만든 다리로 위험해 보이지만, 착시효과일 뿐 실제로는 매우 안전하다고 한다.
그러나 해안으로 폭풍이 자주 몰아치기 때문에 대범한 운전자들은 성난 파도를 눈으로 보면서 그 속을 뚫고 질주하는 쾌감을 맛볼 수 있다.
세계에서 으뜸가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으로 우리 대한국인 마도로스가 이런 곳을 그냥 지나칠 수야 없지.
항해 중 모처럼 싸롱 사관이 모두 한자리에서 식사할 때 캡틴이 이야기를 꺼낸다.
“크리스티안순드 도착하면 어틀란틱 로드를 가 봐야지?”
모두 눈을 크게 뜨고 캡틴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기관장님, 어떻소?”
기관장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한다.
“캡틴. 미안하지만, 이 배가 선령이 오래되어 배 붙이면 엔진 오버홀을 해야겠소. 1기사도 마찬가지로 일해야 하고.”
“그래요, 미안해서 어쩌지. 초사는?”
캡틴의 질문에 1항사가 방긋방긋하며 대답한다.
“아, 저야 선장님이 오케이하면 어디라도 따라가지요. 하하하.”
“그려, 그러면 국장은?”
“가야죠!”
내 힘찬 대답에 안 선장님이 빙그레 웃으며 1항사에게 지시한다.
“입항하고 풉 차고에 있는 지프 차 부두에 내려놓아요. 대리점에 연락해서 차 좀 손보라 하고, 호로도 씌우고... 파도 맞으면 옷 다 젖을라. 우리 셋이 갑시다. 여권과 국제 면허 다 챙기고...”
입항하고 그 뒷날 아침, 1항사는 2, 3등 항해사들에게 작업지시를 하고 캡틴과 같이 에이전트가 정비해 놓은 지프로 온다.
차 옆에서 바다를 보며 스트레칭을 하는 나에게 캡틴이 말을 건다.
“운전은 누가 하지?”
나는 인사를 하면서 1항사 얼굴을 쳐다보자 손을 흔들고 웃으며 말한다.
“갈 때는 국장이 하소. 거기서 맥주 한잔이라도 하면 올 때 또 졸라. 하하하.”
계면쩍게 웃으며 내가 대답했다.
“그러죠, 뭐. 가다가 안 선장님도 심심하시면 운전하시고요.”
아기자기한 64번 도로를 달리는 오래된 지프 호로 비닐 창 옆으로 푸르른 침엽수림과 깎아지른 듯한 피오르, 그리고 상큼한 바다에 그동안 애끓던 가슴마저 뻥 뚫리는 기분이다.
아, 이보다 더 아름다운 자연을 또 어디 가서 볼 수 있을까.
아르헨티나 멘도사에서 안데스산맥을 넘어 산티아고 데 칠레 가는 길도 아름답지만, 이 길에 견줄까?
나는 운전하면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것을 느낀다.
그녀와 헤어지며 느낀 고통이 성장통이 아닌지 차라리 고맙게 느껴진다.
남희가 두고 간 그녀의 마음 한쪽이 내 가슴에 살아서 숨쉬기에...
“어이, 국장! 운전 연습하는 거요?”
어쩌다 보이는 차들이 모두 앞질러 가자 1항사가 조바심이 난 듯 말을 건다.
이어 캡틴의 말.
“냅둬, 저 범생이. 전에 요코하마에서 온천 갔다 밤에 돌아올 때 보니까 신호 고장 났는지도 모르고 차도 없는데 마냥 기다리고 있던데... 하하하.”
남희의 환영과 파도가 넘실대는 장엄한 어틀란틱 로드의 가파른 경사길이 겹쳐 보이다 순간적으로 가슴이 뛰어 나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며 핸들을 꽉 잡았다.
“와우! 정말 대단하다.”
대서양로에 들어서자 모두 탄성을 지른다.
곳곳에 각양각색의 차들이 보이고 차에서 내려 사진 찍는 커플이나 여행객들도 많이 보인다.
묘기 대행진에서나 볼 수 있는 경사 곡선로에 다다르자 파도가 다리 위로 올라오는 것이 보여 나는 기어를 5단으로 바꾸고 액셀레이터를 꾸욱 밟고 고함을 질렀다.
“훼~드라~~~!”
옆에 타고 있는 캡틴과 뒤에 타고 있는 1항사의 당황하면서 다급한 소리가 바람과 파도에 묻혀 사그라진다.
“어~ 국장, 왜 그리 빨리 가나!”
캡틴의 말과 동시에 1항사도 울부짖는다.
“어어어~ 남희 씨 이름은 안 부르고 웬 이빠를 부르고 난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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